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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구

by 피라



진돌이는 내 어릴 적 가장 친했던 친구 이름이다. 대략 6살부터 8살까지 함께 살았던 백구다. 종일 백구는 날 졸졸 따라다녔고, 우린 마당에서 함께 걷고, 관찰하고, 뒹굴며 보냈다. 8살, 학교에 갈때, 진돌이와 헤어지는 것이 힘들었다. 방과 후 마당에 들어서면 저 끝에서 달려오는 백구와 포옹했다. 진돌이는 어린 시절 베프였다.


어느 날, 학교에서 돌아왔는데, 조용했다. 진돌이가 없었다. 아버지에게 어찌된 일인지 물어보았다. 한 동네에 사는 다른 집에 진돌이를 주었단다. 그게 진돌이를 위해 더 좋은 일이라며, 횡설수설, 이해할 수 없는 말을 들었다. 이해되지 않았다. 울고불고, 부모는 같은 말을 반복했다. 세상이 흔들리며 무너지고 경험을 한 동안 하며 아이는 자랐다.


사춘기 때도, 대학생 때도 가끔 혹은 자주 진돌이 생각이 났다. 진돌이 같은 개를 키우고 싶었다. 부모의 돌아오는 대답은 "마당이 없어서 안돼!"였다. 오랜 세월 마당 없는 집을 전전했다. 27살에 드디어 마당있는 집으로 이사갔다. 가장 먼저 아르바이트로 번 돈으로 백구를 입양했다. 백구의 이름은 고민할 필요도 없었다. 진돌이. 그때쯤이었다. 아버지로부터 어릴 적 진돌이의 진실을 알게 된 때가. 8살 그때 진돌이는 쥐약을 먹고 죽었다고 털어 놓았다. 어린 자식에게 너무나 소중한 친구의 죽음을 잘 설명할 방법을 못 찾아, 다른 곳에 살고 있다고 얘기했다고.


1997년 가을부터 가족이 한 명 늘었다. 대형견의 수명은 소형견보다 짧다. 백구는 평균 8년 정도 살다 생명이 다했다. 그때는 아기 백구를 입양하길 반복했다. 25년째 백구와 함께 산다. 그 동안 여러 백구가 마당에서 살다가 마당에서 죽었다. 수컷이면 진돌이, 암컷이면 진순이라는 불리는 백구는 어릴 적 내 친구다.


지금 마당에서 뛰어노는 백구는 2014년 2월에 데리고 왔다. 아버지와 도시 외곽의 한 가정집에 갔다. 다른 형제들은 다 입양되었고, 딱 한 마리가 남아 있었다. 상태가 말이 아니었다. 학대를 받았는지 숨기만 하고, 외모도 작고, 영양 상태도 좋지 않았다. 무엇보다 강아지인데도 귀여운 느낌이 하나도 들지 않았다. 찌질한 외모에 성격도 문제가 있어 보였다. 데려가고 싶지 않았다. 정말 마음 내키지 않았다. 아버지도 나와 마음이 같았다. 누구라도 그러했을 것이다. 그 순간 짧은 생각이 스쳤다. 모두 우리와 같은 생각일거야. 아무도 저 애를 데리고 가지 않을 거야. 그럼 이 곳에서 살겠지. 그곳은 뜬장에서 개를 키우는 나쁜 환경이었다. 불쌍했다. 우리는 불쌍해서 그 백구를 데려왔다. 잘 자랐다. 무럭무럭 자라 성견이 되었다. 4년 뒤에 엄마가 돌아가셨다. 이듬해에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나 어릴 적에, 백구의 죽음을 자식에게 어떻게 설명해야 할 지 몰랐던 부모는 자신의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자식에게 가르쳐주지 않고 죽음을 맞이했다.


지난 주말, 정든 옛집을 찾았다. 진돌이는 이제 10살이다. 건강하다. 사람으로 치면 80대쯤 될까? 엄마, 아버지가 돌아가신 나이다. 이전의 백구들에게는 정말 정성을 쏟았다. 좋은 음식을 직접 해 먹이고, 틈만 나면 산책을 시키고, 심장사상충도 지속적으로 먹이고, 검진도 하고, 병원에서 하라는데로 마음을 담아 잘 보살폈다. 하지만 기대보다 일찍 세상을 떠났다. 지금의 진돌이는 방치하듯 키웠다. 기본 훈련인, 안돼!도 가르치지 않았다. 늙은 나이에도 너무나 건강하고, 너무나 활발하다. 자식도 그런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정말 잘 키워야겠다고 작정하고 아이에게 이것저것 많이 관여하는 것보다, 가만히 내버려 두는 것이 아이에게 더 좋은 것은 아닐까? 한 때 육아 책을 많이 읽었다. 하나가 기억난다. 북유럽 작가의 책이었던 것 같다. 대충 요약하면, 부모가 아이를 잘 키워야겠다는 마음에, 아이의 행동과 말에 간섭만 하지 않아도, 육아 문제의 대부분은 해결된다는 이야기였다. 숙식과 안전한 환경만 주어지면 아이는 알아서 잘 큰다는 말이다. 우린 너무 많이 간섭하고, 너무 많이 걱정하는 것 같다. 타인의 삶에도, 자신의 삶에도 걱정과 염려가 너무 많다. 일상은 걱정을 생산하는 공장 같다. 죽음은 불필요한 걱정을 없애고, 중요한 것을 일깨우는 좋은 선생이다. 살아있는 것들은 모두 죽으니, 살아있는 존재가 곧 선생인 샘이다. 백구는 내 친구이자, 선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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