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케구루이>의 주인공 쟈바미 유메코(17, 도박중독자)
<카케구루이>(2017)를 재밌게 본 적이 있다. 도박으로 계급을 정하는 학교에서 가축이 되어버린(최하위 계급) 주인공이 전학생 쟈바미 유메코와 함께 모험을 한다는 황당하기 짝이 없는 내용인데, 스타일과 연출이 좋아서 끝까지 보게 된다. 학원물 특성상 성인이 보기에 다소 유치할 수 있는 장면이 있기는 하다. 그러나 캐릭터가 워낙 강렬하다 보니 그런 유치함도 중화된다. 도박의 스릴에서 오르가즘을 느끼는 유메코의 광기란 단순한 팜므파탈의 이미지를 넘어선다.
<귀멸의 칼날>(2019)에 이어 연이어 극장에서 히트를 친 일본 애니메이션 <체인소 맨>(2022) 시리즈 역시 <카케구루이>의 직설적이고 화려한 연출을 쏙 빼닮았다. 제작사(MAPPA)가 같으니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선언하듯 내던지는 세계관 위에 슬래셔 장르 특유의 잔혹함, 시원시원한 액션을 얹는다. 전개가 빠른데도 매 신마다 동작 하나하나가 살아있는 듯, 세심한 작화도 눈에 띈다. 그리고 무엇보다 <체인소 맨>의 캐릭터들은 <카케구루이>와 마찬가지로 전형적인 아니메 스타일의 인물과는 조금 다른, 안티히어로 스타일의 인물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더 눈길을 끄는 게 아닐까 싶다.
본론으로 들어가기 전에, 잠깐 한 가지 문제를 짚어 보자. 사실 <체인소 맨> 시리즈를 처음 접하는 사람은 포스터에 등장하는 덴지의 체인소 형태를 보고 '아무리 픽션이라지만 전기톱이 몸에 달려 나오는 건 무슨 경우람?'이라며 거부감을 느낄 수도 있다. <기생수>와 같은 만화에서도 괴물들은 어찌 됐건 인체의 연장선에서 생물체의 형상을 하고 있으니까. 필자 역시 처음엔 그 점이 좀 억지스럽다고 생각했으나 극 중 마키마의 설명을 듣고 곧바로 이해하게 되었다.
<체인소맨>의 세계관은 인간이 공포를 느끼는 존재가 악마로 현현하여 현실 세계에 위협을 준다는 내용이다. 악마와 같은 존재들을 상상했던 과거에는 공포스러운 것과 관련해 인간이 떠올릴 만한 것이 창, 칼, 그 밖의 육탄전을 매개한 병장기들이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악마, 악령의 이미지에 꼭 그런 무기들이 함께 등장하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다. 그런데 현대에 이르러 그런 무기들이 더이상 사용되지 않는다고 해서 공포가 사라질까? 오히려 더 다양하고 무시무시한 것들이 많이 늘어나지 않았는가. 애니메이션 속에는 체인소(Chain saw, 전기톱)를 비롯해 좀비, 태풍, 총, 칼, 폭탄 등 다양한 형태의 공포가 악마의 육체를 빌려 형상화되어있다. 실로 이들은 모두 근현대사에서 현실과 문화적 밈을 망라하고 인류에게 막강한 공포를 안겨준 것들이다.
설정은 꽤 그럴싸하다. 재미있는 건 그 많고 많은 공포 중에 왜 하필 주인공은 '체인소'냐는 말이다. 엄밀히 말하면 덴지가 흡수한 포치타가 체인소의 악마인 것이긴 하지만, 다른 악마들의 능력에 비해 그다지 이점이 없는 것 같은(단순히 전투의 효율에서 본다면) 전기톱이 주인공이 된 데는 뭔가 이유가 있을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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