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에 한 번, 꿈꿔왔던 작가

퇴사원의 출근일지 02

by 오늘

어느날 K는 물었다.


“꼭 한 사람과만 출간 작업을 할 수 있다면,

평생 한 번의 작업을 꿈꾼다면 누구와 해보고 싶어?”


나는 멍해졌다. 아니 멍청해졌다. 그런 작가가 있었는데 없어졌다. 질문의 밀도를 생각했을 때 그냥 가벼이 생각하고 떠올렸던 작가를 대답할 수는 없었다. 해보고 싶다고 생각한, 떠올렸던 작가는 있었으나 그 작가들이 ‘꼭 한 사람’ 혹은 ‘평생의 한 번’의 대상은 아니었다. 그들을 향한 애정과 사랑이, 그들의 삶과 이야기를 공부한 시간과 노력이 절대적으로 부족했기에 나에게 K의 질문은 사치였다. 직업인이 아닌 직장인임이 탈로 나는 이 짧은 순간에 부끄러움이 안절부절과 초조함으로 바뀌었다.


이내 분위기를 감지한 K는 말했다. 자신은 L과 한 번 해보고 싶다고. 그의 삶을 가까이서 한 번 들여다 보고 싶다고. 어떻게 이런 문장을 쏟아낼 수 있는지 L의 생각과 하루하루가 너무나 궁금하다고. 책을 가까이 하지 않는 이들도 아는 대한민국 최고 작가의 이름을 K는 말했다.


최근 L의 작품들을 다시 만나고 탐독했던 K는 L 작품의 구절들을 읊어주며 감탄하고 동시에 괴로워했다. 그런 그의 결론은 계속 감탄만 이어가는 것이 아닌, 실제로 그를 만나고, 질문하고, 배우고, 그의 삶을 함께 느끼는 것이었다.


‘아, 또 시작이다..’ 대학교부터 18년이 넘는 시간이니 익숙해질만도 하지만, 오늘까지도 여전히 익숙해지지 않고 오히려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더욱 부담스럽다. 그의 이런 관점과 의사결정의 방향이. 이제는 K가 새로운 화제를 전하거나 질문을 하면 부담감부터 찾아온다.


L이 누구인가. 30년 이상의 긴 시간 동안 글로서 자신의 인생을 증명하고 있는 대한민국 최고의 작가 중 한 명이다. 나는 보통 이런 사람들을 ‘내 세상’ 밖의 사람으로 인식한다. ‘와, 대단한 사람이네’, ‘나와는 접점이 없는 사람’. 내 세상 밖의 사람이니 충조평판도 가감없다. 부끄럽게도 말이다. 반대로 K는 이렇다. ‘능력을 걷어내면 다 똑같은 사람이야’, ’없는 접점을 하나 씩 만들어가자’. 나에게는 똑같은 사람이 아닌데 K에게는 똑같은 사람이다. 이게 가장 큰 문제다.




기준. 기준점이 달랐다. 삶의 기준점이 다르니 일의 목표도 달랐다. K의 기준점은 ‘최고’다. 최고의 작가가 섭외 기준이다. 최고가 아니면 의미가 없다. 그는 앞서 이야기한대로 직원도 최고여야 한다. 맡은 바 분야에서는 최고여야 자신이 존경할 수 있고 그래야 함께 일할 수 있다.


반면에 나의 기준점은 ‘가능한’ 혹은 ‘부담 없는’ 이다. 제안이나 섭외는 성공 가능할 것 같은 사람에게 했다. 혹여 실패의 오점을 남기면 안되니까. 안전하게 가능할 것 같은 부담 없는 사람으로. 어떤 한 분야에서 최고의 위치에 있거나 유명세가 있거나, 영향력이 있는 이들에게는 우선 겁부터 먹었다. ‘설마 그 사람이 우리와 함께 하겠어?’라는 생각으로 리스트에서 제외하곤 했다.


