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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위사실 유포로 협박을 받았다

by 피라


취업역량강화 교육 글을 페북에 올리고 나서 오늘 하루 종일 바빴다. 여기저기서 전화가 왔다. 통화를 많이 했다. 몇 명 보지도 않는 일기장 같은 페이스북이 갑자기 100만 유튜버가 된 기분이 들었다. 페이스북은 진작에 접을려고 했다. 그냥 일기를 쓰고 말지. 친구를 늘릴 생각도 없고 의미도 없다. 그냥 그때그때 생각나는 단상을 간단히 메모하듯 기록하는 개인 일기장과도 같은 곳이다. 그것 말고는 아무 의미가 없었다. 접어야지 접어야지 생각했던 곳이었다. 오늘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 열심히 페북에 글을 올려야겠다. 더 날카롭고 더 공격이고 더 구체적으로 글을 써야겠다. 이제부터 진짜 내 모습을 보여주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 동안 너무 술에 물탄듯, 물에 술탄듯한 글을 썼다. 반성한다.


업체쪽 사람이 내게 전해라는 말도 들었다. ‘페이스북에 올린 당신의 글들과 댓글과 댓글을 단 사람들 모두 캡쳐를 했고, 허위사실 유포로 문제제기(소송)를 할 수 있으니 잘 생각해라’는 무시무시한 협박을 전해 들었다.(어떡하지, 내 페북에 자주 댓글을 다는 사람들 몇 몇은 나보다 더 또라이들인데… 쿵푸허슬 돼지촌의 무림고수들처럼 정체를 숨기고 살아가는 사람들인데…)


무척 옹졸한 나는 갑자기 화가 치밀어 올랐다. 난 굉장히 다혈질이다. 열받으면 물불 안 가리는 저돌형 인간이다. 초등학교때부터 싹수가 노랬다. 선생님과 복도에서 고함치고 싸웠다. 중학교, 고등학교는 말할 것도 없다. 정의롭지 않은 일, 공적으로 잘못된 일을 보면 참지를 못했다. 길다가 애매한 무단횡단 같은 과잉단속하는 경찰하고도 여러번 싸웠다. 버스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는 수십명 사람들을 상대로 경찰의 잘못된 행태를 연설하고 박수를 받기도 했다. 군대에서도 중대장에게 대대가 떠나갈 정도로 고함을 질러 끝끝내 중대장의 사과를 받을 정도로 또라이다. 그것도 이등병때다. 회사에서도 열받으면 임원이고 뭐고 없었다. 신입사원 때 다른 부서 과장과 논쟁하다가 “너 언제 입사했냐?“라는 말에 열받아 인사, 총무, 노무 부서가 있는 1층 전체가 떠나갈 정도로 고함치며 싸웠다. ”일 이야기하는데 어디서 근속기간을 따지냐고, 일을 그따위로 하냐고!!“ 희한한 건 가는 곳마다 인간관계가 좋았다. 다들 나를 좋아했다. 시원시원하고 할말 하고, 호쾌한 캐릭터였나 보다. 무엇보다 깊이 생각해서 잘못된 일에만 화를 냈다. 퇴직해서 오래동안 쌈닭으로 살았다. 구청, 시청, 정부게시판 어디든 가리지 않고 옳지 않은 일에는 참지 않고 민원을 올리고 찾아가 목소리 높혀 따졌다. 한 참을 그렇게 살다보니 이제는 좀 조용히 살고 싶어졌다. 호르몬이 수치가 떨어진 듯 했다. 무엇보다 문제를 제기하는 것보다 문제를 해결하고 싶었다. 문제제기가 문제해결이라 착각했던 내가 부끄러웠다. 무엇이 나의 본 모습인지 난 모른다. 관심도 없다.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산다. 오늘 통화중에 약간 데시벨이 올라간 적이 있었다. 나는 약간인데, 상대는 당황했을지 모르겠다.


한 번 열받으면 끝장을 보는 이런 기질을 고치려고 무던히 애를 썼다. 칼맞고 드럼통에 쳐박혀 공구리쳐 바다에 수장되거나 제 화를 못이겨 단명할 것 같았다. 명상을 하러 다니고, 국선도, 요가, 안 해본 것이 없다. 많이 나아졌다. 하지만 나아졌을뿐 고쳐지지 않는다. 나도 나를 어쩔 수 없다. 타고났다. 만주에서 살았던 할아버지를 마적들도 무서워했다 했다. 그 피를 받은 것 같다. 그래서 되도록 사람 안 만나고 혼자 책보고 사색하는 시간 가지며 조용히 지내는 삶을 선택한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살고 있다. 조용히 살다 갈려고. 필요하면 의미 있는 일 조금 하고.


아침에 페북에 글을 올리고 가만 생각해 보니, 특정 교육청, 특정 사업에 대한 비난이 글의 목적이 아니고 이참에 진짜 학생들에게 도움되는 교육을 생각해 보고 변화의 계기를 마련하자는 취지이니 특정 조직이나 특정 사업을 특정하는 표현들은 송두리째 고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허위사실 유포로 협박을 해오니 참을 수가 없는 것이다. 사그라드는 불씨에 휘발류가 끼엊어졌다. 나도 이제 나를 어쩔 수 없다. 또 숨어서 나의 글을 보고 있을 바로 당신에게 경고하는 글이다. 정확히 말하면 조언하는 글이다.


나의 이렇게 답했다

“소송하라고 전해 주십시오. 제발 소송하길 바란다고 전해주십시오. 주위에 널린 인간들이 변호사이니 기다리고 있겠다고 전해주십시오. 필요하면 내가 먼저 소송을 할 수도 있으니 언제든 알려 달라 하십시오.”


