_ 하나의 주제가 숙제로 남아서 쓰는 글
한글을 깨친 날을 기억한다.
일곱 살의 여름 '귀여운 손'이라는 동화를 읽고 있었다. 한글을 모른 채 삽화에 이야기를 마음대로 지어서 읽었다. 제목이 귀여운 손이라는 것은 엄마가 알려줘서 그림처럼 외워서 알았다. 마치 문맹인 사람이 천 원이 ㅊㅓㄴㅇㅜㅓㄴ이 결합한 글자가 아니라 천 원이라는 그림으로 알 듯.
그날은 무심하니 유치원에서 받은 ㄱ,ㄴ,ㄷ 이런 글자 따라 쓰기를 하다가 마루에 뒹굴 하며 그림책을 보는, 여느 날과 다름없는 여름날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늘 보는 '귀여운 손'이 '귀여운' '손' 덩어리가 아니라 ㄱㅜㅣㅇㅕㅇㅜㄴ ㅅㅗㄴ으로 각각의 기호들이 결합을 시작했다. 책 가득한 검은 기호들이 움직였다. 차르르 귀여운 손 차르르 할아버지 차르르 손자 그리고 문장을 잇는 와, 는, 이. 동사 했습니다. 였습니다. 따옴표 속 대화.
머리 꼭대기에서 콰쾅 벼락이 치는 것 같았다. 나는 슬리퍼를 끌고 대문밖으로 뛰어나갔다. 간판의 글자들이 변신 합체를 했다. 고향다방, 안신약국, 해태슈퍼, 동주문구, 우체국...
사십여 년이 지난 지금도 벼락 치듯 깨달은 글자 깨친 날의 감각을 기억할 정도로 놀라운 순간이었다.
글자는 나에게 안다는 것, 깨닫는 것은 순식간에 오는 기적임을 알려주었다.
사춘기 시기, 청춘의 가슴속 불과 물이 요동칠 때 앞뒤 없이 쓰고 지우는 불멸의 밤에 글자는 내 곁에서 떠나지 않는 동료로 서 있었다. 순간순간 덮치는 감정과 눈물이 무엇인지 어떤 것인지 밖으로 꺼낼 때 시작은 늘 글자였다.
또 세상에 기록할 만한 아름다운 것들의 순간을 잡아두는 것도 글자였고, 그 순간이 내게 다가와 가슴을 칠 때를 공유하고픈 연결 욕구를 풀어주는 것도 글자였다.
내향성이 99%인 사람이 소란스럽고도 매력덩어리인 세계라는 물음표에 살짝 손가락을 걸 때 글자로 툭툭 건드렸다. 책을 읽고 공부하고 온라인을 리서치하고 질문을 적는다. 스스로 답을 해보다 부족하면 질문에 답해줄 사람을 만나 대화로 배우고 다시 나의 글자로 남겨둔다.
글자란, 글자로 이은 문장이란, 문장의 아름다움 조합인 글은 나를 담는 그릇이자 가장 익숙하고 편안한 도구이며 아름다운 구조물의 집합체이다. 그리고 '나' 자신이기도 하다.
종종 요즘은 어디까지 나를 글에다 담을 수 있나 점검한다. 요즘은 거의 대부분의 얘기를 검열 없이 담을 수 있다. 사회와 윤리, 도덕이 나의 글쓰기를 규제하지 않고 내가 쓰고 싶다면 뭐든 쓸 수 있다. 어떤 주제여도 글을 꺼내는 것의 두려움의 문턱이 점점 낮아지고, 눈치를 별로 보지 않는다.
글은 세계로, 무한의 상상과 삶이 있는 곳으로 가는 길이었다. 내가 지금 꾸준히 브런치에 글을 쓰는 이유도 같은 이유이다. 다양한 사잇길 같은 글들이 내게 세계의 무한 상상의 컬러를 보여주었듯 누군가에게 이런 얼굴과 색깔이 있구나 새로운 길의 속삼임을 들려주고 싶은 것.
앞으로도 남은 삶도 글자와 함께 여행하고 머물 것이다. 지금까지처럼 나의 세계와 접면 하는 감수성을 담아주는 글과 글자와 걸어가게 되겠지, 그건 너무 자연스러운 일상이다.
눈치 보지 않고, 반응에 연연하지 않는 일상인 글쓰기에서 풀지 못한 숙제가 하나 남아있다. 언젠가 죽기 전에 꼭 써야 할 사람에 관한 이야기 하나가 맴맴 심장을 돌고 있다. 27년 동안 썼다 지운 글과 시가 산더미 같고 이렇게 막막할 수가 있나 싶을 정도로 꺼내는 시작을 못한 이야기 하나.
27년 전 젊디 젊은 스물다섯에 세상을 떠난 내 연인에 관한 이야기이다. 지인들과 알만한 사람은 아는 이야기이고 말로는 다양하게 했지만 글로는 한 번도 담지 못했다. 글로 써서 내보내면 그 사람의 흔적마저 다 보내버릴 것 같은 두려움인지, 내 연인을 통속 멜로로 팔고 싶지 않은 자존심 때문인지. 언젠가 25년의 삶을 경주라는 작은 도시에서 살다 그곳에서 죽은 나의 첫사랑에 관해서, 그가 내게 알려준 것들을 처음부터 끝까지 잘 담아서 마침내 내게서 완전히, 퍼펙트하게 떠나보내고 싶다.
상처와 눈물의 시간은 끝나고 아름답고 행복한 기억이 주로 남은 지금, 요즘이야말로 쓸 수 있을 것도 같은데 아직 마음에 기둥이 딱 꼽히지 않는다. 이 글을 쓰고 나면, 선정이 되어서 타인의 세계로 나아가면 도망칠 곳 없이 쓰지 않을까 하는 떠미는 심정으로 쓴다.
오늘, 지금, 바로, 여기, 망설임 끝에.
2025년 9월 8일
기적은 가끔 온다. 글자가 온 날, 사랑을 시작한 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