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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표심 Oct 07. 2022

7살, 나는 담배를 끊었다

니들이 연기 맛을 알어?

-서부이촌동과 철도


  국민학교 입학 전 7살. 우리  서부이촌동 시민아파트 3층, 외할머니 댁은 옆 동 2층에 있었다. 아파트 옆은 한강철교 북단이었다.


  한강철교로 넘어가기 직전 철로 옆에는 대공초소가 있었다. 한강철교를 지키는 군인 3~4명은 포신 여러 개가 달린 대공포 손잡이를 돌리며 매일 훈련을 했다.


  "2시 방향에 적기 출현, 시속 70마일로 쏴라"


  지금도 이 말이 무슨 말인지 모른다. 날아가는 적기를 격추하려면, 속도를 계산해서 미리 앞에 쏘라는 얘기인가?


  한강철교를 지나던 열차는 가끔 그 위에 섰다가 갔다. 형들은 '열차에서 사람이 한강으로 떨어졌기 때문'이라고 했다.


-증기기차


  이 철도로는 증기기차도 다녔다. 1967년 8월 증기기관차 종운식이 있었다지만, 그래도 가끔 모습을 보였다. 멀리서 심상치 않은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면, 담 너머 증기기관차를 보러 달려갔다.


  검은색 증기기관차는 수십 미터를 전력 질주한 개처럼 '퍽퍽 퍽퍽~ 퍽퍽 퍽퍽~' 헐떡였다.


 수증기가 섞인 검은 연기는 위로 오르다가 뒤로 꺾여 흘렀다. 맹렬히 만두를 쪄대는 것처럼 기차 밑으로 수증기도 치이익 빠져나왔다.


  증기기관차 바퀴는 디젤 기관차 바퀴보다 훨씬 커, 위엄 있게 굴렀다. 바퀴에 달린 기다란 쇠 팔들은 '위 앞 아래 뒤'로 연신 타원 운동을 했다. 따각따각~ 따각따각~ 레일 소리에 맞춰 땅도 함께 진동했다.   


-넝마주이 재건대


  시민아파트에서 새남터 순교성지까지는 200미터도 되지 않았다. 성지 앞 철길 옆에는 폐품을 고물상에 팔아 생계를 유지하는 근로재건대(勤勞再建隊) 숙소가 있었다.


  근로재건대에는 넝마주이라 불린 사람들이 살았다. 그들은 작업복에 이름표를 달았고, 집게와 망태기를 들고 다녔다. 어린애들에겐 괜히 무서운 존재이기도 했다.  


  나는, 재건대 깡통건물 밖에 아무도 없으면, 창문으로 내부를 살폈다. 군대 내무반 같은 마루에 팔을 괴고 옆으로 누운 사람, 옷가지가 널린 실내 빨랫줄이 보였다.


  가끔 TV에서 만화라도 상영되는지 기웃기웃했다. 황금박쥐 · 타이거 마스크 · 요괴인간 · 밀림의 왕자 레오 · 우주소년 아톰 등이 상영된 1972년은 만화 전성시대였기 때문이다.


-외할아버지 댁 흔들리는 TV와 삼강하드 통


  시민아파트 2층엔 외할아버지 댁이 있었다. 외할아버지는 아파트 계단 아래 좁은 공간에서 구멍가게를 했다. 교회 장로님인 외할아버지는 술을 팔지 않았다.


  가게에는 삼강하드가 든 통이 하나 있었고, 소금과 얼음이 든 고무주머니가 맨 위에 올라와 있었다.


  외할아버지 댁은 방이 2개였는데, 현관 바로 앞 방은 세를 주었다. 거기엔 입술 옆에 검은 점이 찍히고, 자주 웃는 젊은 새댁 부부가 살았다. 나는 눈치도 없이 이 방에도 들어가 놀았다.


  신발을 벗고 마루로 오르면, 왼쪽에 작은 부엌이 있고 정면에 안방이 보였다. 이 방에서 외할아버지, 외할머니, 경미 이모, 여고생 막내 이모가 잠을 잤다.


  외할아버지 집 17인치 TV 화면이 찌그러지면, 나는 얇은 철밴드 실내 안테나를 이리저리 움직였다. 철길에서 열차가 덜커덩거릴 때마다 TV 화면은 찌지직 찌지직 리듬을 탔다.


  나는 우리 집인 양 매일 이곳을 드나들었고 , 가게에서 하드를 가끔 꺼내 먹었다.


-담배를 끊었다


  새남터 순교성지 옆엔 건물을 철거해서 움푹 파인 커다란 공터가 있었다. 바람이 불면 이곳 비닐들이 여기저기 흩어졌고, 쓰레기들이 굴러다녔다. 나는 이곳에서 놀았다.


  공터 앞에선, 개들이 김이 모락모락 나는 똥을 먹었다. 교미 후 아직 몸이 떨어지지 못한 개들은 불안한 눈으로 우리를 쳐다보았고, 이빨을 보이며 으르렁댔다. 동네 애들이 아랑곳 않고 막대기를 두드리고 물을 부을려고 하면, 몸이 붙은 개들은 옆 걸음질 쳤다.


  나는 신기한 딱성냥을 가지고 놀았다. 딱성냥엔 붉은 인(적린 赤燐)이 성냥 머리에 들어 있어, 성냥갑 없이 아무 데나 그어 불을 붙일 수 있었다.


  나는 쓰레기가 굴러다니는 공터로 내려가, 담배꽁초가 떨어진 곳에 원반을 던졌다. 떨어진 원반을 회수하면서 몰래 꽁초를 주웠다. 담배를 동네 애들과 함께 피우기 위함이었다.


  구석진 곳으로 숨어든 우리는 딱성냥을 그어 꽁초를 피웠다. 연기 맛이 났지만, 건조한 연기 맛은 아니었다. 약간 텁텁한 습기 연기였다.


  아~담배. 이런 연기 냄새 맛이었구나~


  연기 맛을 알았으니 됐다. 그 자리에서 담배를 끊었다.


  군대에서도 담배를 피우지 않았다. 군대 선임이 신병인 내 입에 불을 붙인 담배를 꽂아 피우라고 명령했지만, 담배를 빨지 않았다.


  담배는 국민학교 입학 전에 이미 끊었기 때문이다.


< 참고자료 >

(만인보 11화)“내 이름은 넝마주이”-사각지대의 삶, ‘넝마주이’ , 뉴스토마토, 2018.08.27 


근로 재건대 발족대회 - 서울사진아카이브, 1962.5.14


[그때의 사회면] 재활용의 첨병 넝마주이, 서울신문, 2018.0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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