이를 다른 관점으로 한 번 더 살펴보면 ‘실패’에 관한 이야기다. K와 나는 실패의 관점에서도 정반대 인생을 살아왔다. 지금은 그 누구도 실패를 의심하기 힘든, 실패 없는 삶을 살아온 것 같은 K의 인생은 아이러니하게도 실패의 반복이었다. 아이돌에 도전, 발레리노에 도전, 쇼핑몰에 도전, 플랫폼 사업에 도전. 결과는? 실패, 실패, 또 실패. 그리고 K는 안타깝게도 양화대교로 향했다. 다행히 그의 나쁜 생각이 최악의 행동으로는 이어지지 않았고, 그는 이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까마득한 절망 상황에서 마지막 도전 과제를 받아들였다. 자신의 경험담을 사람들에게 알리기. 자신의 지나온 시간을 무기로 다시 일어서기. K의 첫 책은 마케팅서이지만, 본질적으로는 그의 실패 이야기다.


그럼 또 반면에. 나의 이야기를 살펴보자. 실패가 떠오르지 않는다. 도통 생각이 나지 않는다. 나는 정녕 엘리트 코스를 밟아온 것인가? 그것이 아니라는 사실은 너무나 명확한데 말이다. 사실상 실패가 없다. 대한민국 공교육을 거친 이라면 모두에게 일어나는 수능시험을 제외하면(유일하지만 너무나 큰 실패). 그 이후에는? 없다. 조금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실패가 예상되는 도전’은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안전하게 보이고, 성취할 것이 분명해 보이는 일들만을 선택해 왔다.


사회 초년생 기자 시절에도 마찬가지. 아이러니하게도 욕을 먹은 기억이 손에 꼽는다. 연예부 생활 당시 부끄럽게도 타의로 특정인을 비판하는 기사를 쓴 적이 있었는데, 그 기사가 유일하게 내 기사에 댓글이 어마어마하게 달린 기사다. 평생 먹을 욕은 다 들었었다. 그 이후에는 자의로 내 관점을 날을 세워 쓴 기억이 없다. 좋게 좋게, 누구도 다치지 않게, ‘불편한 상황은 만들지 말자’가 나를 지배했다.


시간이 조금 더 흐르고 출판사 재직 시, 부끄럽지만 난 5만 부 이상 판매된 책을 작업한 경험이 없다. 3쇄에서 5쇄를 찍으면 성공이었다. 물론 현재 출판업계를 생각하면 재쇠를 찍는 것 자체가 성공이라고 보는 시선도 있으나, 현업의 어떤 작가와 편집자도 이를 성공이라고 부르지는 않는다.


익숙해졌다. ‘평균적으로 해내는 것’이, 그리고 ‘실패를 피해가는 것’이. 능력이라면 능력이겠다. 실패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길은 요리조리 교묘히 피해가는 나만의 스킬을 오랜시간 동안 쌓아왔다. 이제는 확실히 안다. 내가 어느 지점까지 가능한 역량의 사람인지, 그리고 어느 지점에서 실패를 마주하는지.


그래서 결과가 위와 같았다. 출발선상이 다르니 비슷한 퍼포먼스도 나올 수가 없었다. 단 한 번도 상상하지 않았던 결과가 내 눈 앞의 현실로 일어날 수는 없었다.


