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생각중독

12-2.'밀레니얼', 본질은 세대 간의 생존 경쟁이다

by 민경민
어느 경기에서든 공을 쥔 자는 절대로 빼앗기지 않으려고 한다 *사진 : Pixabay


tvN SHIFT 초청, '김난도 교수의 tvN 2020 트렌드 발표회' 후기 (2)



본질은 세대 간의 생존 경쟁이다


복잡한 용어와 학문들이 있지만 현대 인류의 생존 시스템은 한 줄로 요약할 수 있다.


타인에게 없는 것을 만들어 타인에게 제공하고, 또한 반대로 내가 없는 것을 그들에게 얻는 것이다.

인간은 생명이다. 그 말인즉, 생존을 갈망한다는 소리다. 생존한다는 건 기본적으로 육체의 안전과 유지, 나아가 생존하는 기간 동안 자아를 자각하고 유지하는 일이다. 현대 사회는 이러한 일을 돕도록 조직되고 구성된 하나의 수단이다. 이는 확실히 생존에 필요한 것들을 얻는 데는 매우 편리하지만 우리가 무언가 대가를 지불하지 않으면 안 된다. 꼭 물질적인 것이 아니어도 된다. 우리는 무엇이 되었건 타인에게 가치 있을 만한 일을 생산해야하고, 그걸 바꿀 수도 있어야 한다. 그래야 현대 사회가 주는 생존 수단을 얻을 수 있다. 물론 그러한 일을 일절 하지 않아도 되지만, 자연에 나가 자연인이 된다는 건 썩 좋은 선택지가 아님을 누구나 다 알고 있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는 생존 도구를 얻기 위한 생산을 시작해야 한다. 그런데, 무엇을 생산할 것인가?


대한민국의 각 세대가 처했던 경제상황과 그에 따른 생산수단 확보에 대한 도표 *이미지 : 직접 제작



우리나라의 베이비부머 세대는 맨땅에서 현대국가로서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의 기틀을 조성했다. 전쟁으로 폐허가 된 땅 위에서 이들은 개인의 욕구를 포기하고 집단에 종속돼 논밭을 정비하고, 상수도를 깔거나 도로와 철도를 잇는 등 국가 기초 인프라를 구축하는데 전 생애를 바쳤다. 그래서 그들은 국가 정체성에 대한 매우 강렬한 소유욕을 가지고 있으며, 늙은 나이에도 애국심을 불태운다. 또한 그런 힘든 시기를 지났기에 일선에서 지휘한 지도자를 마치 부모처럼 생각하기도 한다.


어쨌거나 베이비부머 세대들은 기초 인프라를 구축하면서 거기에서 파생되는 생산력을 획득했다. 대표적인 것이 땅이다. 무주공산이나 다름없었던 대한민국의 맨땅을 가치 있는 땅으로 바꾸고 그것을 차지하면서 그들은 그 위에서 생산되는 그 모든 것들에 대한 권리를 주장할 수 있게 됐다. 대한민국 부동산의 실질적인 소유주가 여전히 이들이라는 사실이 이를 뒷받침 한다.


한편 현재 60대를 지나고 있는 386세대는 바로 윗세대인 베이비부머 세대가 열악한 환경에서 경제 기틀을 닦아준 덕분에 고도성장의 미주를 차지할 수 있었다. 베이비부머 세대가 기초 인프라를 구축하며 생산수단을 차지했다면, 386세대는 그 기반 위에서 경제 인프라를 구축하며 생산수단을 획득했다. 예컨대 조선, 중화학공업, 자동차 등 2차 산업의 근간인 공업 인프라를 구축함과 동시에 금융, 서비스업, 2차 산업에서 파생되는 다양한 분야의 전문 산업을 육성하는데 일선에서 활약했다. 사실상 우리나라의 주요 산업과 대기업이 태동한 시기는 이들 세대와 궤를 같이 한다.


