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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링스 Dec 13. 2022

왜 봤을까, 트롤도, 노르웨이도, 아무것도 없는 영화를

<트롤의 습격> 영화리뷰

안 그래도 요즘 영화나 드라마 보기 너무 바쁘고 집중도 잘 안되는데 시간 쪼개서 본 게 왜 이거였을까. 우연히 영화리뷰 유튜브에서 인트로만 살짝 보고 흥미를 느껴버린 것이 죄다. 인트로는 내가 원하는 것이 있을 거라는 기대감을 줄 만했다.


노르웨이 롬스달렌의 트롤픽스라는 산에서 시작하는 인트로는 장관이다. 어마어마한 규모의 산과 거길 오르는 아빠와 딸, 그리고 뭔가 등장할 것 같은 기묘한 분위기. 애초에 아래 포스터에서 알 수 있듯 뭔가 대단한 트롤의 등장이 기대되는 게 당연하다.


다른 나라의 괴수 영화에서는 볼 수 없는 노르웨이만의 기암절벽과 계곡의 장관, 그리고 그 큰 산들이 트롤이 되어 움직이는 볼거리. 우리에게 생소한 트롤만의 기술(?)이나 피지컬, 또는 그들에게 숨겨진 특성과 역사 속에 담겨있는 노르웨이의 문화들이 이 영화를 보게 만드는 가장 큰 이유다.


그러나 없었다. 스포일러가 있지만 보지 않는 것을 추천합니다.


트롤을 활용한 어마어마한 비주얼도 없었고, 트롤이 무엇인가 하는 스토리도 없었고, 트롤을 대하고 문제를 대하는 노르웨이만의 디테일한 방법론이나 문화도 없었다. 일단 한 마리 트롤이 나오는 것이 너무 실망스럽다. 우후죽순 여러 군데의 산들이 트롤로 바뀌고 그 트롤도 좀 다양한 개성이 반영된 비주얼들로 등장하길 기대했다. 숲이 많은 곳의 트롤은 머리가 풍성한 트롤이 될 것이고, 계곡이 있는 산의 트롤은 물을 뿌려댈 수도 있었을 것 같고. 뭐 어벤저스처럼 특수능력까지는 아니어도 트롤이란 것의 비주얼 임팩트를 기대했으나 없었다.


그러다 보니 이게 노르웨이 재난 영화인지 미국인지 한국인지 전체 이야기는 크게 상관없다. 인트로 장면과 엔딩에서 트롤이 햇빛에 녹는다는 설정 정도 말고는 전혀 지역색을 살리지 못했다. 노르웨이 어마어마한 자연을 두고 왜 오슬로로 쳐들어와서 빌딩을 부수고 차를 부쉈을까. 이동진 평론가가 천만관객 영화 순위 매기기를 할 때 <해운대>를 부산이라는 지역색을 살린 "장르 토착화"에 성공했다는 평을 했는데 이 부분의 아쉬움이 아닐까 싶다.


그나마 전반부 연출 두 가지 정도는 괜찮은데 노부부가 트롤의 등장에 지하실에 숨었다가 나오는데 집이 아닌 야외라서 보니 집 반쪽이 밟혀서 날아간 부분이다. 두 번째는 그 이후로 트롤에 미친 아빠를 찾아 어떤 장소를 갔을 때 갑자기 트롤의 눈이 등장하는 장면이다. 사실 인트로 몇 분 보고 아래 장면 보면 영화는 다 봤다고 생각해도 될 것 같다.


그리고 영화의 기본이라고 할 수 있는 스토리나 캐릭터로 가면 더 답이 안 나온다.


일단 트롤부터가 어떤 방향성을 잃었다. 터널 공사로 자연을 파괴한 자연이 불러온 괴물. 트롤학자인 아빠가 등장할 때만 해도 트롤을 지켜야 하는 무언가가 나올 줄 알았다. 자연을 지킨다거나 다른 생명체들의 가디언이든, 탄소를 없애준다든지 트롤의 순기능이 있을 줄 알았다. 그러나 트롤은 점점 그냥 트롤이 되어 간다. 중간에 갑자기 민간인 아이를 구하는 것 같은, 초기 기획단계에는 있었지만 편집되었어야 할 것 같은 장면이 들어가긴 하지만 결국 주인공 아빠를 때려죽이고 군인들을 때려죽인다. 더더욱 알 수 없는 이유로 수도인 오슬로로 향한다.


그러다 보니 정부는 트롤을 없애야 하는데 총도 대포도 어떤 데미지도 못주니 미사일 안을 가져온다. 사실 그 선택은 상식이나 영화 속 맥락을 이상하게 설정해 악의 정부가 되어있다. 악으로 갈 거면 뭔가 터널 공사에 자연훼손임을 알면서도 돈을 위해 했다거나, 그 사이에 부패가 있었다거나, 정부를 단일 캐릭터가 아니라 그 장관이 뭔가 선동을 했고 그 사람만 악이라거나 좀 더 디테일한 감각이 필요했으나 없었다.