나의 대답을 제대로 전해 들었는지 당신께 묻는다.


내가 불같이 화가 난 포인트는 두 가지다.


1. 놓친 문제점이 없는지 사업을 돌아보는 교육인으로서의 일말의 양심도 없이 양아치같은 치졸한 협박을 한 부분.

2. 직접 내게 의사를 전하지 않고, 비겁하게 제 3자를 통해 전달한 부분.

(전화 통화로는 바퀴벌레 같은 행동이라고 했는데, 잘못된 표현이다. 인간과 바퀴벌레는 이질성이 너무 많으니까. 저도 살아보려고 하는 바퀴벌레의 입장을 헤아리지 않는 일방적 혐오가 담긴 표현이다. 떳떳하고 당당하게 직접 연락을 해서 내가 잘못 알고 있는 것이 있으면 바로잡으면 될 일이다. 정체를 드러내지 않고 숨어서 비겁하게 말을 전하며 협박같지도 않은 협박을 하는 그런 행태는 그냥 넘어갈 수 없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그 정도 자기 의사 표현을 하지 못하다면 나는 삶을 걸고 싸울 것이다.)


지금도 자신의 정체를 밝히지 않고 이 글을 보고 있을 당신에게 말한다.


문제를 덮으려 하지 말고, 문제를 해결해라.


어줍짢은 협박과 회유 말고 사실과 틀린 것이 있으면 알려주고 바로 잡으면 되고,

강사료와 운영비 배분 과정에서 문제가 없었는지 돌아보면 된다.

당신의 말대로 4억이 강사비이고 한치의 문제도 없는 사업이라면

내게 증명해라. 이 사업의 최초 기획부터 입찰과정, 수주, 진행까지 한 치의 문제도 없었다면 내게 증명해라. 내게 증명하고 싶지 않다면 당신 말대로 법정에서 모든 걸 따져보자. 자신 있으면 덤벼라.

이 모든 것이 나의 경솔한 오해와 추측이었다면, 나는 말할 것이다.

“아 그렇군요. 오해가 있었군요. 신경 쓰게 해드려 죄송합니다.”

그걸로 부족하다면 소송해라. 언제든 준비가 되어 있다. 오라. 새로운 경험은 항상 환영한다. 나는 배움과 성장으로 이루어진 짜릿한 여행같은 소송이 될 것이고, 당신은 지옥을 맞볼 것이다. 협박이 아니다. 휴머니즘에 기반한 따뜻한 조언이다.


당신은 오늘 나의 페이스북을 100만 구독자 유튜버 취급을 했다.

고맙다. 그래서 많은 생각을 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런 방식의 교육 속에 학생들에게 진짜 도움을 주려는 참된 마음이 있는지 스스로 성찰하라.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면 반성하라. 예산 사업 받아서 도급에 도급에 도급을 하며 너도나도 생계를 유지하는 어려운 사정. 나도 잘 안다. 알지만 도가 지나치다. 도가 결코 지나친 것이 아니라면 왜 아닌지 설명해라. 여러가지 현실적 어려움 등 내가 놓치는 것이 있다면 함께 이야기하고 방법을 찾아 해결해 나가면 된다. 그러면 나도 몰랐던 것을 알게 되고, 최선의 방식으로 문제가 해결될 것이다. 좋은 기회를 놓쳤다. 하지만 아직 기회는 있다. 잘 생각해라. 자존심 같은 것은 잊어라. 당신이 교육 언저리에서 교육이 무엇인지, 어떤 교육을 해야 학생들의 미래에 조금이라도 실질적 도움이 되는지 조금이라도 고민해본 사람이라면. 그런 고민을 가장 중요하게 여겨라. 만약 당신이 그런 고민에 진정성을 담을 수 있는 사람이라면 오늘의 협박을 귀엽게 받아들이고 용서할 수도 있다. 요즘 나 무척 바쁘다. 열심히 원고 작업을 하고 있다. 그런데도 이렇게 여기에 시간을 쏟는 의미를 잘 생각하기 바란다.


나는 누구이며, 이 사업을 왜 하는지를 생각하기 바란다.

그 질문에 제대로 대답할 수 없다면 당신은 이 업계를 떠나는 것이 맞다.

새로운 직업을 갖도록 내가 적극적으로 도와줄 것이다.

당신뿐 아니다.

이 사회 많은 영역이 바뀔 것이다.

그런 긍정적 변화에 당신 스스로 불쏘시개가 되고 싶다면 말해라.

언제든 오늘처럼 협박하고 덤벼라.

무척이나 바쁘지만,

기꺼이 당신에게 불을 붙여 훨훨 타오르게 해주겠다.

이 사회의 빛이 되게 해 주겠다.



P.S : 격정적으로 글을 몇 번 썼더니 기운이 펄펄난다. 새 사람이 된 것 같다. 젊어진 것 같고, 다시 태어난 것 같다. 살아 있는 것을 느낀다. 그 사람에게 고맙다. 본래 나의 모습을 깨닫게 해줘서. 그 동안 너무 가식적으로 산 것 같다. 용서 받고 자시고 할 것도 없다. 인연되면 법정에서 만나든지, 우연히 만나면 호쾌하게 웃으며 대의를 도모하든지, 계속 내 욕을 처먹으며 남은 생 살아가든지. 알아서 선택하면 될 일이다. 후련하다. 본래 나의 정체성인 쌈닭으로 살아야겠다. 쌈닭의 본능을 글에 어떻게 녹여낼지 생각하니 설렌다. 내 모습을 거부하고 예의 바른 글만 쓰려하다보니 기혈이 다 막혀서 답답한 삶이 되었나 보다. 인생에 날개를 단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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