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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필 Mar 28. 2024

스트레스의 본질

동물과 식물의 차이는 움직임 여부다. 사람은 동물이다. 사람은 움직인다. 조금도 움직이지 않은 사람이 있다면 살아도 산 것이 아니다. 그런 인간을 식물인간이라고 한다. 식물인간이 되고 싶은 사람은 없다. 죽은 거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제대로 산다는 것은 움직이는 삶이다. 많이 움직인다고 해서 좋은 건 아니다. 적게 움직인다고 해서 나쁜 것도 아니다. 목적 없이 많이 움직이기만 하는 건 에너지 낭비다. 적게 움직여도 목적에 부합한다면 좋은 움직임이다.


목적이 분명하지 않은 사람은 고민한다. 고민이라는 것은 움직임의 내용, 방향, 속도 등을 생각하는 것이다. 고민의 끝은 선택이다. 선택은 목적의 이룸이다. 목적이 없는 사람은 움직임에 의미가 담기지 않는다. 의미 없는 움직임은 의미 없는 삶의 다른 말이다. 생각이란 움직임을 생각하고 결정하고, 움직임을 통해 또 다른 움직임을 생각하는 과정이다. 어떤 미동도 하지 않는 생각은 물빠진 독에 물을 쏟아붓는 일이다. 의미가 없다. 허나 당장 행동으로 이어지지 않더라도 생각이 쌓여 언젠가는 행동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이런 목적에 둔 정신적 활동을 교육이라 부른다.


어떤 목적이 좋은 목적이고, 어떤 목적이 나쁜 목적인지 서로 다투는 일은 무의미하다. 다툼의 과정에서 행동이 일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논쟁과 토론의 목적이 특정 행위를 하기 위한 선택이라면 의미가 있다. 하지만, 논쟁과 토론 자체가 목적이라면 에너지 낭비로 끝날 가능성이 높다. 동물의 숙명, 동물의 의미란 길을 찾는 것이다. 깜깜한 땅 속의 두더지가 코의 감각으로 길을 찾아가는 것과 비슷하다. 보고 듣고, 느끼고 생각하지만 길을 찾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 인간이 길을 찾지 못하는 이유는 더 나은 길을 찾고 싶은 욕망 때문이다.


삶이란 행위고, 행위가 없는 삶은 죽은 삶이다. 살아가는 행위를 위해서는 두더지가 길을 찾듯 선택을 해야 하다. 새로운 길을 파내는 것도 물론 선택이다. 선택이란 행동의 다른 말이다. 선택은 곧 행동이고, 선택은 곧 길이다. 인간의 길, 어떤 사람은 그걸 도라고 부르기도 한다. 각자에게는 각자가 선택한 것이 진리다. 모두가 각자의 상황에서 최선을 다한다는 말이기도 하다. 선택은 결과를 보장하지 못한다. 사람들은 결과가 나쁘면 나쁜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결과가 좋으면 좋은 선택이었다고 말한다. 결국 삶은 좋은 것인가? 나쁜 것인가의 기준으로 판가름된다.


좋은 것은 나의 생각, 나의 행동이 맞다고 여기는 것이다. 나쁜 것은 나의 생각, 나의 선택에 대한 확신이 없는 것이다. 전자는 생각은 적고 행동은 많다. 후자는 생각은 많고 행동은 적다. 자신이 맞다고 생각하지 않으면 행동하기 어렵다. 절대 진리를 찾기 전까지 행동하지 않는 것은 살아 있는 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는 걸 의미한다. 살아도 산 것이 아니다. 통장 잔고가 100억이 되기 전까지 하고 싶은 일을 미루겠다 마음 먹는 것은 죽은 삶이다. 지금 무언가를 하고 싶지만, 나중에 더 좋은 조건을 갖춘 다음에 제대로 그것을 해야겠다는 사람 중에 그 일을 실제로 한 사람은 거의 들어보지 못했다.


자기편향은 나쁜 것이 아니다. 편향이 없으면 인간은 선택하지 못한다. 선택하고 행동하지 않으면 죽은 삶이다. 원하지 않는 것을 선택하는 죽은 거나 다름 없는 삶이다. 무엇을 선택해야 할 지, 무엇을 진정으로 원하는지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한 때 알아도 끝없이 변한다. 좋은 삶이란 편향과 주관으로 무언가를 선택해 행동으로 채우고, 그 과정을 통해서 균형과 객관을 통해 배우는 삶이다. 삶의 목적은 특정 조건을 갖추는 것이 아니라, 치우친 선택과 불완전한 행위를 통한 끝없는 배움이다.


내 생각이 맞다. 저들보다 내가 잘났다라는 태도는 삶의 독이다. 문제 해결도, 더 나은 선택도, 더 나은 행위도, 배움도 일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특정 조건을 이유로 타인을 하찮게 여기는 사람을 멀리해야 하는 이유다. 직급, 권력, 재력, 외모, 스펙, 소유물 등이 조건이다. 삶은 조건에 관한 문제가 아니라, 상호작용에 관한 문제다. 아무리 좋은 조건을 가져도 형편없는 상호작용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나쁜 상호작용과 권력은 비례 경향이 있다. 권력의 목적은 도움이다. 더 큰 권력을 가졌을수록 더 많은 사람을 도와야 한다. 그게 권력의 목적이다. 자신이 이익, 자신의 이해, 자신의 조건이 권력 추구의 목적인 사람들은 위험하다.


곧 선거다. 그들이 선출직이 되고자하는 이유를 살펴야 한다. 자신을 돕는 것이 목적인지,, 타인을 돕는 것이 목적인지를 잘 살펴야 한다. 좋은 사회를 만드는 방법은 간단하다. 타인을 돕기 위해 배움을 멈추지 않는 사람, 그런 사람들에게 정치를 맡기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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