그런 점에서 386세대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주목해야할 세대이기도 하다. 인간이 현대사회에서 동원할 수 있는 거의 모든 수단을 확보할 수 있었던 세대이기 때문이다. 386세대는 대한민국의 거의 모든 것을 소유한 세대다. 부모에게 이어받은 부동산에서부터 생산설비, 심지어 권력까지 모두 쥐고 있다. 모든 것을 차지할 수 있었기 때문에 국가에 자유의지를 빼앗기는 것도 더이상 용납하지 않았다. 민주주의라는 산물을 낳는데 일조했지만 그와 동시에 갓 태동하던 현대국가로서의 대한민국의 시스템은 당연히 그들에게 유리하게 설계되었으며 이 무한 장벽은 후대에 절대로 넘을 수 없는 벽이 된다.


밀레니얼 세대의 윗세대인 X세대는 386세대가 독차지한 소유물로부터 파생되는 부산물을 얻어먹는 처지의 세대다. 그들은 기업가라기보다는 충실한 월급쟁이들이며, 386세대의 자비가 없는 한 언제 사회에서 내쳐질지 모르는 불안한 하루하루를 살고 있다. 살아남기 위해 고리타분한 386 방식의 수직적 관계를 강요받으면서도 권력이나 성공의 핵심에는 감히 접근하지 못한다. 40대의 성공신화는 일찌감치 산업의 대변화를 직감한 선견지명이 있는 이들의 이야기거나, 혹은 강력한 후계자일 경우에 한해서다. 이들 또한 성공에 관해서는 밀레니얼 세대만큼이나 암울한 세대인 것은 마찬가지지만, 평생을 일해야 할지언정 그나마 월급이나마 얻을 직장이라도 있는 것은 다행이었다.


여기서 잠깐 다소 오해의 소지가 있을 것 같아 미리 이야기 해둔다. 물론 세대별로 성공한 사람과 실패한 사람이 있을 수 있다. 부자가 있는가 하면 가난한 사람도 반드시 있다. 386세대라고 꼭 한 기업의 중역이라는 법은 없고, 베이비부머 세대라고해서 모두 집을 갖고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핵심은, 그 당대에 그들이 어떻게, 어떤 수단을 쥘 수 있었느냐다. 무엇을 차지하고 기회를 쥐고 안 쥐고의 차이는 있었겠지만, 어쨌거나 그들은 ‘쥘 기회’가 있었다. 모든 사람의 성공을 이야기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자질이 있는 사람이 세대별로 있다고 했을 때 누가 더 성공을 할 수 있는가의 문제다.


밀레니얼 세대의 가장 큰 문제점은 중요 영역에서 성공할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이미지 : 직접 제작



밀레니얼 세대는 적어도 대한민국 안에서는 현대 사회를 정의하는 주요 수단을 차지할 방법이 많지 않다. 주체적으로 가치를 생산을 하지 못하니 남들이 정해준 만큼만 생산할 수밖에 없다. 장사를 한다고 해도 정식으로 가게를 얻기는 힘들기에(어차피 얻는다고 해도 젠트리피케이션을 당하지만) 길바닥에 쫓겨나 푸드 트럭 창업이라도 성공시키면 다행인 수준이다. 기업 창업은커녕 취업을 간신히 성공하더라도 기업 안에서 정년을 볼 수나 있을까 한 게 그들의 현실이다. 구조조정은 언제나 책임자급의 마지노선이 있었지만 이제는 대리급, 아니 신입사원까지 그 선을 넘나들고 있다. 취업을 마치 성공으로 착각할 정도로 백수들이 넘쳐나는 판국에 들어간 사람들조차 스스로 나아가 사회에서 성취할 수 없겠다는 불안감에 시달린다.


