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발 염색한 머리를 양 갈래로 땋아 길게 내리고 알록달록한 상의에 거친 질감의 황토색 스커트를 입었다. 흰 피부가 더 하얗게 세어 보인다. 양손을 하늘 높이 올리고 아이처럼 신나게 흔드는 저 손은 지후 엄마? 못 알아보겠다. 며칠 전까지도 트렌치코트에 검은색 롱 스커트를 입고 노란빛 도는 갈색 머리를 단정하게 모아 하나로 묶은 중후한 스타일이었는데.
스타일이 바뀌어서 못 알아봤어요. 젊어 보이세요.
지후 엄마는 손을 입에 대고 수줍게 웃는다. 인디언 인형처럼 과감한 차림과는 대조적인 단아한 웃음이다.
이사 오고 얼마 안 있어 동네 엄마들에게 지후 엄마에 대한 이야기는 심심치 않게 들었다.
지후 엄마 옷 입은 거 봤어요?
일도 안 하면서 꼭 정장을 입고 다녀, 사람 표정이 좀 쌔하다 해야 하나.
옆집이라 학부모 모임을 같이 가자고 했었어요. 혼자 교실 들어가기가 그렇더라고. 지후 엄마가 정색을 하더니 자기는 혼자 가는 게 편하다나. 뭐 그럴 수도 있는데 사람 무안하잖아요.
그 여자 생글생글 웃는 것도 별로야. 기분 나쁘게 자꾸 웃어. 빌라 산다고 무시하는 거야 뭐야.
지후 엄마를 처음 봤을 때 나이 지긋한 분과 걷고 있었다. 아이 할머니와 나왔나 싶었는데 어떻게 할까요, 먼저 들어갈까요. 나이 지긋한 분이 물으니 지후 엄마가 고개를 도리도리 흔든다. 아이들이 학교가 파하고 놀이터에서 어울릴 때였고 하교를 돌봄 선생님과 함께 하나 의아했다. 1학년은 돌봄 선생님을 따로 두지 않을 텐데.
이사 온 집 화장실에 문제가 생겨 바닥을 모조리 뜯어내는 공사를 진행할 때 집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아이와 함께 공원에서 시간을 보냈다. 있던 아이들은 학원이나 집으로 향하고 아이 엄마들도 아이와 함께 돌아가는데 지후 엄마가 벤치에 앉은 내 옆에 계속 앉아있다. 노는 아이를 살피며 중간중간 남편과 전화로 공사 진행을 확인하고 옆에 앉은 지후 엄마와 대화까지 나눠야 하니 피곤했다. 지후 엄마는 왜 집으로 돌아가지 않는 걸까 생각하며 내가 먼저 벤치에서 일어섰다.
이제 들어가 봐야 할 것 같아요. 아이를 불렀다.
공사 끝난 거예요. 잘 됐다. 저도 이제 집으로 갈 수 있겠어요. 안도의 웃음을 지으며 지후 엄마가 일어선다.
공원에 남아 있는 내가 신경 쓰여 집으로 돌아가지 못한 것일까.
걔네들이 말을 안 듣잖아요. 같이 밟으러 가자고 아는 언니랑 오빠들 다 소집했어요. 헤헤.
또래를 구둣발로 짓밟다 잡혀온 해인이다.
걔네들 많이 아팠겠다.
그런가? 잘 모르겠어요. 헤헤
해인이가 점심을 먹은 후 간호사실을 떠나지 않는다.
쟤 몰래 볼펜 숨기고 있어요.
쟤는 성격이 이상해요.
저 할아버지는 왜 저렇게 걸어요?
간호 일지 기록에 투약 준비에 할 일이 많은데 이 아이가 오늘따라 왜 앞에서 자꾸 말을 시키는 걸까.
바쁜데,라는 말은 입에서 나오지 않고 대화를 나누는 틈틈이 업무를 병행한다. 회진 없는 주말이라 가능했다. 인계 시간을 앞두고 더 이상 시간이 없을 때 인계 들어가야 해,라고 해인이에게 인사를 한다.
눈에 눈물이 맺힐 만큼 해인이는 하품을 크게 하며 이제 병실로 가도 되는 거죠, 나른한 목소리로 묻는다. 쌤 심심할까 봐 아까부터 졸린데 계속 참았거든요. 격렬하게 눈을 비비는 해인이가 몸을 돌려 슬리퍼를 질질 끌며 병실로 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