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널 어떻게 믿냐?

by 민경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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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간나 새끼 그냥 보내라우."

"아니, 모르는 놈한테 왜 그러세요?"

"모르긴 왜 몰라? 잘 알지. 갈 때까지 간 놈."



누군가를 믿어야 할 때 우리가 가장 먼저 보게 되는 게 뭘까. 그 사람의 그럴싸한 신용? 언행? 아니면 겉으로 보이는 멋진 옷? 때로는 겉으로 보이는 껍데기가 유용할 때도 있지만, 아마도 중요한 순간에 가장 믿음직스러운 건 그 사람이 욕망을 대하는 태도일 것이다.


조선 후기에 연암 박지원이 쓴 소설 <허생전>에서 주인공 허생은 부자 변 씨에게 찾아가 대뜸 만 냥을 빌려달라고 하는데 변 씨는 아무런 조건도 없이 만 냥을 내어준다. 주변 사람들이 대체 무슨 영문으로 그런 큰돈을 빌려주냐고 묻자 변 씨는 이렇게 말한다.


"이건, 너희들이 알 바 아니다. 대체로 남에게 무엇을 빌리러 오는 사람은 으레 자기 뜻을 대단히 선전하고, 신용을 자랑하면서도 비굴한 빛이 얼굴에 나타나고, 말을 중언부언하게 마련이다. 그런데 저 객은 형색은 허술하지만, 말이 간단하고, 눈을 오만하게 뜨며, 얼굴에 부끄러운 기색이 없는 것으로 보아, 재물이 없어도 스스로 만족할 수 있는 사람이다."

박지원, <허생전> 중


영화 <타짜>(2006)에서 평경장이 운영하는 도박판에 뛰어들어와 깽판을 치는 고니에게 평경장이 빛을 탕감해줬던 것도 어찌 보면 허생전의 변 씨와 같은 생각이라고 할 수 있다. 훗날 제자인 고니에게 도박의 오의를 알려주면서 강조했던 '야수성'을 그날 고니가 민낯 그대로 드러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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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략) 내가 왜 그런 자네랑 다시 손을 잡아야 하지?"

"(중략) 안면인식 프로그램 때문에 기회가 줄어들고 있어요. 교수님과 제가 같이 뛰어서 크게 한 탕 하는 거죠."


'블랙잭' 카드 카운팅으로 카지노에서 돈을 벌어들이는 천재들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 <21>(2008)에서 벤은 교수와 마찰을 빚고 홀로 카지노에서 카드 카운팅을 하다가 호되게 당하고 모아둔 돈과 졸업증서까지 잃게 됐지만 다시 교수에게 찾아가 크게 한 탕할 것을 제안한다. 따지고 보면 교수 입장에서는 벤과 함께할 이유가 없는데도 그의 '한 탕 하자'는 마지막 주장에 마음을 바꾸고 다시 팀을 꾸린다. 카지노에서 카드 카운팅 할 기회가 줄어들고 있는 건 명확했고 무슨 억하심정이 있든 교수 입장에서는 좋은 돈벌이가 사라지는 것이기도 했으니까.


서로 뒤통수를 쳤지만 어쨌든 둘은 공동의 목표를 가지고 있다. 그전에는 서로 욕망의 방향이나 크기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지만, 더 숨길 것이 없는 상황에서 모든 패를 까놓고 어떻게 욕망을 관철할 것인지 터놓는 순간 서로 악의를 가진 이들끼리도 손을 잡을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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