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생활의 신용점수 제대로 쌓기
여러 회사생활의 좋은 말들이 있지만 내가 생각하는 중요한 철칙은 "적게 일하고 많이 인정받는 것"이다. 나는 일을 좋아하기도 하고 열심히 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매 순간 열심히 하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다.
일이 아무리 재밌다고 해도 혼자 놀고 친구들과 놀고먹고 자고 돈 쓰는 것보다는 재미없다. 먹고살기 위해서 해야 하는 것인데 재미를 느낀다는 것 자체로 엄청 다행인 것일 뿐이다. 그래서 일을 하는 것이 싫지 않다고 해서, 나아가 일이 재밌는 순간이 있다고 해서 일을 많이 하고 싶진 않다. 이건 학창 시절의 공부와도 비슷하다. 공부도 재밌는 편이었고 노력도 해서 성적이 잘 나왔지만 공부를 계속하고 싶진 않았다. 다음 단계로 잘 넘어가기 위한 수준, 혹은 생존의 수준만큼을 달성하면 더 하고 싶진 않았다. 일과 같다.
그럼 어떻게 해야 우린 일을 적게 하고도 많이 한 것과 같은 인정을 받거나, 혹은 일을 안 하는 것에 대해 지적당하거나 의심받지 않을까.
정답은 일을 빠르고 효율적으로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건 뭐 답이 없다. 그래서 현실적으로 우리가 도달해야 하는 지점은 일하지 않고 있는 상황에도 일하고 있을 거라고 믿음을 주는 것이다. 즉, 보고나 연락이 없는 순간에도 팀장이나 관리자가 놀고 있을 거라는 부정적인 생각이 아니라, 뭔가를 하고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하게 하는 것이다. 이게 가능할까?
여기서 신용(Credit) 개념을 가져와보자. 신용점수를 쌓듯 회사생활에서도 신용을 쌓을 수 있다. 이 신용은 모든 순간에 동일하게 쌓이지 않는다. 초기에 쌓을수록 효과가 크고 오래간다. 처음에 신용을 잃어버리면, 마치 장기연체를 한 신용점수처럼 쉽사리 회복되지 않는다.
그럼 신용을 어떻게 쌓을까? 신용은 당연하게도 일을 성실하게 하거나, 잘했을 때 쌓인다. 그런데 이 신용 쌓기를 위한 "일" 중에 한 번에 많이, 또 오래가는 신용이 있다. 그리고 단기연체 정도로는 내려가지도 않는 단단한 신용이다. 그건 바로 "시키지 않은 일"을 하는 것이다.
시키지 않은 일이라고 하면 그게 과연 가능한가 생각할 수 있다. 팀장이 원하지 않는 일, 회사가 원하지 않는 일을 할 수는 없지 않은가. 그러나 이 일은 꼭 해야 하는 일은 아니다. 해야 하지 않을까 라는 "제안"으로도 충분히 효력을 발휘한다. 우리 팀에 이런 게 필요하지 않을까? 우리 팀원이 하는 어떤 일을 이렇게 좀 새롭게 하면 어떨까? 우리 팀에 이런 사람이 필요하지 않을까? 팀원이 힘들어하는데 내가 같이 하면 어떨까? 모든 종류의 시키지 않았지만, 묻지 않았지만 내는 의견이 모두 "시키지 않은 일"에 포함된다.
당연히 이 일은 생뚱맞게 지를 수는 없다. 팀장이 어떤 것에 관심이 있는지 또 고민을 하는지는 최소한 알아야 한다. 아니면 팀장이 모르는 팀원의 고민이나 혹은 팀 내의 불안요소들을 파악해서 전달할 수도 있다. 어쨌든 나라는 직원이 팀장에게 필요한 어떤 생각, 고민, 행동을 "시키지 않아도" 한다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이런 제안이나 대화는 팀장과 1:1로 이뤄지기보다는 팀원들이 다 보는 공적인 자리에서 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긴 하다. 왜냐면 팀장에게만이 아니라 팀원들에게도 신용이 쌓이기 때문이다. 시키지 않아도 팀에 대해서, 일에 대해서 고민한다는 브랜딩이 되기 때문이다.
이게 쉽지는 않다. 공짜로 당장 내일 실천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관찰과 대화를 통해 진짜 팀에 필요한 생각은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또 그렇게 어렵진 않다. 그 정도도 하지 않고 신용을 쌓을 수 없다. 하지만 너무 힘들지 않은 고민과 애정만으로도 내가 신용을 쌓을 수 있다면, 내게는 주도적으로 일을 처리해나갈 수 있는 여유를 얻을 수 있다. 평생은 아니지만 한동안은 주도적으로 밸런스를 조절할 수 있다. 친구가 근처에 오면 부담 없이 나가서 대화를 하고 올 수도 있고, 팀원들과 티타임을 길게 가질 수도 있다.
물론 영원하지 않다. 그래서 한번 신용 쌓았다고 놀 수 있는 건 아니다. 하지만 이게 몇 달, 몇 년 정도 반복된 패턴이 된다면 사실 나중엔 진짜 놀아도 까내릴 수 없는 신용이 쌓이게 된다. 어쨌든, 그러면 일을 하지 않는 순간에도 의심받지 않고 "뭐라도 하고 있을 것"이라는 믿음 속에 조금은 편한 회사생활이 시작된다.
(이 모든 건 전략적으로 해낸 것이 아니라 시간이 지나고 나서 돌이켜본 결과를 분석한 것이므로, 나름대로 열심히 고민했기 때문에 가능한 결과다. 아무튼 현재는 나는 일을 조금 안 하고 쉰다고 해서 뭐라 하는 사람은 없다. 그리고 이 방법들을 전수받은 후배들도 어느 정도 시간을 컨트롤할 수 있는 직장인은 되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