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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북남북녀 Mar 27. 2024

여기서 나가게 해 줘요

가쿠다 미쓰요 <종이달>

어떤 허기가 우메자와 리카에게 존재했다. 계획대로 되지 않는 임신과 속내를 알 수 없는 남편. 커다란 일탈 없이 반듯한 선 안에서 통금시간을 지키며 모범적인 생활을 해온 리카에게 영화에 대한 열정을 간직한 가난한 대학생 고타는 지나간 시간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켰을 수도 있겠다. 한 번쯤 리카도 걷고 싶었던 길. 머리를 움직여 체념하는 게 아니라 가슴을 움직여 행동하는 길. 조금의 여유를, 조금의 웃음을, 조금의 자유로움을, 조금의 친밀감을, 조금의 애정을. 리카가 바란 것은 작고 작은 것들이지 않았을까. 대범하지 못한 사람의 대담한 일탈로 마무리되었으나. 순진한 사람의 일탈로 끝날 수 없는 범죄가 되었으나

 

<종이달> 드라마가 시작될 때쯤 동생에게 실화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젊은 남자에게 빠진 주부인데 일본에서 실제로 있었던 일이래. 사진을 봤는데 여자는 예쁘고 남자는 못생겼어. 예쁘다는 여자가 궁금했다. 어찌하여 뻔한(약간의 이성이라도 남아있다면 예상될 법한) 불행의 길로 내달렸는지, 마음의 동인이 무엇인지

 

소설은 마음의 동인보다는 물질이 사람을 어떻게 변질시키는지에 집중하는 듯하다. 돈에 휘둘리는 추악한 가족이 되고 싶지 않은 신념으로 딸의 뺨을 때리게 되는 리카의 동창생 오가자키 유코. 낭비벽이 심해 어린 딸을 두고 이혼당할 수밖에 없던 리카의 친구 주조 아키(아키의 낭비벽은 불안에 기인한다.) 부유했던 어린 시절을 잊지 못해 현재의 부족함을 한탄하는 일로 시간을 보내는 리카의 전 남자친구 야마다 가즈키의 아내

 

야마다 가즈키는 사치스러운 생활을 위해 대출까지 받은 아내에게 “당신이 말하는 불편함이나 풍족함은 돈으로 밖에 해결할 수 없는 걸까? 이것이 있어야 이 아이들이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을, 돈이 아니라, 물건이 아니라, 우리가 주는 것은 무리일까?” 묻는다.

 

열두 살 된 딸이 가지고 싶은 물건이 있을 때만 자신에게 연락한다는 것을 알게 된 주조 아키는 딸이 자신을 물질적인 가치로만 대하게 만들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 이 아이가 나쁜 게 아니다. 아키는 생각했다. 내가 옷을 잘 입는 것으로 이 아이의 친구가 되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 아이에게 무언가 사주는 것으로 엄마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리카에게 거액의 공금횡령까지 하게 만든 가난한 대학생 고타는 리카가 얻어준 청결한 맨션에서 “여기서 나가게 해 줘요.” 말한다.


물질주의에 물들어 자신을 잊어가는 인간의 호소. 여기서 나가게 해 줘요.  


선한 인상이 일그러지고 빠져나올 수 없는 불행에서 허우적대는 이유에 돈이 들어간다. 빈 곳을 물질로 치장하려는 인물들. 달콤함에 빠져 죽을 날벌레의 운명쯤

 

(물질에 연연하다) 돌아보면 삶은 여기저기 금이 가거나 깨져있다. 오헨리의 <크리스마스의 선물>처럼 서로를 위한 진심을 그리워하면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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