이제 K의 첫 질문에 대한 나의 당혹감의 이유를 찾았다. K의 질문은 사치가 아니었고, 내 안절부절과 초조함은 마음속 작은 곳에 자리잡고 있는 ‘아주 작은 실패’, 이 녀석이 원인이었다. 상상하지 못했던 것이 아니라 상상하지 않았던 것이다. 특정 작가를 상상했지만, 그와의 작업을 그려보니 함께 작업한다는 설렘보다는 부담감이 먼저 찾아왔고, 선상에 올렸던 특정 작가의 이름은 다시 그 선상에서 내려갔다. K와의 대화에서 그 작가의 이름은 금기어가 되었다. 말하면 도전해야 하고, 도전하면 실패할 수도 있고, 나는 실패가 너무나 두려웠으니까. 좋아하고 존경하는 작가였지만 함께 작업한다는 생각은 엄두가 나지 않았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K는 문제를 계속해서 해결해나갔고, L의 약속을 받아냈다. 원고를 주겠다는. 이게 얼마나 말이 안 되는 상황인지 예를 들어 설명하자면 이렇다. 지금 막 입봉한 영화감독이 봉준호 감독을 무작정 찾아가 자신의 레이블에서 다음 작품 디렉팅을 제안하고, 봉준호 감독은 이 제안이 너무나 매력적이어서 수락을 한 상황이다.


그럼 어떻게 이 상황이 전개되었느냐. 우리의 프로젝트 리스트에 L의 이름이 올라갔고, 우선순위 또한 조금 앞당겨졌다. 우리만의 작업 프로세스로 L이 펴냈으면 하는 실물 책을 만들었고, 제안 내용이 담긴 손편지 또한 작성했다. 그리고 우리는 무작정 비행기에 올랐다. L의 작업실이 제주도 어딘가 있다는 소식만을 갖고.


약속? 미팅? 주소? 실제 작업실의 존재여부? 없다. 그 어느 것도 확인되지 않은 상태에서 우리는 무작정 제주도로 향했다. 단서는 있었다. L의 SNS. 간혹 업로드된 L의 게시물에는 작업실로 추정되는 곳에서의 일상의 글과 사진이 간간이 올라왔다.


이때부터 K와 나는 출판사가 아닌 탐정사무소로 직종을 전환했다. L이 최근 몇 년 간 게시한 글과 사진을 모두 확인한 끝에 얻은 단서와 결론을 이렇다.

하늘정원 지역으로 추정

오렌지색 지붕

귤밭이 있는 집

왕복 2차로 국도에 인접


하늘정원 지역은 면적은 넓었지만 시골이다보니 가구 수가 많지 않아 우리는 우리의 목적을 금새 달성할 것으로 생각했다. 반나절 정도면 OK? 우리의 계획에 확신을 더하기 위해 사전 조사하며 찾았던, L이 자주 찾았던 것으로 보이는 빵집을 방문했다. 내부에 L이 직접 쓴 것으로 보이는 글도 있는 것을 보면 꽤 친분이 있거나, 적어도 작업실의 대략의 위치는 알 수도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그리고 맞았다. 직원분을 통해 사장님께 확인을 하니 어느정도 친분이 있으신 것으로 보인다. 주소는 알려드릴 수 없을 것 같다는 답변을 받았지만, 이 지역에 L의 작업실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확인했고, 혹시 찾지 못하더라도 향후 책과 편지를 전할 수 있는 안전장치를 확보했다. 모든 것이 계획대로 술술 풀리고 있었다.


하지만 역시 링 위에 올라가 맞기 전까지는 계획일 뿐이었다. 실제 돌아보니 지역은 생각보다 넓었고, 대부분의 집들은 오렌지색, 빨강색, 자주색 등 오렌지빛 잔치다. 이렇게 모든 지역을 돌아보며 찾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다. 해결 방법을 고민했다. 다행히도 첫 해결 방안은 의외로 쉽게 나왔다. 네이버 위성 지도. 위성 지도를 통해 위 4가지 단서를 조합하니 최종 후보 7곳이 선정되었다. 그리곤 또 희망회로를 돌린다. “너무 쉽게 찾은 거 아니야?”, “직업으로 바꿔도 되겠는데요?”. 인간이란…


3번째 후보지까지 돌아 보았는데, 아니다. 동선 상 4번째 후보지가 유력할 것으로 생각해 K에게 말한다.


