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정장애

by 피라

고민과 사유는 다르다. 고민은 제자리에서 빙빙 도는 것이다. 에너지가 들어가고 움직이며 빙빙 돈다. 브레이크와 가속기를 함께 누르는 것이다. 핸들을 한 방향으로 돌려 고정시킨 것이다. 분명히 힘은 들어가는데 움직임이 없다. 분명히 움직이고 있는데 잠시 뒤에 제자리다. 그런 상태를 고민이라 부른다.


사유는 신나는 드라이빙과 같다. 멋진 풍경이 펼쳐진 교외, 꽉 막힌 도심의 러시아워든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사유다. 사유는 두 가지가 있다. 속도를 내 마음대로 조절하는 사유와 내 마음대로 속도 조절이 되지 않는 사유다. 문제가 잘 풀리지 않거나, 협업하는 경우는 자의적으로 속도조절이 자유자재로 잘 되지 않는다. 과정을 통해 목표에 가 닿는 것이 사유다. 큰 목표, 목적, 작은 목표에 가 닿으면 우리는 배움, 깨달음, 성장의 느낌을 얻는다. 고민과 사유의 공통점은 둘 다 에너지가 소진된다는 점이고, 차이점은 고민은 제자리, 사유는 목표를 향해 나아간다는 점이다. 고민이 사유가 되기도 하고, 사유가 고민이 되기도 한다. 삶의 문제는 고민을 사유로 전화하는 것이다.


7년간 운영하다 폐가가 된 게스트하우스를 어떻게 할 지, 고민을 꽤 했다. 굳이 ‘고민’이라는 표현을 한 이유는 이제 알 것이다. 더 이상 나아가지 않고 빙빙 돌았기 때문이다. 서울에서 부산을 가야 하는데, 달리고 달리다보면 원점이었다는 뜻이다. 그때마다 힘이 빠진다. 무기력해진다. 무의미하게 느껴진다. 그 절정은 두 가지다. ‘컨셉잡기’와 ‘이름짓기’다. 3년 시간 동안 이름을 정하지 못했다. 컨셉도 계속 빙빙 돌았다. 고민의 시간이었다는 뜻이다. 고민이 너무 긴 시간 지속되면 번아웃으로 연결되는 듯하다. 그렇게 잠시 떠나기를 반복했다. 컨셉은 이제 겨우 잡았다. 다음 세 공간으로 운영하기로 했다.


1. 게스트하우스.

2. 서점.

3. 워케이션


문제는 이름이다. 이름은 정말 어렵다. 계속 빙빙돈다. 평생 이름만 고민하다 아무것도 시작못하고 늙어 죽어버릴 것 같다.

달집, 여행자의 달, 사각사각, 페퍼민트, 타마린드, 메타인터뷰, 달이북스, 달집서재, 사각, 달, ….. 얼마나 많은 이름들이 빙빙 돌다 원점으로 돌아왔는가?

고민이라는 단어가 지긋지긋하다.

AI의 도움을 받아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생각한다.

나는 왜 결정하지 못하는가?


소송을 하면 몇 년씩 걸린다고 비난을 할 일이 아니다.

소송이야, AI를 도입하면 몇 분 혹은 하루만에 판결이 나는 세상이 곧 오겠지만,

내가 하는 일의 컨셉을 잡고, 이름을 짓고, 선택하며 진행하는 일은 빛의 속도로 우리 삶을 AI가 대신 결정해주는 세상이 와도 똑같을 것 같다.

고민을 하며 결정하지 못한다는 것은 그 자체로 세상으로부터 도태되고 있다는 뜻 같다.

왜 우리는 중요하다 생각하는 것을 쉽게 결정하지 못하는가?

평생 모은 큰 돈을 휴지조각처럼 투척하고, 투자하는 결정을 할 수 있는 사람과 망설이는 사람.

누가 더 나은 삶을 살아갈까?

이민이나, 취업이나, 창업이나, 이혼이나, 퇴직이나, .. 인생의 중요한 결정을 쉽게 턱턱 내려버리고 뒤돌아보지 않는 사람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고민만 하는 사람 중에 누가 더 나은 삶을 살아갈까?

독립서점 이름, 뉴스레터 이름도 하나 정하지 못해 몇 년씩 고민하는 사람과,

경쾌한 마음으로 일단 이름을 정해서 바로 추진하는 사람 중에 누구에게 더 기회가 많이 생길까?

그 답은 누구나 알고 있을 거다.

진짜 문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고민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 태도를 바꾸는 것이,

나를 바꾸는 일, 삶을 바꾸는 일, 세상을 바꾸는 일일거다.


“오늘 선택하지 않은 사람은 영원히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없다.”


문신으로라도 새겨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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