그렇게 놓고 보면 앞선 세대들이 수직적 상하관계와 계열화를 일군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만들어낸 것을 소유하고 유지하기 위해서는 나의 도태를 적극적으로 막아야 한다. 그러자면 권위로 군림해야하고, 설령 유능한 인재가 있더라도 한계선을 그어 올라오지 못하게 해야 한다. 그래야 소유한 것을 지켜낼 수 있다. 물론 그렇게 해도 고도성장 시기에는 모두가 납득할 만한 일이었다. 강연에서 김난도 교수도 언급한 것처럼 고도성장시기 386세대는 열심히 일하고 시스템에 복종하면 그 자신도 시스템의 순서에 따라 기득권이 될 수 있었다. 그러나 경제는 무한히 성장하지 않고, 풀의 규모는 작은데 가진자들이 많아지면 신규 진입자는 차지할 게 없어진다. 모두가 원하는 것을 가지고 있을 때 요구가 늘어나면 문을 닫게 되는게 인간의 본성이다. 부자는 부자가 됐다고 만족하지 않는다. 자기를 기준으로 더 큰 부자가 되고 싶고 더 큰 권력을 원한다.


밀레니얼 세대는 견고한 성벽에 가로막혀 아무것도 얻을 수가 없는데다 기회에 비해 지나치게 많은 인구는 서로를 돌볼 기회조차 박탈하고 만다. 그들이 정말로 취향이 그러해서, 시대 변화 흐름을 빠르게 받아들이기 때문에 새로운 것이나 찾아다니고 모든 것의 가성비를 따지며 렌트하며 살아갈까? 나는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사진 : 'tvN 2020 트렌드 발표회' 강연 중



‘2020 트렌드 발표회’ 강연에서는 뉴욕에서 비싼 임대료에 거의 모든 수입을 갖다 바치고 유튜버로 살아가는 한 청년의 사례를 들려준다. 자기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즐기는 성향 때문에 오늘을 살아간다는 분석에는 공감하기가 힘들다.


나의 사례로 예를 들자면, 나는 울산에 살지만 어떤 문화 행사가 있을 때마다(심지어 이번 강연조차도) 왕복 교통비와 식대를 합쳐 십만 원이 훌쩍 넘는 돈을 써가며 서울을 다녀와야 한다. 왜냐하면 정말 들여다볼 만한 행사는 서울에서만 열리기 때문이다. 실제로 브런치 무비패스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서울 밖에서 열린 적이 없다. 나는 브런치 무비패스를 네 번이나 참여했지만(실제로는 다섯 번이지만 5기에는 한 번도 올라간 적이 없어 제외 한다. 참여하지 못한 이유는 순전히 왕복 차비 때문이다) 영화 시사회 한 번을 보기위해 변변찮은 수입에 왕복 10만 원을 허비하는 일은 내 친구의 말마따나 ‘미친 짓’이나 다름없다. 아마 뉴욕에서 렌트비로 거의 모든 소득을 날리는 유튜버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가치 생산을 하자니 비용이 더 들어간다. 그러니 생산 결과가 0에 수렴할지언정, 거기서 타협을 본 것은 아닐까?


김난도 교수는 한 가지 사례를 더 소개한다. 요즘 젊은 직장인은 인사도 하지 않고 출근시간이 딱 되어서만 직장인 모드로 탈바꿈 한다는 것이다. 그런가하면 승진에는 관심이 없지만 프로젝트를 맡아 팀장이 되는 것은 좋아한다고 한다. 이 이야기들도 결국은 위에서 언급한 내용의 연장선상이다. 열심히 일하고 잘해보아야 기업의 중역이 되거나 회사를 나와 창업, 성공으로 이어지는 길을 찾을 수 없다.


주병기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한국경제학회 주최 세미나에서 ‘고소득자’로 알려진 전문직들을 살펴보면서 “자체 분석 결과 국내 하위가구 출신이 상위 20% 내 소득 획득에 실패할 확률이 2000년대 초 15~20%에서 2013년 기준 35%까지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며 “근로시장의 기회 불평등 현상이 심화되고 있는 것”으로 분석했다. 고소득 전문직도 그런 판국에 회사는 밀레니얼 세대에게 더 이상 성공의 발판이 아닌 것이다. 그런데 무엇하러 더 고욕을 치러가면서 정신력과 육신을 허비해야하는가? 프로젝트를 맡는다는 것은 개인의 경험이 되기 때문에 젊은 사람에게도 분명 도움이 된다. 그러나 승진은 어차피 한계가 있기에 성공의 길과는 거리가 멀다. 월급이 미친 듯이 차이나지 않는다면 굳이 부담을 안아가면서 승진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꽤 괜찮은 직장을 다니는 사람도 이러할진대 취업조차 못한 이들은 두말할 필요가 있겠는가.


