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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표심 Mar 11. 2023

알게 되면 글을 쓰고, 쓰다보면 알게 된다

뭐든 이해해 보려 한다

  어스름한 새벽 아침. 물을 데운다.


  열을 가하니 물이 끓는다. 불을 끄고 컵에 반쯤 따라 찬물을 섞는다.


  스테인리스 냄비를 투명 유리 뚜껑으로 닫아둔다. 빨리 식지는 않으리라. 책상 앞 스탠드는 누런 빛을 낸다. 물을 마시면서, "논(論)하시오"라는 글을 끄적인다. '理解'라는 한자를 써 본다. 이치 · 원리를 안다. 어떻게 아는 것을 말하는 것일까.


  한자 ''를 크게 써 본다. 왼쪽 뿔각(角)이 부수. 오른쪽 위에 칼도(刀). 그 아래 소우(牛).


  칼 밑에 소가 있음을 물끄러미 본다. 뿔 손잡이가 달린 칼로 '소'를 분해해 보는 것. 가죽 - 뼈와 살 - 힘줄, 부분 부분을 낱낱이 분해해서 살펴보는 것. 맨 마지막엔 먹어 보는 것.


  컵의 물을 마셨다. 위장이 따뜻하다. 소금을 탄 물이라 간이 있고, 입에 침이 돈다. 제법 큰 머그컵의 물을 입안에 넣고 한참을 있다 조금씩 아래로 넘긴다. 넘길 때마다 고막이 들썩이고 귀에서 소리가 난다.




  천 원짜리 만년필은 겨우 글을 그리며 간다. 촉에서 나온 검은 잉크 선들이 불빛을 반사하다 하얀 종이 속에 잦아든다. 안경을 쓰지 않은 맨 눈. 완벽한 윤곽은 바라지 않는다. 써 내려온 왼쪽 라인이 오른쪽 안으로 밀고 들어왔다. 다시 밀어내듯 글자를 정렬해 가면서 쓴다.


  물 한 컵을 다 마셨다. 배가 불룩하다.


  다음 잔을 위해 가스레인지로 향한다. 유리 뚜껑이 올려진 물은 식지 않았다. 따뜻한 기운을 머금고 있다. 냄비에 남아 있는 온순한 물을 컵에 따라 넣었다. 숟가락 1/4 만큼 소금을 넣었으니, 이 물 또한 짭조름할 것이다.


  유리뚜껑을 싱크대 개수대로 가져간다. 기울여 본다. 맺혔던 물방울이 뭉쳐 또르르 철판에 떨어진다. 철판은 물방을 똑 소리를 낸다. 두꺼운 유리 뚜껑이 온도의 경계를 이루고 있었구나. 그릇 위에 올라 있던 뚜껑. 뜨거운 수증기가 날아올라 뚜껑 위 찬 기운을 만났구나.


  그래서 뭉쳤구나. 추워서 몸을 웅크리고 서로 몸을 합쳤구나. 그렇게 뚜껑에 달린 물이 되었구나. 한 방울씩 떨어지는 비가 되었구나. 비는 집 밖에만 있는 줄 알았는데.


  비는 수도꼭지에서도 그릇에서도 컵에서도, 이 뚜껑에서도 내리고 있었구나. 물방울은 꼭지에서 쏟아졌고, 컵에서 따라졌고, 배로 흘러들었고, 철판에 차갑게 떨어졌구나.




  배 속에선, 흘러들어 간 물 두 잔이 소리를 지른다. 물방울 터지는 소리를 낸다. 오른쪽에서 난 소리는 왼쪽으로 달린다.


  이치를 이해한다.


  이해하기 위해 분해한다. 생각을 나눠본다. 쪼개서 하나씩 살핀다. 사람들의 말을 분해하고, 책을 분해한다. 기계식 손목시계를 분해하듯이.


  비슷한 것들을 수집해서 비교도 한다. 동작원리를 알기 위해 하나씩 맞춰본다. 다시 조립한다. 조용히 미소를 짓는다.


  반대로 말하는 것들을 찾아본다. 생각을 점검하니 앎이 풍성해진다. 나보다 먼저 말한, 나를 지지해 주는 책이 있는지 살핀다. 발견하면 핑거 스냅(Finger Snap)으로 손가락 튕기는 딱 소리를 낸다. 


  글로 쓴다. 글로 쓰면 조금 더 알게 된다.



<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 >

강물같은 노래를 품고 사는 사람은

알게되지 음 알게되지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연아합창단

표지이미지 : Image by Foundry Co from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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