뭐... 트롤이야 트롤이고, 정부야 무능하다고 친다면 넘어갈 수 있다. 그러나 가장 큰 문제는 주인공이다. 주인공 3종 세트가 있는데, 총리 보좌관과 대위부터 짚고 넘어가자면 뭔가 일상에 무료한 인간들의 단순 일탈 정도로 보인다. 왜 노라를 따르는지, 왜 시스템에서 튀어나오는지 쉬운 설정조차 보이지 않는다. 그저 호기심이 많고 열린 마음이 조금 있다는 것뿐. 그나마 대위는 노라랑 약간의 썸이 있나? 그래서 적극적인가 싶었으나 그건 아니었고, 심지어 엔딩에선 노라가 보좌관을 안는 씬이 나온다. ??? 그렇다. 뒤죽박죽이고 답도 없다. 보좌관은 그다지 진지해 보이지 않는 소설 아이디어나 늘어놓다가 갑자기 꿈을 찾아 작가가 되겠다며 그만두는 게 무려 엔딩의 주요 컷으로 들어가기도 한다. (감독 자전적 얘긴가...)


하지만 결국 가장 욕먹어야 할 것은 노라다. 처음부터 끝까지 인물의 동기나 목표나 가치관이나 능력이나 뭐 하나 제대로 드러나는 게 없다. 남들 다 말리는 고고학 작업을 할 때는 "아빠"의 신념을 들먹이며 끝까지 하겠다고 우기더니 알고 보니 아빠를 버려서 안 본 지 10년이 넘었다. 그 정도로 일에 빠져 살 고고학자는 트롤을 만나자 고고학은 온데간데없고 아빠의 직감과 광기에만 따르는 순진한 어린이가 되어버렸다. 그리고 뭔가 정부도 싫고 트롤도 싫고 이리저리 날뛰는데 도대체 뭘 하자는 것인지 힌트조차 없다. 트롤을 살리겠다는 건가? 트롤을 살리는 이유를 찾겠다는 건가? 정부가 싫은 건가? 아니면 오슬로 시민들을 살리겠다는 건가? 근데 이미 정부는 민간인은 다 대피시켜서 트롤만 미사일로 쏘겠다는 상황인데, 왜 정부 시스템을 해킹하면서까지?


가관은 엔딩인데, 애초에 왕궁에서 비밀을 알아냈으면 정부에 연락해야 했다. 근데 뭐 해킹 여파든 나쁜 놈(장관)이 방해해서든 여러 이유로 도달이 안되어서 뭔가 자체적인 안을 찾을 수는 있는데 그저 무지성으로 갑자기 해골을 가지고 도시 밖으로 유인한다. 거기까지는 '아. 그래 피해를 줄이려고 그러나?' 할 수 있고 잘 되어 가고 있었다. 그래서 햇빛은 컨트롤이 안되니 햇빛에 약한 트롤을 가시광선으로 쬐어서 태워 죽이는 그때.. 갑자기 '이건 아니야!'를 외치며 가시광선을 끈다. 그리고 말한다. "니가 있던 곳으로 돌아가!"


대화를 시도하다 주먹에 맞아 죽은 아빠를 잊은 걸까? 갑자기 왜 대화를 시도할까? 진짜 답 없다며 깊은 한숨을 쉴 때... 해가 뜬다. 그리고 영화가 끝난다. 분명.. 분명 5분 전에 햇빛에 태워 죽이 자고 할 땐, 대낮에도 살아있었다며, 햇빛은 통제가 안된다며 수를 쓰던 그들인데... 이건 분명 쪽대본이다. 납기가 정해져 있었던 것이다. 이건 스토리텔링 수업에서 "데우스 엑스 마키나"를 설명하며 이래선 안 되는 결말 처리 방법 참고자료로 쓰라고 만든 것이 분명하다.


노라는 뭘 원했던 걸까? 어쩌면... 세상에 본 적 없던 트롤을 만나서, 특히나 아빠 인생을 망치고 그런 아빠를 원망했던 딸이, 그 아빠의 헛된 믿음이 진짜라는 걸 알았기 때문에, 그런데 그런 아빠가 눈앞에서 죽어버렸기 때문에, 이 모든 말도 안 되는 세상에서 정말 미쳐버렸던 게 아닐까? 뭘 하는지, 뭘 원하는지도 모르는 채, 그저 작은 미동으로 느껴지는 작은 감정 하나하나에 휘둘려버리는 재난 속의 진짜 인간을 묘사한 리얼리즘인가?


정말 개떡같은 영화다.


여담으로 가시광선을 쏘기 위해서 노라가 대위에게 뭔가를 부탁하고 중간에 15분 뒤에 도착한다고 하자 대위가 시간 없다고 호들갑을 떤다. 근데 막상 가보니 완벽하게 세팅되어 있고 사실 그다지 어려워 보이는 미션도 아니었다. 이게 이 영화의 문제다. 뭔가 위급한 것처럼 대사를 치고 분위기는 몰아가서 영화 러닝타임은 흐르지만 막상 그게 왜 그렇게 위급했어야 하는지 내용은 없는... 장르영화문법이라는 껍데기만 가져오고 스토리는 못 채운 것이다.


이건 진짜 마지막 장면에서 갑자기 트롤이 죽은 상황에 총리가 등장할 때 영웅의 노래를 쓴 것에서도 허접한 연출력을 알 수 있다. 그동안 적군으로 포지셔닝했던 총리 등장씬에 왜 웅장한 음악을 깔지? 등장도 왜 권위적으로 하지? 이건 그냥 막판 엔딩에 그 노래를 쓰라고 했을 뿐이지 컷 바이 컷 체크하지 않은 것이다.


쿠기 영상도 아무 의미 없이 그냥 다들 하니 넣은 것이다. 이 영화를 결국 뭔가 성공한 요리의 레시피를 다 따라하기 했는데, 중간중간 먹어보지도 않았고 소금을 넣는지 설탕을 넣는지는 관심이 없었던 것이다. 그냥 뭐라도 흰 것을 넣으면 되었던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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