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물고기 Dec 14. 2022

글쓰기에 대한 확신은 어떻게 가질까

계절이 기분을 만드는 것 같다.

어떤 날은 아침에 눈을 떠 가야 할 곳이 아무 데도 없다는 것이 쓸쓸하기도 하다. 학교에 있을 때의 좋은 기억만 재편돼 그 시절이 그리워지기도 한다. 하지만 그런 생각은 찰나일 뿐, 얼굴을 때리는 한겨울 바깥바람을 쐬면 이런 날 가야 할 곳이 아무 데도 없어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는 날씨가 좋을 때는 출퇴근하던 것을 그리워하고 날씨가 추워지면 그리워하지 않는다. 나의 그리움은 날씨에 달려있다.


오늘은 오전 내내 영어 팟캐스트를 들었다. 어제 오랜만에 미국 친구와 통화를 했는데 내 영어실력이 수직 하강했다는 사실에 좌절했기 때문이다. 이제 영어를 가르치는 게 직업도 아니고, 혼자 영어공부를 한 대도 써먹을 데도 없겠지만 그래도 못하기보단 잘하고 싶다. 휴직에 이어 퇴직을 했으니 영어를 놓은 지 3년이 다 되어간다. 학교에서 가르치는 영어가 내 영어실력에 많은 도움이 되는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일을 하면서는 나의 영어도 일정 부분 놓지 않을 수 있었는데 일을 하지 않게 되니 내 영어실력도 퇴화해 아쉽다.


내가 교사가 되고 싶지 않았는데 교사가 되었다가 휴직을 했다가 음악을 하고, 다시 복직해 학교에 다니고, 또다시 휴직을 하는 일련의 방황의 과정을 글로 쓰는 일이 마음먹은 것처럼 쭉쭉 나가지 않는다.  모든 이야기가 사람들에게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여겨질까  두렵다. 다들 그렇게 사는  아닌가? 남들도 다 그렇게 사는데 나만 유난스레 괜히 그걸 글로 쓰네 마네 하는  아닌지 걱정이 앞선다. 나에겐 진로 고민은 인생의 절반을  오랜 방황이었지만 그게 이야기로 쓰일 가치가 있다는 의미인지는 모르겠다. 어떤 이야기가 글로 쓰여야  확신을 사람들은 어떻게 가지는 걸까?


말하자면 나는 인생의 첫 번째 막과 두 번째 막 사이에 있다. 1막에서 나는 교사였고, 2막에서 나는 글을 쓰고 있을 것이다. 2막에 가기 전까지도 글을 쓸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2막에 이르기까지 겪은 일에 대한 글일 가능성이 크다. 나는 어떤 일들을 겪고, 그 일들을 글로 쓴다. 그런 인생을 살게 될 것이라는 데에는 한 치의 의심도 없다. 하지만 나는 왜 머뭇거리는 걸까. 나에겐 어떤 확신이 부족한 걸까?


확신을 가지고 글을 쓰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이야기를 뱉어내는데 꼭 확신이 있어야 할까? 이 이야기가 세상에 필요하다는 확신이 있어야만 할까? 말하자면 나는 나의 글이 세상에 꼭 필요할지에 대한 확신이 부족한 상태다. 그래서 자꾸 머뭇거리게 된다. 내 글이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까? 사람들에게 필요한 글일까?


하지만 내가 인생의 절반을 들여 겪은 것은 그 일이고, 그 이야기를 제외하곤 나를 설명할 수 없다. 그걸 제외하고 내가 어떤 이야기를 할 수 있겠어? 어떤 이야기를 시작할 수 있겠어? 그러니 그냥 썼으면 좋겠다. 글쓰기에 대한 ‘생각’을 멈추고 그냥 쓰길 바란다. 글쓰기에 대한 글을 쓰는 일, 글쓰기에 대한 생각을 하는 일은 이제 충분하다. 나는 그 글을 쓰고 2막으로 넘어갈 것이다. 넘어가야 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