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끼만행 사건 / 미류나무 사건
동요 흰구름(박목월 작사)에서, 가사 '걸쳐 놓고 도망갔어요'는 왜 사라졌을까?
'도망갔어요'라는 말이 음악책에 실려있다는 사실이 싫었을까? '도망'이란 말을 왜 빼고 싶었을까? 흰구름 동요에서 '미류(美柳)나무'와 '도망(逃亡)'이란 말이 동시에 사라졌다. 왜 쌍으로 사라진 걸까?
70년대를 산 사람들은 '미류나무'하면, 자동으로 1976년 '8.18 도끼만행사건'을 떠올릴 것이다. 판문점에서 '미류나무' 가지치기를 하던 미군 장교 2명을 북한군이 살해하고 '도망'간 사건을 어찌 잊을까? [1]
'미류나무 가지치기'로 시작한 도끼만행 사건은 북한군의 '도망'으로 종료되었다. 아래 KBS뉴스를 보면 알 수 있다.
■ 1. 도끼만행 사건 시작 : 미류나무 가지치기
1976년 8월 18일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에서 참혹한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미군 장교 2명이 북한군의 습격으로 숨진 '판문점 도끼만행사건'입니다.
당시 보니파스 대위와 배럿 중위는 한국군 장교들과 함께 전방 시야를 가리는 '미루나무 가지치기' 작업을 지휘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북한군 수십 명이 '돌아오지 않는 다리'를 통해 넘어와 가지치기 작업 중단을 요구했고, 작업이 중단되지 않자 흉기와 둔기를 동원해 두 미군 장교를 처참하게 살해했습니다.
-KBS뉴스, 2022.08.18- [1]
■ 2. 도끼만행 사건 종료 : 북한군의 '도망'
사건을 목격했던 한국군 장교 가운데 한 명인 김문환 예비역 소령...취재진에게 당시 상황을 설명했습니다.
김 씨는 "세 아름 정도 되는 커다란 나무를 매년 가지치기하는데, 갑자기 북한군 십수 명이 '돌아오지 않는 다리'를 건너와 가지를 자르지 말라고 했다"며, "보니파스 대위는 '그냥 자르라'고 지시했고, 그러자 북한군이 보니파스 대위 앞으로 가서 '죽여라'고 소리를 지르면서 공격이 시작됐다"고 말했습니다.
순식간에 현장은 아수라장이 됐는데, 결국 유엔군이 트럭을 몰고 북한군을 몰아붙이자 북한군이 다리 너머로 도망가면서 상황이 종료됐다고 합니다.(생략)"
-KBS뉴스, 2022.08.18-[1]
정경모 재일 통일운동가는 한겨레 신문( 2009.8.13) 기사에서, 판문점 미류나무 사건은, 다음날 미국 공화당 차기 대통령 후보 선출 당대회에, 즉각 영향을 미쳤다고 주장한다.
미군이 판문점에서 도끼를 맞고 쓰러지는 영상이 당대회에서 공개되었고, 주한미군 존속을 주장하는, 현직 포드 대통령이 압승하게 되었다고 한다. [2]
이 날 패배한 후보는 레이건이었다. [3]
이 사건 후 미국은 무력시위에 들어갔고, 우리나라 국민은 전쟁이 곧 날지도 모른다는 불안에 떨었다.
미국은 함재기 65대를 탑재한 미드웨이급 항공모함과 순양함 5척을 서해안에 대기시키고, F-4, B-52 등 항공기를 발진시켜, 무력시위를 전개하면서, 사건 후 3일 만에 문제의 미루나무를 베어냈다. 세계여론의 악화와 미국의 무력시위로 김일성은 유감을 표명해야 했다. [4] [5]
군사력을 과시했던 미국 공화당 포드 대통령은, 이 사건 후 3개월도 채 안된 11월 2일 선거에서 패배했다. 다음 해 1월 민주당 지미 카터 대통령이 미국을 이어갔다.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사임한 닉슨으로부터, 대통령직을 승계한 포드 대통령의 재임기간은 2년 165일로 짧았다.
