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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링스 Aug 30. 2019

박쥐로 지내는 회사생활

이솝우화 거꾸로 읽기

같은 파트 3년차 사원이 맡은 프로젝트은 본부장 보고 자료를 만드느라 팀장과 사원 둘은 두달의 시간을 보냈다. 타협하지 못하는 둘은 점점 감정적으로 멀어졌고, 팀장님응 이내 사원이 말만 꺼내고 짜증내는 단계로 진입했다.


그리고 이제 매일 아침 사원 앞에서 팀장님의 언성이 높아질 때면 나를 불렀다. 과장님, 잠깐 시간되세요? 나는 부부클리닉에 온 부부를 다루는 상담사처럼 한 턴씩 서로의 입장을 대변했다.


“팀장님, 이 친구가 입사하고 3년동안 혼자서만 쭉 해오던 일이라 내려놓기가 쉽진 않은 것 같아서 그러는 것 같아요.”,


“사원씨, 입장이 다른 건 알겠는데 팀장님 다른 팀원들 봐줄 시간 빼가면서 봐주는데 한 번 합의한 건 다시 문제제기 하면 팀장님 입장에선 다시 봐주기 싫죠.”


단순히 감정을 달래는 것만이 아니라 보고서도 점점 내가 중재하기 시작해서 사실상 보고서 초안을 내가 썼다. 나는 누구편이었을까? 둘 다 싫었다. 윗사람 분위기도 못맞추고 자기가 원하는 걸 설득할 능력도 안되면서 고집 쎈 사원도 싫고, 정 마음에 안들면 직접 하든지 아니면 아예 다른 사람(아마도 나..)에게 맡기든지 혼내기만 반복하는 팀장님도 싫었다.


근데 그렇개 겨우 정리가 되면 나는 각자를 찾아가, 팀장 앞에선 사원의 잘못됨을, 사원에겐 팀장님이 너무했다고 기분을 풀어줬다.


그리고 나는 사원에게 어느 정도 ‘박쥐’가 되기를 조언했다. 이솝우화에서 이쪽 저쪽 기웃거리다 아무 것도 되지

못한 박쥐. 근데 그건 그 박쥐가 잘 못한 것이지 박쥐는 정말 최고의 기회를 가졌다. 날 수도 있고, 길 수도 있고.


회사에서도 상대방에 따라서 조금은 왔다갔다 변할 수 있는 유연함이 중요하다. 룸싸롱 따라가고 죽어가며 술마시거나 잘못을 덤탱이 쓰는 것과 같이 신념을 버리란 것이 아니다. 다만 내 발언권에 힘을 더 얻기 위해서, 상황을 나에게 유리하게 만들기 위해서, 내가 너를 신경쓰고 있다는 심리적 동맹을 위해서 우린 상대방에 맞춰 나를 튜닝하는 것은 필요하다는 뜻이다.


누군가는 내가 박쥐처럼 보였을까? 물론 두 가지 내 모습을 본 사람은 잘 없을 거다. 그리고 난 언제라도 박쥐처럼 행동하는 게 옳다고 믿는다. 다만 내 신념과 주장을 가지고 결국 그걸 성취해내고자하는 큰 방향은 필수다. 영혼없이 오가는 박쥐가 아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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