<호주에서 9년 살았다 #2>
8시간 반, 처음 보는 사람의 차를 얻어 타고서 이동한 거리다.
한국에서는 감히 상상이나 했을까? 8시간이면 부산에서 서울 갔다가 다시 내려올 수도 있는 시간이다.
그 긴 시간을 처음 보는 사람의 차를 타고 이동했다.
처음이라는 낯선 환경이 주는 긴장감은 나이와는 상관없었다. 그저 조심하고 또 조심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같은 한국사람들이고 말도 통하기에 어색했던 분위기는 금방 누구러 들면서 궁금했던 농장정보를
배우며 긴 시간을 달랬다.
이미 1년 전에 경험을 해본 사람, 이미 여러 번 농장을 경험해 본 사람이 해주는 이야기는 한국촌놈이 듣기에
신기한 세상이었다. 우리나라의 젊은 친구들이 한국에서는 경험하기 싫어하는 농촌을 호주에서는 비자획득과
돈 버는 수단으로 너도나도 찾아온다는 이야기가 놀라웠다. 나로서는 그저 생활비를 벌고 빨리 테솔자격증을 취득해서 다시 한국으로 돌아갈 생각이었기에 '돈'이 가장 궁금한 부분이었다. 한 주에 '1000불' 넘게 버는 사람이 많다고 하는 소식을 듣자, 농장이 기대되기 시작했다. 기대감과 걱정기 공존하는 마음을 안고 목적지인 <Bowen> 농장지역에 도착했다.
농장은 '시즌'에 민감하다. 그 지역에서 나는 작물이 나는 시기에 도착해야 많은 일을 할 수 있다고 했다. 나는 시작부터 좋지 않았다. 일부분 '속은' 상황이었다. 도착하면 바로 일 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왔지만 바낙 나는 생활비를 감당하지 못하고 1달을 내리 쉬었다. 아무것도 못했다. 그저 바다와 함께 시간을 보냈다. 틈틈이 브리즈번에 있을 때처럼 농장을 돌아다니며 이력서를 넣었지만, 아직 보웬의 대표적 작물인 '토마토'가 시작하지 않았다는 이유가 결정적이었다. 몸은 한없이 편했지만 마음은 새카맣게 타들어가고 있었다.
이러려고 호주에 왔나? 하는 자괴감에 하루하루가 고통이었다. 그냥 한국에 있었다면 와이프와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박봉이지만 직장에서 일을 하고 있었을 텐데... 하는 생각이 매일 머릿속에 맴돌았다. 주위에서는 이럴 때 즐겨야 한다고 하지만, 그들의 상황과 나의 상황은 같을 수가 없기에 그저 나는 일할 방도만 찾았다. 그렇게 매일 조금 더 먼 곳에 있는 농장에도 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