이렇게 국제정세에 얽힌 판문점 도끼만행 사건은, 우리 국민을 전쟁 공포에 몰아 넣어 상처를 남겼고, 점차 기억에서 사라졌다.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 대통령 사망 사흘 후, 박대통령을 기리는 조선일보 기사에서도 도끼만행 사건은 거론되었다. [6] 여기서도 '미류나무 기념패' 일화 속에 미류나무라는 말은 살아서 돌아다녔다.
또한 도끼만행 사건은 '판문점 미류나무 사건'으로도 불렸다. [7]
사건에 휘말린 미류나무는 누군가의 미움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 미류나무 기념패 & '미친개'
유엔군 측은 박(朴) 대통령의 건의에 따라 판문점의 미류나무를 제거, 당시 상황은 전쟁발발 일보 전까지 치달았다... 스틸웰 유엔군 사령관은 박(朴) 대통령의 결단에 보답하기 위해 판문점에서 자른 문제의 미류나무를 잘라 만든 '기념패'를 박(朴) 대통령에게 증정한 얘기는 너무 유명하다.
그해 10월 1일 국군의 날 행사 때 비서관들이 치사(致辭)를 써서 올리자, 마음에 차지 않는다는 듯'친애하는 국민 여러분'의 서두(序頭)에서부터 끝까지 직접 펜을 들어 치사를 쓴 것이 그 유명한 '미친개는 몽둥이로 다스려야 한다'는 강경한 대북괴일전불사(對北傀一戰不辭)의 의지표현이었다.
-조선일보 1979.10.30 박정희대통령 그 집념과 유업 ① [6]
■ 판문점 미류나무 사건
우리는 그 참화의 골격을 대화가 시도된 70년대 중「판문점 미류나무 사건」에서「10·26사태」에서「12·12사태」등에서 극도의 긴장감으로 확인하는 체험을 가졌다. 그럴 때마다의 우방 미(美)의 신의 있는 대북경고와 태세는 고마움과 함께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처지에서의 절실한 상황인식의 약이 되기도 했다.
-조선일보 1979.12.30 사설(社說) <격동의 70년대를 보낸다> [7]
이런 상황에서 미류나무가 건재할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 전 국민에게 트라우마를 안겼다는 누명을 뒤집어쓴 미류나무는 불안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을 것이다.
박정희 대통령 사망하기 1년 전인 1978년, 표준어에서 빼려는 문교부의 '미류나무 제거' 작업은 드디어 수면 위로 떠올랐다.
1978년 12월 16일 문교부는 '표준말과 표기법 개정시안'을 발표하면서, 갑자기 미류나무를 비표준말로, 미루나무를 표준말로 정했다. [8] 국민학교 3학년 음악책을 보고 '미류나무 꼭대기에 조각구름 걸려있네♬'하고 학생들은 노래하고 있는 중인데, 이 어찌 된 일일까?
'도끼만행 사건 / 미류나무 사건'이 발생한 지 2년 여가 지난 시점이었다. 죄 없는 '미류나무'는 영문도 모른 채, 표준어에서 뿌리채 뽑힐 운명 앞에서 울어야만 했다.
■ 우리말 표기법이 크게 바뀐다
-조선일보 1978.12.17 [8]
"문교부는 16일 표준말, 맞춤법, 외래어 표기법, 국어의 로마자 표기법 등 4개 어문관계 개정 시안을 마련, 공청회등을 거쳐 확정되는 대로 시행키로 한다고 발표했다." ( 1면 )
-아래 4면 발췌
< 표준말-맞춤법-외래어-로마자 표기 4개 개정시안 >
표준말 (괄호 안은 비표준말)
◇겹홀소리·홀홀소리
미루나무(미류나무) / 오뚜기(오똑이) / 깡충깡충(깡총깡총)
교과서 '미류나무 제거'는 언제 반영되었을까? 교과서를 조사하지 못해 정확히 알 수는 없다. 그래도, 1984년 8월 12일 자 조선일보 기사를 통해 추측해 볼 수는 있다. 전두환 대통령 시절이다. 학술원에서 만들었다는 개정안 표준어 항목에서, 미루나무가 또 표준어로 채택되고 미류나무는 버려졌다. [9]
교과서 개정은 1985년이거나 1986년으로 볼 수 있을 것 같다. 1984년 말까지 확정해서 다음 해에 출판물에 적용하다고 했으니까.
