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눈을 뜨면 시간을 확인하고 자리에서 일어나 침대를 정리한다. 책을 한 페이지 읽으며 시작하는 하루는 고요하다. 내가 무엇이 될까? 에 대한 생각은 되도록 하지 않으려 않다. 그저 하루하루 살아가다 보면 내가 되겠지.
할 일 목록을 길게 적어 두었지만 아침 8시 즈음엔 딱히 영어 공부를 할 마음이 들지 않는다. 읽기는 이미 했고, 말하기를 하자니 목이 잠길 대로 잠겼다. 그냥 잠이 덜 깼다는 소리다. 하지만 서두를 필요는 없다. 나는 시간이 많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잠을 깰 시간도, 영어 공부를 할 마음이 들 때까지 기다릴 시간도 충분하다.
오후가 되자 비로소 목은 풀렸지만 기분은 왠지 풀리지 않았다. 오전에 다녀온 발레 레슨이 마음에 안 드는 점이 있었기 때문이다. 뭐랄까. 주야장천 읽기만 할 게 아니라 뭔갈 듣거나 결국 입을 열어 말을 해야 하기 때문에 영어를 쓰려면 기분이 너무 다운돼 있어서는 안 된다. 기분이 한껏 처져 있을 때는 어떤 소리도 듣고 싶지 않고 내가 어떤 소리를 내는 것도 내키지 않는다. 단지 고요 속에 있고 싶다. 그 말은 언어 공부를 하는 것과 얼마나 대치되는가.
난 기분이 별로야.라고 중얼거리는 것부터 시작했다. ‘나는 오늘 두 번째 발레 레슨을 받았어. 8년 전엔 다른 학원에 다녔었는데 거긴 동작을 여러 번 반복해서 좋았거든. 근데 여기선 한 번 밖에 안 해. 동작을 너무 자주 바꿔. 유일한 장점은 가깝다는 것뿐이야.’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주절주절 한탄하듯 늘어놓았다. 그렇게 말하다 보면 그 말을 적고 싶어 진다. 그렇게 다시 2번 방으로 돌아갔고 결국 음성메시지를 녹음해서 Justin에게 보냈다.
나는 영어를 공부하고 연습하고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녹음해 친구에게 보낸다. 매번 전화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과정을 3주 정도 해오고 있는데 나름 동기부여가 된다. 나는 이제 다시 영어를 가르치지 않을 거고(아마도?) 영어로 직업을 가질 것 같지도 않은데(딱히 생각할 수 있는 게 없다) 지금으로선 단지 오랜 친구와 대화할 수 있는 수단을 갈고닦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친구와 의사소통을 하고 싶다는 것만으로도 언어를 배울 이유는 충분하지 않을까?
요새 나는 내 인생이 아주 큰 의미를 갖지 못할 수도 있을 거라 생각한다. 내가 내게 될 책, 내가 앞으로 만들어 낼 창작물이 그리 크게 유명해지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크게 성공하지 못하더라도, 아주 작은 성취일지라도, 소수의 사람들에게 만이라도 진심으로 가닿는 인생이라면 괜찮지 않을까. 내가 영어를 배워 한 사람과 대화하는 것이 목적인 것처럼.
작은 것을 바라는 삶에서 오히려 큰 것을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큰 것을 얻으려다 모든 것을 잃기보단 작은 것을 확실히 얻으며 따라오는 기회들을 잡을 수 있을 것이다. 종종 그런 느낌이 들 때가 있다.
언젠가는 큰 사람이 되고 싶었다. 유명해지고 싶었다. 사람들이 모두 다 나를 알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젠 그런 것은 원하지 않는다. 크고 불확실한 것보다는 작고 단단한 것을 곁에 두고 싶다. 그저 단 몇 명의 사람들만이라도 나의 진심을 이해해 준다면 그걸로 충분하다. 작은 것을 바란다. 천 명의 사람보단 백 명의 사람을, 그보다 일단 열 명의 진실한 사람을. 누군가는 내 진심을 읽어줄 것이다. 나는 그때까지 계속 쓰기만 하면 될 일이다.
모든 걸 얻지 못해도 괜찮다.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할 것이다. 작은 것들이 모여 내일이 될 테니까. 손에 잡히지 않는 것을 잡으려 허공을 휘적거리지 않기로 다짐했다. 내 눈 앞의 작은 것을 손에 쥐고 내일로 나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