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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곡점

by 피라


부모는 평생 남의 집을 떠돌았다. 부모에 속한 삶을 살았던 나도 마찬가지였다. 부모는 70살이 넘어서야 자신의 집을 겨우 가지게 되었다. 아버지는 대문에 자신의 이름 석자가 적힌 문패를 달았다. 얼마 뒤 그 집은 아무도 살지 않는 집이 되었다. 평생 절실한 꿈이었던 내집 마련을 했지만, 비워진 집이 되어버린 아이러니. 난 퇴직 후 아무도 살지 않는 그 집을 작업실로 이용했다. 그 집에서 첫 번째 책과 두 번째 책을 썼다. 경계성으로 본 생태주의라는 끝내지 못한 논문을 썼고, 세상에 나오지 못한 환경 교육, 동물 윤리, 음식 교육, 쓰레기 윤리, 여행과 삶에 대한 글을 썼다. 교통방송 생활 속 환경 이야기 시나리오, 부산일보 환경 칼럼, 멧돼지 책도 그곳에서 썼다.


2012년 가을에 결심했다. 비워진 그 집을 리모델링해서 본격적 집필을 위한 작업실로 만들기로. 리모델링에 대한 경험과 정보를 얻으려고 비슷한 사이즈의 주택을 리모델링해서 게스트하우스로 오픈한 경주의 지인을 만나러 갔다. 1박 2일 동안 여러 좋은 이야기를 나누고 부산으로 오는 차 안에서 문득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나도 게스트하우스를 해 볼까? 집이 넓으니, 60% 정도는 게스트하우스로 꾸미고, 나머지 40%는 나의 작업실로 꾸미면 어떨까?'라는 생각이었다. 평생 사업 같은 것과는 담을 쌓고 지냈고, 사업을 할 생각도 전혀 없는 나였지만, 첫 배낭여행 시절 나를 길러준 공간처럼 의미 있는 게스트하우스에 대한 기억 때문에 마음이 끌렸다. 계획은 덜컥 변경 되었다. 작업실 리모델링에서 게스트하우스 리모델링으로 바뀌었다.


책상, 책장, 데크, 곳곳의 나무 선반 등의 나무 작업은 거의 내가 직접 했음에도 1억 가까운 돈이 들어갔다. 뼈대만 두고 모두 새로 만들어야 하는 신축과 같은 리모델링이었기 때문이었다. 4개월의 공사 기간 동안 게스트하우스의 이름은 달이라고 지었다. 달은 스스로 빛을 내지 못한다. 반대편 어딘가에 태양의 빛을 받아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는 것이 달이다. 태양 빛이 없으면 달은 자신의 존재를 드러낼 수 없다. 게스트하우스를 찾는 여행자들로 인해 존재하고 그들로 인해 빛나는 공간을 만들고 싶은 염원을 담았다. 케스트하우스의 컨셉은 조용한 동네에서 조용히 머물며 사색하려는 여행자들을 위한 책과 작은 정원이 있는 공간이었다. 하나 더 있다. 구례산 우리밀로 직접 구운 빵으로 아침 식사도.


2013년 3월에 게스트하우스를 오픈했다. 공사를 하면서도 내내 생각했다. 게스트하우스가 있는 곳은 여행자들이 올 이유가 단 0.1%도 없는 곳이었다. 누가 이곳에 올까? 나 같아도 오지 않을 것 같다며, 여기서 숙박하는 사람이 만약 있다면 정상적인 사람은 아닐 거라며 지인들과 낄낄댔다. 그래도 공사는 계속 진행했다. 그냥 내가 좋아서 하는 것이니까. 진지하게 1년에 10명 찾으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손님이 오지 않을수록 난 내 일에 집중할 수 있으니 그것 또한 좋은 일이라고 생각했다. 고민 끝에 게스트하우스의 규칙도 정했다. 1. 술마시기, 고기 굽기, 떠들썩하게 이야기하기를 바라는 손님은 올 수 없다고 공지했다. 2. 다른 이들의 수면을 방해하면 안 되니, 밤 10시 30분 이후에도 이야기를 나누려는 손님도 올 수 없다고 했다. 이곳을 찾는 여행자들은 조용히 머물며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거나 책을 읽으며 자신의 삶을 돌아보는 시간이 필요한 사람들로 정의했다.


결과는 놀라웠다. 심야식당의 대사처럼 손님은 "제법 왔다" 혼자 여행하는 이들이 많이 왔다. 주로 퇴직을 하고 새로운 삶을 준비하는 30대였다. 취준생도 가끔 왔고, 어떤 이는 검색으로 주인장이 한 때 유명했던 취업 분야 책을 쓴 사람이라는 걸 찾아내고 아예 진로 상담을 위해 숙박하기도 했다.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저녁이면 게스트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입대를 앞둔 이, 회사를 그만 두고 며칠 뒤 유학길을 떠나는 이, 회사를 그만 두고 무엇을 할 지 고민에 빠진 이, 휴학 후 여행 중인 학생, 모든 재산을 정리하고 낯선 곳에 새로운 출발을 하려는 이. 단골 손님도 생겼다. 재방문율이 높았는데, 어떤 게스트는 매년 한 두번씩 꼭 찾기도 했다. 회사를 그만두고 힘겹게 공무원 시험을 시작할 때 방문한 어떤 손님은, 몇 년 뒤 공무원 시험에 합격했다고 왔고, 얼마 뒤 결혼 할 사람과 함께 왔고, 아이를 낳은 뒤에도 찾아 왔다. 생각보다 많은 손님들이 왔고, 여러 좋은 인연들이 생겼다. 정성껏 꾸미고 준비한 공간을 멀리서 찾아온 귀한 이들과 저녁에 마주 앉아 각자의 아무 목적도 없이 서로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풍경은 7년 동안 지속되었다. 생각해보니 참 좋은 시간들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니, 게스트하우스의 이름은 달이 아니라, 변곡점이라고 했어야 했나 싶기도 하다. 달집을 찾은 대부분 손님들은 인생의 변곡점을 지나는 이들이었으니까.


오늘 새벽 문득 생각이 든다.


삶의 변곡점은 특정 시기가 아니라, 바로 이 순간이라는 걸


숨 쉬는 순간 순간이 삶의 변곡점이라는 걸,


바로 이 순간 무엇을 생각하고 어떤 행동을 하느냐에 따라 삶은 완전히 달라질 수도 있겠다. 희망적인 말이기도 하고, 무서운 말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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