밀레니얼 세대는 성공을 포기한 것이 아니다. 부를 갈망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다만 터무니없을 정도로 막혀버린 성공의 길 때문에 ‘대안’을 찾는 것이다. 비트코인 광풍이 불 당시에 청년들은 너도나도 비트코인에 막대한 재산을 투자했다. 이상하지 않은가? 미니멀리즘을 추구한다며 렌트를 해대는 청년들이 막상 큰돈을 벌 기회 앞에서는 모험도 마다하지 않는 것이 말이다. 유튜브가 미디어 카르텔을 해체하고 일반인에게도 큰돈을 안겨주자 너도나도 뛰어들었다. 내색하지 않을 뿐, 실은 그들도 창출한 가치를 맞바꿔 부자가 되고 싶은 것이다. 무엇하러 소확행을 추구하는가. 대확행이 안되니까 추구하는 것이다.

꼭 부자가 되고 싶다거나 성공하겠다는 생각이 아니라도 좋다. 사실 밀레니얼 세대는 평범하게 가정을 꾸리는 것조차 힘든데, 윗세대로부터 전해져오는 부의 흐름이 소유자들의 욕구를 따라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게 무슨 말인가 하면 예컨대 직장에서 돈은 쥐꼬리만큼 주면서 집값은 천문학적으로 받는다는 것이다. 부동산 이슈가 있을 때마다 기겁을 하고 들고 일어서는 사람들을 보면 대부분 386세대와 그 윗세대들이다. 어차피 청년들은 집을 가진 사람도 거의 없다. 2016 통계청 주택소유통계 보고서에 따르면 인구의 46%를 차지하는 청년이 주택의 15.6%를 차지한다. 인구의 26.8%를 차지하는 386세대와 베이비부머 세대가 43.7%를 소유한다. 청년을 제외한 나머지 노년 인구를 합하면 그들이 차지한 주택의 비율은 무려 주택의 84.4%에 이른다. 마찬가지로 직장에서 돈을 주기로 결정하는 사람도 386세대다. 돈도 집도 없는 형국에 놓인 청년들에게 출산률 0%를 걱정하며 가임여성 지도를 뿌리는 것은 과연 싸이코패스들의 발상이 아닐까?


큰 문제점은 이제 고령화 사회가 온다는 것이다. 고령화 사회는 인간의 기대수명이 늘어난다는 것이고, 달리 말하면 대한민국을 차지한 386세대의 권좌가 더 길어진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나는 한 중소기업에서 고령화 사회의 단면을 본 적이 있다. 사장은 70대의 고령이었지만 정정해서 기업 활동에 아무런 문제가 없었고, 그의 아들은 40대였지만 아버지가 경영을 내려놓지 않는 바람에 그 밑에서 기약을 알 수 없는 월급쟁이 생활을 하고 있었다. 아마 고령화 사회가 닥친다면 사회에 이런 일들이 비일비재하지 않을까?


노인들의 경험과 노련미를 무시할 수는 없지만,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 속에서 부와 수단이 특정 계층에 고여 있다는 것은 매우 심각한 일이다. 이에 대해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사회적 계층 이동의 역동성이 사라지면 개인이 인적 자본 투자에 집중할 수 없게 되고, 이는 국가 경제성장 동력이 상실될 개연성이 커지게 됨을 의미한다”고 지적했다. 사회 성장은 저하되고 한정된 자원이 묶여있는 사이 젊은 계층은 점차 인생을 포기하고 '유전 자살(되물림을 막아 세대를 끊는 것)'을 선택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게 끝이 아니다. 여기서 또 한 가지의 악순환이 반복된다. 이른바 ‘캥거루족’이 늘어나고 있다는 것인데, 밀레니얼 세대가 전형적으로 그러한 경우에 속해있다. 부를 소유하고 있는 부모님 세대에게 금전적 지원을 받고, 밀레니얼 세대를 본의 아니게 부양하고 있는 386세대는 그 부담을 낮추기 위해 세대 이기주의를 강화한다. 그 결과는 다시 아래 세대에게 전가되고, 이 우스꽝스러운 악순환은 반복돼 훗날 지팡이를 짚은 노인이 똑같이 노인이 된 자식을 돌보는 기현상까지 나오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따지고 보면 밀레니얼 세대의 절망은 그 부모세대에게도 결코 좋은 일이 아니다.


