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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표심 Oct 03. 2022

6살, '오줌과 편견' 엄마는 여자로 태어난 게 좋아?

화장실 있는 기차 타고 가자

-생일이 뭐예요?


  6살. 71년 실미도 사건으로 떠들썩하기 전, 4월 25일 아침은 별일 없었다. 밝은 아침, 일찍 일어나, 서부이촌동 시민아파트 뒤로 놀러 나갔다.


  외할아버지 댁 라인 뒷길에서, 외할머니가 나를 불렀다. 생일이니 미역국을 먹으라고 했다. 외할머니에게 물었다.


  "할머니, 생일이 뭐예요?" 

   ...

   "미역국 먹는 날이에요?"


  그냥 놀러 나왔는데, 세상엔 모르는 것 투성이구나. 생일이란 말을 처음 들었네. 이게 뭔지 이해해 보려고 하는데, 머릿속엔 아무 개념이 없었다. 


  뭔지 모르는 생일에 내가 걸려 있다니. 그 말속에 어떤 상황과 내용이 담겨 있는지 몰랐다. 우리 집에선 생일잔치를 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생일'이 어떻게 생긴 건지, 미역국을 먹으면 어떻게 되는 건지. 태어난 날은 왜 미역국을 먹는 건지.


-나는 하나님의 선물


  내가 세상에 어떻게 있게 되었는지, 아버지 기도 속에서는 가끔 들어 볼 수 있었다.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했다. 신의 선물로 내가 있게 되었다는 것은 듣기가 그런대로...


  그 말은 존재 이유에 대해 더 이상의 질문을 할 수 없게 하는 말이었다. 그냥 모두 이해한 것처럼 여겨졌다. 신은 인생 최고의 해답이었으니, 맑고 단순한 머리로 살 수 있다. 왈가왈부할 여지가 없었다. 신이 그렇게 했다는데 무슨 토를 달 것인가.


  아버지의 언어를 통해, 나는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이름표를 한동안 달고 살았다. 가끔 기도에서 할 말이 없으면, 하나님의 선물로 우리 집에 태어난 것에 감사기도를 올렸다. 


  하나님은 무엇인가. 이런 질문은 굳이 하지 않았다. 그런 생각할 필요성을 느끼지 않았기 때문이다.


-믿음인가 생각이 없는 건가


  내가 하나님의 선물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중요했다. 하나님의 선물이려면, 하나님은 당연히 있는 존재였다. 그러니 하나님에 대해 의심할 것이 없었다. 


  거꾸로, 하나님이 없다는 사람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선물인 나를 보내고, 이미 있는 자이니, 하나님 존재 여부는 판단 거리가 아니었다. 당연히 믿는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믿어지는 것도 아닌, 그냥 당연한 거였다. 


  이런 걸 좋은 믿음이라, 굳건한 신앙이라 생각했다. 이런 믿음은 하나님에게서 받은 것이요, 성령이 준 것이라 생각했다. 나는 당연히 구원받은 것이라 여겼다. 뭘 의심한단 말인가? 


  의심이란 개념어 자체가 머릿속에 없는 거와 같았다. 더 이상의 생각이 없었으니까.


-이모들은 나를 데리고 다녔다


  생일 아침 미역국을 먹고 경미 이모와 대전 큰 이모 댁에 갔다. 이모들이 어딜 갈 때면, 다른 조카들보다 나를 데리고 다니려고 했다. 지금도 경미 이모와 애경사에서 만나면, 내가 다섯 살 때 밍크코트를 입고 '궁둥이를 삐쪽빼쪽' 걸었다고 말한다.  


  대전서 하룻밤을 자고, 이모와 서울행 고속버스를 탔다. 


  버스 맨 뒷자리에 앉았다. 5분이 지나자 오줌보가 계속 부풀어 불편해졌다. 아직 오줌길까지 오줌이 당도할 것 같지는 않아 조금 참아 보려 했다.



-카운트다운


  버스 밖 멀리 선 집들이 천천히 지났다. 가까운  나무들은 휙휙 뒤로 달아났다. 슬슬 걱정이 됐다. 속옷과 바지가 젖어, 어기적 어기적 걸어가게 되면 어떻게 하나. 눈에 힘을 주면서 생각해 봤지만 수가 없었다.


  "이모, 오줌"

  "참기 어려워?"

    ...


  말이 나오지 않아 바람소리 신음만 냈다. 눈가 근육을 꽉 조인 얼굴로 이모를 쳐다봤다. 출발한 지 얼마 안 됐으니, 휴게소까지는 좀 더 가야 했다.


  이모는 앞자리 사람들에게 혹시 빈병 있냐고 물었다. 누군가 먹다 남은 코카콜라 병을 건넸다.


 카운트 다운 삼, 이, 일~, 반

 반에 반, 반에 반에... 으윽... 바... 안.


  가까스로 꽂았다. 발사. 

  안도의 한숨을 쉬어야 하는데... 잠시 후 콜라거품이 병목을 타고 올랐다. 속도를 줄였다. 어린 인생은 왜 이리 고달픈가. 더 이상은 무리니 배에 힘을 주고 꼭지를 잠갔다.


-여자로 태어난 게 좋아?


  창밖 풍경은 조금 안정됐다. 숨도 조금 깊이 쉴 수 있었다. 휴게소 화장실에서 나머지를 처리하니, 그레이하운드 고속버스가 보였다. 그 버스에는 힘차게 앞뒤 발을 뻗어 달리는 개 그림이 달려 있었다.  


  그날 이후로 고속버스 타는 것은 피하고 싶었다. 될 수 있으면 오줌 싸기 쉬운 기차를 타자고 했다.


  며칠이 지나고, 내게 꼬마 양복이 생겼다. 빨간 자동 넥타이를 목에 걸고, 엄마와 가로수가 있는 보도를 걸었다. 또 오줌이 마려운데, 공중 화장실을 찾을 수가 없었다. 엄마에게 말했다.


  "엄마 오줌 싸고 갈게" 


  사람들이 뜸한 사이에 가로수 뿌리 쪽에 뜨거운 물을 줬다. 화장실이 없는 고속버스가 아니니 얼마나 좋아. 그런데, 엄마를 보니, 여자는 불편해 보였다. 


  갑자기 오줌 마려우면, 나에겐 사방이 화장실인데, 엄마나 여자들은 어떻게 하지? 하나님이 남자들만 편하게 만들어 놓은 건가. 


  엄마에게 물었다.

   "엄마, 여자로 태어난 게 좋아?

    난, 남자로 태어난 게 다행인데..." 


  내가 여자였다면, 고속버스에서 콜라병으로 긴급조치를 할 수 있었을까? 여자가 아닌 게 천만다행이었다. 내가 여자라면, 예쁘게 차려입고, 가로수 옆에 앉아서 뭘 할 수 있을까? 에이~ 생각 안 할래. 


  여자로 태어난 게 좋냐는 

  갑작스러운 물음에, 

  엄마는 '아니'라고 했다. 


  음~역시 그랬어. 


  그때부터 여자들은 여자로 태어난 걸 좋아하지 않을 거라는 엉뚱한 편견을 가지고 살았다. 말은 안 해도, 남자들을 부러워할 거라고 여겼다. 


  다시 태어난다면, 다들 남자로 태어나려고 경쟁할 거라 생각했다. 

  착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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