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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링스 Sep 29. 2019

하나로 묶지 마세요

사람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으니까.

내가 입사를 하고 가장 힘들었던 순간들이 있다. 처음 만나는 사람과 시시콜콜 잡담을 하는 시간들인데, 주로 담배를 피는 순간이나 회식을 하며 알게 된 사람을 만날 때다. 그리고 이는 필시 나보다 5~10년 정도 인생 선배인 남자들과의 만남에서 등장한다. 패턴은 유사하다.


여자친구 있어? 몇 살? 결혼할 때 다 됐네. 결혼 최대한 늦게 해라.


이 패턴이다. 결론은 결혼을 늦게 하란다. 이 말이 지독하게 듣기 싫었다. 결혼은 일단 내가 알아서 할 것이다. 그리고 나를 처음 봤는데 뭘 안다고 나에게 결혼을 늦게 하라는 건지, 내 여자친구에 대해 직업이나 성격 하나 들은 게 없는데 무슨 소리를 하는 것인지, 늘 불쾌했지만 입으로는 그 패턴에 맞는 패턴화된 대답을 던지고 있었다.


그들이 말하는 이유는 하나다. 결혼하면 하고 싶은 거 못하고 자유가 없으니 최대한 놀다가 하라는 것. 그래놓고 자기들은 다 결혼을 또 빨리했다. 회사 다니면서 회사다니지말라는 말과 함께 결혼해놓고 결혼 늦게 하라는 그말은 상대방을 무시하는 무례한 방법임과 동시에 자신이 얼마나 편협하고 매력없는 사람인지를 드러내는 악의 한수이다. 나는 그런 말을 하는 사람과 친해지고 싶은 마음도 안 들고, 시간이 지난다고 없던 매력을 발견하는 경우도 극히 드물엇다.


얼마나 쉽게 결혼을 결정한 걸까. 나는 나대로 얼마나 많은 고민을 하며 결혼을 생각하고 있는데 그들은 얼마나 가벼웠길래 그들의 결혼은 그 짧은 시간에 이렇게 무너져버린 것일까. 그리고 처음 만나는 사람 앞에서 그들의 결혼이 실패했음을 이렇게 쉽게 드러내 버리는 것일까. 어떤 면에서는 슬펐고, 또 어떤 면에서는 당연히 두렵기도 했다.


내가 열받는 부분은 나도 자신들과 같을 거라는 너무나 당연한 계산 때문이었다. 우리는 하나의 "남자 직장인"이라는 종족이니까 자신이 느낀 것과 같을 거라는 그 알량한 마음이 나에겐 그 무엇보다 극혐이었다. 내가 비록 어릴 때 경험이 부족해 회사를 다니느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할 거라고 생각한 잘못을 범하긴 했지만, 회사를 들어와서 그들처럼 하루 종일 회의감에 빠져 사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그들도 아마 별 생각없이 그 위 선배들로부터 이 패턴들을 그저 학습했을 것이다. 그래서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무엇이 상대방을 불쾌하게 하는지, 그리고 얼마나 스스로 부족한지를 드러내는지에 대해 생각해보지 못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에 반감을 표하는 나를 이상한 사람이라 생각하며 다시 패턴으로 돌아갈 것이다. 그렇게 그들은 어디에나 있었기 때문에 어디에도 없는 그런 사람이 될 위기에 있는 것이다. 같은 조건, 조건 상황에서 살아갈 지언정 결코 우린 하나가 아니다. 제발 하나로 묶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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