나는 '밀레니얼 세대의 특징'이 이처럼 소비를 일으키는 긍정적인 신호라기 보단 사회가 파괴되는 '병증'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이들에 대한 표면적인 특징을 살려 돈 벌 궁리를 할 것이 아니라 그 이면에 숨은 병을 찾아 치료를 해야한다고 생각한다.


청년 인프라 구축의 필요성


무수한 청년정책이 실행되고 있지만 무용지물이거나 유명무실한 게 많다. 지금 밀레니얼 세대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가치를 생산할 수 있는 영역이다. 중국의 주링커우 세대나, 미국의 실리콘밸리 혹은 저커버그 세대의 창업 환경만 보더라도 청년들이 기회를 펼칠 수 있는 것이 국가적으로도 얼마나 큰 동력이 되는지 새삼 실감케 해준다.


이전 세대가 그들의 노고로 성공의 미주를 맛본 것까지는 좋지만, 이제는 그 미주를 아랫세대에게도 나누어 그들이 다시 보답할 수 있는 길을 만들어주어야 한다. 기업들은 청년들에게 기회 체험의 기회를 확대하고, 인프라를 활용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어야 한다. 나는 부산에서 유튜버들을 위한 스튜디오 대여실을 보고 크게 감명받은 적이 있는데, 고가의 장비들을 구입할 수 없는 사람은 특정 시간 집중해서 이러한 대여실을 빌리는 것도 좋다고 생각했다. 비슷한 원리로 기업들이 그런 기회를 청년들에게 제공할 수는 없을까? 그런 점에서 공유 경제가 아마 꽤 괜찮은 해답이 될지도 모르겠다.


그런가하면 국가는 기업과 성실한 납세자들이 내는 세금을 허튼 데 쓰지 말고 인프라 확충에 더 써야 한다. 내가 하고자 하는 말은 은행나무 수거 망이나 설치하자고 70만 원씩이나 쓰지 말라는 소리다. 다른 지역보다 큰 가마솥을 걸자고 수천만 원을 허비하지 말란 소리다. 그 돈으로 공공 사무실을 만들어서 청년들에게 내어주라. 지역 거점마다 청년 쉼터를 만들어 그들이 며칠 간 만이라도 프로젝트를 위해 기거할 수 있도록 내어주라. 혹은 새로 지을 필요 없이 이미 있는 기관을 활용하면 되지 않는가? 놀고 있는 지자체의 전기차를 청년들에게 대여해주는 것도 좋다고 본다.


그런가하면 아예 기업들이 청년들이 스스로 가치를 창출할 수 있도록 기업 활동에 관한 프로그램이나 패키지 상품을 만들고 국가가 이를 구입해 청년들에게 나누어주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기업은 이윤을 남길 수 있어 좋고, 국가는 청년들이 성공해 법인세를 내게 되면 어차피 회수할 수 있는 돈이다.


그러한 지원들이 청년, 밀레니얼 세대의 특성을 이해하는 길 아닐까? 그런 점에서 나는 밀레니얼 세대의 잠재성과 밝은 미래를 전망하기 전에 지금의 암울한 상황을 점검하고 그 매커니즘을 끊는게 먼저라고 생각한다.





*해당 글에서 피력된 견해는 김난도 교수의 강연 내용과는 무관함.


*전편 보기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생각 12. 밀레니얼 세대는 왜 특별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