“여기가 거의 확실해 보이네요. L이 계실 수도 있어 벌써부터 떨리네요.”


차에서 내려 4번째 후보지로 향한다. 다가갈수록 확신에 찬다. 오렌지색 지붕과 앞마당 뒷마당의 귤밭, 바로 앞에 국도까지. 그런데… 또 아니다. 돌아보고 둘러보고 다시 사진과 대조해보아도 이곳은 아니다. 내가 상상한 오렌지색 집이 아니다. 집을 나서는 길에는 확신했던 곳이 아니었던 탓에 정신을 놓았는지 철문에 그만 머리를 강하게 부딪혀 큰 혹까지 선물받았다. 지금은 훈장이라 생각하지만.


7곳을 모두 돌아보았다. 목적지를 발견하지 못했다. 난감했다. 어느새 날은 어둑어둑해지고 있었다. 둘 모두 넥스트에 대한 고민을 했다. 잠시 후 K가 말했다. “구글 지도로도 한 번 살펴볼까?” 난 ‘뭐가 다르겠어’라는 생각을 품고 앱을 켰다.


‘아… 또 맞네. K 말이 또 맞아.’ 구글 위성지도는 첫 번째, 화질이 달랐다. 네이버 위성지도는 집 지붕의 색 정도만 식별할 수 있었다면, 구글 위성지도는 색은 물론 구조까지 명확하게 파악할 수 있을 정도로 선명했다. 그리고 이번 프로젝트의 운명을 가른 두 번째 지점이 등장했다. 앞선 최종 후보 7곳을 대조해 보았는데 다른 점이 없었다. 그런데 최종 후보지 근처를 보던 중 뭔가 이상함을 느꼈다. 지붕 색이 다르다. L이 게시한 한 글이 생각났다. 오래된 창고를 개조해 리모델링했다고. ‘지붕색을 다시 칠했구나!!' (구글은 네이버보다 업데이트 간격이 빠르거나 최소한 최종 업데이트 시점이 비교적 최근이었다.)


지붕 색 때문에 최종 후보에서 탈락했던 집은 다른 단서들은 완벽하게 충족하고 있었다. K와 나는 설렘을 넘어서 확신에 찼다. 멀지 않은 곳이기에 바로 출발. 이미 해가 지고 주변 지형지물 구분이 쉽지 않았지만 바닷가로 내려가는 도로 끝에 위치한 한 집이 멀리서부터 눈에 보였고. 우리는 차 안에서 소리를 질렀다.


“찾았다!!”


사진과 대조하고 둘러볼 필요도 없었다. 그냥 이 집이었다. 후에 K와 대화를 나누며 안 사실은 그 바닷가로 내려가는 길에서 이미 뭔지 모를 소름이 돋았다고 한다. 나 역시도 마찬가지였는데 둘은 이미 알고 있었나보다. 흥분을 가라앉히고 자세히 살펴본다. 그리고 모든 것이 확실해졌다. 집에 불이 꺼져 있는 것으로 보아 사람이 없는 것으로 보였고, 우리는 1시간 정도만 기다려 보기로 했다.


아쉽게도 저녁 늦은 시간까지 우리가 만난 것은 반딧불이 두 마리가 전부였다. 하지만 이 반딧불이 두 마리는 아쉬움이 아닌 행운의 시작이었다.




실패를 과정이라 여기고 기꺼이 받아들이는 태도는 꿈의 크기를 키웠다. 꿈의 크기는 생각의 크기를 키웠다. 그리고 도전할 수 있는 용기와 막연한 상황에서도 기다릴 수 있는 인내심을 선물했다. ‘실패’에 대한 이 관점 하나가 이 두 사람의 지금까지의 시간과 현재의 상황, 그리고 앞으로 닥쳐올 일을 예견하고 있었다.


‘실패 없는 실패 인생과 실패 가득한 성공 인생.'

작가의 이전글여섯 번째 퇴사와 출간 계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