이렇게 해서, 박정희 대통령 시대에 시작된 미류나무 제거 작업은, 전두환 대통령 시대에 이르러 완성되었다.
■ 어문(語文) 표기 현실 맞게 대폭 수정
-조선일보 1984.8.12 1면 발췌 [9]
학술원(学術院), 개정안 마련 내년 교과서등에 적용
(생략) 학술원은 이 개정안에서 51년 전인 지난 33년 조선어학회가 만든 현행 표기법을 현실에 맞도록 대폭 수정했다. 개정안은 각계의 의견을 수렴한 뒤 연말까지 확정, 내년부터 교과서를 비롯한 각종 출판물에 적용하게 된다. (생략)
실생활에서 기반을 굳힌 말을 표준어로 인정했다. 즉「미류나무」가「미루나무」,「미력(미력(彌力))」이「미륵」으로된다. (생략)
79년 개정한 표준어 중 혼란을 일으키는 것은 원래 대로 되돌려「부엌」을 「부엌」으로, 「점장이」를 「점쟁이」로, 「쪼끔」을 「조금」으로 다시 고쳤다.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1920년대 미류나무 미루나무 혼용
-1976.8.18 도끼만행 사건 ( 미류나무 사건 )
-1978.12 표준말 : 미루나무
-1984.12 표준어 : 미루나무
-1985. 각종 출판물에 개정된 표준어 적용
-1988.1 표준어규정 제정 - 표준어 : 미루나무
국립국어원에 말 못 할 사정이 있어 보였다.
미루나무가 표준어로 등극한 것은, 전 국민을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던 '미류나무 사건'( 8.18 도끼만행사건)이 한몫을 했을 것으로 추측해 본다.
이 글 서두에서 의문을 제기했다. 동요 '흰구름'에서 '미류나무'와 '걸쳐 놓고 도망갔어요'가 동시에 사라진 이유는 무엇일지.
결론은 '미류나무'가, 북한군이 만행을 일으키고 '도망'한, 그 공포의 사건을 생각나게 하기 때문이라는 것. 당시 국제정세에 휘말리기도 했던 그 사건의 흔적을, 누군가 지우려 했던 것은 아닌지.
이 건 내 생각, 내 소설일 뿐이다. 아니라고 생각할 자유는 독자들에게 있다.
ps 이전 글 <'미류나무'가 표준어가 아니라고요?>에서 국립국어원의 표준어 변경 이유를 들어 봤습니다. 이중모음 'ㅠ' 때문에 발음이 어려워, '미류나무'라는 말을 들을 수 없어, 미루나무를 채택했다고 했습니다. 이 설명이 이해가 되지 않아, 좀 더 자료를 찾아 나름대로 상상의 나래를 펴 보았습니다.
긴 글 읽느라 수고 많으셨습니다. 힘드셨다면, 모든 책임은 저에게 있습니다.
< 참고 자료 >
[1] 46년 전 오늘 JSA서 벌어진 '도끼만행' 추모 현장 가 보니, KBS뉴스, 2022.08.18
[2] [길을찾아서] 미 공화당 전당대회 맞춰 '판문점 도끼만행 사건, 한겨레, 2009.08.13
[3] 로널드 레이건/생애 - 나무위키, 2023-03-15
[6] 박정희대통령(朴正熙大統領) 그집념(執念)과유업(遺業) ① 「유비무환(有備無患)」"내강산(江山) 내가 지킨다" 자주국방(自主國防), 조선일보, 1979.10.30
[7] 격동(激動)의 70년대를 보낸다 - 사설 , 조선일보 , 1979.12.30
[8] 표준말-맞춤법-외래어(外來語)-로마자(字)표기 4개 개정시안(改正試案) 내용, 조선일보, 1978.12.17
[9] 어문(語文)표기 현실맞게 대폭 수정, 조선일보, 1984.8.12
-도끼만행 사건 추가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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