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온한 마음을 가지고 싶다. 불안을 이야기하는 에세이가 너무 버거워서 몇 장 읽다가 책장을 닫아버렸다. 불안을 읽으려면 마음이 건강해야 할 것 같다.
남편은 매일 나에게 ‘메링은 걱정할 게 하나도 없어’라고 말해준다. 그게 사실이기 때문이다. 명백한 사실이지만 당사자인 나의 감정만 그 사실대로 움직이지 못하는 모순 속에 살아가고 있다. 걱정할 게 없지만 걱정을 한다. 아침에 눈을 떠 불안한 마음이 느껴져 가슴을 쓸어내린다.
내 글이 제대로 가고 있는지 모르겠다. 고쳐도 고쳐도 이제 됐다 싶은 마음은 들지 않고 왠지 모르게 찜찜함이 남는다. 하나의 글에 멈춰 있을 수 없으니 다음 글을 시작하고, 다음 글은 또 고치고 고치는 단계에 들어간다.
이 모든 글의 전체적인 흐름이 괜찮은지 모르겠다. 벌써 절반 이상의 초고를 썼는데 이게 책이 될 수 있는지, 이런 내용을 누가 읽을지 모르겠다. 분명 쓰면서는 맘에 들어하기도 했던 것 같은데 몇십 개의 글을 쓰다 보니 그냥 ‘내 글 구려’ 상태가 되었다.
사람은 지금, 여기 존재해야 한다고 하는데 나는 항상 지금, 저기, 글에 존재한다. 1번 방에 누워서도 2번 방에 있는 글을 생각한다. 전날 쓰다만 글을 어떻게 고칠지 고민한다. 문장이 떠오르면 휴대폰에 빠르게 적는다.
2번 방을 나오면 글쓰기에서 퇴근했으면 좋겠다. 하지만 계속 생각하고 있어야 갑자기 생각나는 문장을 잡을 수도 있는 거 아닌가? 모순되는 생각이 머릿속을 채운다. 뭐가 맞는 건지 모르겠다.
불안을 잠재우기 위해 아침산책도 하고 샤워도 했지만 불안에 대해 이야기하는 책을 읽다가 금세 또다시 불안이 살아나버렸다.
글을 쓰러 2번 방에 들어가야 할지 그냥 1번 방에 들어가 누워야 할지 모르겠다. 누우면 어차피 머릿속으론 계속 글 생각을 할 테니 그냥 2번 방에 들어가 글을 쓰는 게 여러모로 낫겠다.
글을 쓰는 순간에만 불안하지 않다. 글을 쓰는 순간은 괜찮다. 문제는 하루 종일 글을 쓰고 있을 수 없다는 거다. 눈도 쉬어야 하고 뇌도 쉬어야 한다. 노트북 화면은 편두통의 적이다. 오래 볼 수 없다. 하루에 한 시간이 적당하다. 하루가 24시간인 것에 비하면 작업을 할 수 있는 시간은 너무 짧다.
노트북을 보지 않고 인쇄해서 수정하는 시간도 있다. 그걸 다 해도 세 시간은 넘기지 않는다. 지금은 그 정도가 내 몸에서 위험하다고 소리치지 않는 정도인 것 같다. 간혹 신호를 무시하고 저녁에 한 번 더 의자에 앉기라도 하면 머리가 금세 아파온다. 이미 낮의 작업으로 편두통 자극은 충분했기 때문에 더 이상 무리해선 안 된다.
글을 쓰면서, 정확히는 책이 될 글을 쓰면서 평온한 마음을 유지하는 방법은 뭘까? 책을 쓰는 사람들은 어떻게 평온을 유지할까?
한다고 하고는 있지만 이 이야기들이 제대로 연결이 될지, 나중에 다 버리게 되는 건 아닌지 걱정을 안 하긴 어려운 것 같다. 출발할 때는 내가 뭘 하려는지 알고 있었다. 출발지는 오히려 명확하다. 그런데 글을 스무 편 정도 쓰고 중반부에 돌입한 지금, 나는 혼자서 망망대해에서 노를 저으며 앞으로 나아가는 것만 같다. 출발지도 보이지 않고 도착지도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고 멈춰 서면 안 된다. 보이지 않더라도 앞으로 계속 나아가야만 한다.
끝에 도달했을 때야 나는 비로소 내가 지나온 길을 돌아보며 삐죽 나온 부분들을 다듬고 필요하지 않은 경로를 삭제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은 할 수 없다. 지금은 그저 앞으로 가는 수밖에 없다. 쓰는 수밖에 없다.
오늘은 아침의 마음이 너무 불안해 글쓰기를 쉴까 잠시 고민했다. 하지만 오늘 쓰지 않으면 내일의 불안이 더 커질 뿐일 것이다. 대신 오늘은 새 글은 쓰지 않고 어제의 글만 고치기로 다짐해본다. 더 이상의 무리는 하지 않기로 약속하고 작업방에 들어가야겠다.
집에서 혼자 글을 쓰는 다른 작가들의 마인드 컨트롤 방법을 알고 싶다. 어떻게 비바람 치고 파도가 넘실거리는 이 망망대해를 건너 도착지까지 갈 수 있는 건지 궁금하다.
초심자는 아직 갈 길이 멀다. 언젠가 흔들리는 배 위에서도 평온한 마음을 유지한 채 항해를 즐기는 여유로운 자가 되고 싶다. 그런 날이 내게 올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