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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비어로 알탕 끓여먹는 영화

<마약왕>

by 민경민

<마약왕>, 캐비어로 알탕 끓여먹는 영화



난생 처음이었다. 상영 중인 영화를 끝까지 보지 않고 영화관 문을 박차고 나온 것은. 아무리 형편없는 작품이어도 ‘형편없는 이유’라도 찾기 위해 고통을 참으며 봤던 것과는 다르게 이번 영화는 그렇게 할 수도 없었다. 이유는 간단하다. 그야말로 ‘캐비어로 알탕을 끓여먹은 것’이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영화는 못 만든 영화 중에서도 가장 못 만든 축에 속하게 될 것이다.

이 영화의 지리멸렬함은 앞서 필자가 혹평했던 <명당>(2018)과도 닮아있다. 그러나 <명당>이 그 스스로 주목할 부분을 조금은 남겨놓았던 것에 반해 <마약왕>은 그런 최소한의 들여다볼 요소조차 준비되어있질 않다. <명당>이 <관상>(2013)을 복제했다면 이 작품은 <범죄와의 전쟁>(2011)을 어설프게 복제해 놓는다. 실로 이 영화가 내놓고 있는 슬로건도 <범죄와의 전쟁>에서 최익현(최민식)이 보안팀 동료에게 “난 일본 원숭이 시키들 다 뽕 쳐맞아가 침 질질 흘리면서 다 뒈졌으면 좋겠습니다. 애국이 별겁니꺼.”라고 말한 대사 그대로다. 다만 인물들의 역할이 조금 뒤틀려있을 뿐인데, 이조차도 완벽히 해내지 못해서 설렁설렁 <범죄와의 전쟁>을 답습하는데 온힘을 쏟는다. 물론 <범죄와의 전쟁>도 <비열한 거리>(2006)를 답습한 것이지만, 그건 재해석에 가까운 것이었다. 그런데 <마약왕>은 자신의 색깔을 맞춰놓지 않고 무작정 타인의 색깔을 쫓아가다보니 맞지 않은 옷을 입은 것처럼 사건의 얼개는 조악하기만 하다. 왜 사건이 벌어졌는지, 충분한 정보가 제공되지 않은 채 ‘뭐 대충 알아들었겠지’ 하고 넘어가는 식이다. 그러니 개연성은 저만치 날아가고 만다. 그렇다고 영화가 주제 삼는 마약의 어두운 일면에 대해 날카로운 일침을 가하는 것도 아니다. 그저 화제성이 있는 먹거리를 대충 3분 카레마냥 전자렌지에 돌려놓는 것 같다.


이 영화의 가장 큰 문제점은 영화도 영화지만 한국 영화계의 매너리즘과 모럴 해저드를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는 점이다. 화제성이 있는 주제, 마약, 섹스, 유머 따위로 대충 만들어 놓기만 하면 관객들이 볼 것이라는 기대감은 최근 한국 영화계에 만연해 있는 기류이기도 하다. 심지어 영화가 자기 색깔을 연출하는데 골몰하지 않고 ‘잘 된 남의 답안지’를 베껴가면서 말이다. 그런가하면 우리나라에서 내로라하는 소위 ‘대배우’들도 연기 한계에 봉착해 형편없는 연기를 보여주고 있다는 걸 깨달아야 한다. 송강호는 송강호이며, 배두나는 배두나다. 영화 속 캐릭터를 흡수하지 못하고 자기 얼굴이 드러나는 배우는 좋은 배우라고 할 수 없다. 그건 영화계에서 오래 관록을 쌓은 배우라도 피해갈 수 없는 숙명이다. 배우는 한 평생 자신의 얼굴을 개조하는데 힘써야한다. <마약왕>에서 그나마 배역을 잘 흡수해낸 배우는 조정석뿐이다. 나머지는 배역을 맡았다기보다는 그저 자기 자신을 드러내는 것 같다.


한국 영화 산업을 위해서라도 이런 영화는 이제 더 만들어지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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