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들과 독서 모임을 한 지 1년이 넘었다. 지난 달에 한 분이 읽고 있는 책을 소개했다. 제목이 ‘세계 끝의 버섯’이라 했다. 송이버섯에 대한 이야기인데 자본주의와 미래의 희망을 말한다 했다. 두꺼운데 무척 재미있다고 했다. 집으로 오며 전화기를 인터넷 서점에서 책을 찾아보았다. 몇 일 뒤 버섯 책이 집에 도착했다.
부제를 참 잘 뽑았다. 공감된다. ‘자본주의의 폐허에서 삶의 가능성에 대하여’ 맞다. 뉴스로 접하는 세상, 일상의 풍경으로 들어오는 세상을 규정하기에 가장 적절한 말은 폐허다. 한국도 한때는 숨막히도록 아름다운 도시 풍경, 시골 풍경을 가진 적이 있다 한다. 개발이라는 맹목적 종교 때문에 도시든 시골이든 눈에 들어오는 풍경은 그렇지 않아도 피곤한 일상을 더욱 피곤하게 만든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공통적으로 하는 말이 있다. 아름다운 풍경 같은 낭만적인 소리 하고 있네. 그때는 굶어죽는 배고프고 힘든 세상이었어. 이만큼 풍요롭게 먹고 살게 된 것을 감사하게 여겨야지.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은 주장이다. 맞는 말이다. 그런데, 어떻게 된 일인지, 왠만한 음식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을 정도로 다양하고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풍요롭게 살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정신은 점점 황폐해지는 것 같다. 자본주의의 폐허라는 말은 물리적 풍경뿐 아니라, 정신적 상태도 포함하는 말 같다.
어제 문득 사이먼앤가펑클의 ‘스카보로의 추억’이 듣고 싶었다. 듣고 싶은 노래는 언제든 바로 들을 수 있는 좋은 세상이다. 노래를 듣다가 스카보로라는 영국 도시가 궁금했다. 스카보로는 영국 동부 해안의 중간쯤에 있는 항구도시다. 스카보로의 옛날 사진과 지금의 사진을 비교했다. 그리고 한국 곳곳의 옛 모습과 지금의 모습을 비교해본다. 한국의 풍경은 폐허다. 싸구려 건축물의 폐허, 아파트의 폐허다. 한국의 공간은 오직 내집마련과 오직 시세차익이라는 욕망만 타오르는 폐허다. 왜 우리는, 우리가 사는 공간을 아름답게 가꾸지 못하는가?
(스카보로 해안 풍경, 19세기와 현재 모습 비교)
(부산 송도 해안 풍경, 1900년대초와 지금 모습)
물리적 공간과 정신적 상태는 서로 상호작용하는 것 같다. 아름다운 여행지에 가면 기분이 좋아지고 힐링이 되어 에너지가 샘솟는 경험을 하곤 하니까.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삶이 힘들고 정신적으로 지쳐 있다면 그 이유의 일부는 눈에 들어오는 풍경 때문 아닐까? 진짜 세상인 오프라인 세계는 이미 틀렸으니 액정 속 가상 세계 속에서 빠져나오지 않으려 하는 것도 일상의 폭력적 풍경과 연관된 일 아닐까? 한 나라를 아름답게 가꾸는 것, 그건 국가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 중 하나라 생각한다. 그래야 삶의 질이 올라갈 수 있으니까. 더 이상 개발이라는 단어가 폭력과 탐욕이 뒤섞인 폐허의 다른 말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