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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링스 Aug 31. 2019

면접관의 어느 하루

자소서 비화

회사생활 중 가장 슬펐던 날 중 하나는 팀의 기간제 사원을 뽑는 면접 날이었다. 나는 10여 개의 이력서 중 4개를 뽑았고, 두 명 두 명 총 두 번의 면접을 팀장님과 같이 들어갔다.


그런데 당락과 별개로 자소서에 이상하게 쓴 문구를 발견했다. 세 군데 정도에서 일한 경험이 있는 한 지원자는 76%의 업무를 바로 직전 회사에서 배웠다고 썼다. 무슨 말인지 도저히 이해가 안 갔지만, 어차피 팀장님 표정으로 탈락임이 분명한 상황이라 굳이 묻진 않았다. 그리고 지원자를 배웅하러 내려갔을 때 물었다.


“이거 76% 무슨 뜻이에요? 어떻게 계산한 거죠?”

“아... 그거 그냥 자소서 쓰는 법 보다가, 숫자로 최대한 쓰면 좋다고 해서...”


해당 지원자는 지방에서 대학 졸업 후, 서울을 동경해 혼자 올라와 있었고 4개월 정도 전 직장 퇴사 후 공백이 있던 사람이었다. 혼자 취업해보겠다고 고군분투한 결과 이런 이상한 자소서가 나왔다는 사실에 머리가 아팠고, 사실 많이 슬펐다. 나처럼 오지랖 넓고 글 쓰는 거 좋아하는 사람이 옆에 있었으면 30분만 조언해줘도 그렇게는 안 쓸 텐데 혼자 얼마나 막막했을까.


나중에 다른 포지션으로 우리 파트에 온 사원에게 입사 과정을 물었는데, 나 같은 사람에게 이력서를 전달해주는 HR업체는 어떤 가이드나 도움도 주는 게 없었다. 그러다 보니 나는 4개 업체로부터 14개의 이력서를 받았는데, 어떤 사람은 경력사항만 정리했고, 어떤 이는 자소서만, 어떤 사람은 경력과 자소서 모두를 기재했다. 자소서도 어떤 이는 네다섯 줄, 어떤 이는 20줄 이상이었다.


물론 공채처럼 대단히 많은 걸 비교하고 뽑는 것은 아니지만, 그들에게 어떤 게 되고 어떤 게 안되고는 공정하게 안내되고 공정하게 경쟁할 수 있는 상황은 당연히 필요한 거다. 그런데 어째서인지 지원자가 올리는 사이트, 그 글들을 긁어모으는 HR업체, 그런 HR업체를 관리하는 회사 HR 담당자 모두 이런 것엔 관심이 없나 보다.


사실 그 대답을 듣고 많은 얘기를 해주고 싶었으나 해줄 수가 없었다. 내가 뭐라고... 그리고 모든 지원자에게 내가 팁을 줄 수도 없고. 문제는 그런 슬픈 구조는 아직 전혀 나아지지 않고 있다. 과연 내가 할 수 있는 게 뭘까. 모두가 같이 나아질 수 있는 일들은 가능할까.


아무리 알아서 하는 세상이라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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