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상호-지옥은 그렇게 만들어진다 (1)

by 민경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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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 없이 파괴되는 사람들


특별할 것 없는 지극히 평범한 회사원에게 어느 날 천사가 나타난다. 그리고 천사는 회사원에게 죽을 날짜와 시간을 알려주며, 죽을 때는 인생에서 겪은 가장 큰 고통의 10배를 겪고 지옥에 떨어진다고 한다. 난데없이 닥쳐온 죽음 앞에 회사원은 도망치기로 하지만, 얼마 못 가 그는 직장에서 그를 심하게 질책하던 상사를 우연히 만나게 된다. 도망친 회사원과 같은 이유로 나왔다는 상사는 부하에게 뒤늦은 잘못을 빈다. 그러나 회사원은 애초에 큰 잘못을 저질러서 천사에게서 도망친 것이 아니다. 그저 닥쳐올 고통과 지옥이 두려울 뿐, 잘못을 가리거나 용서를 구하는 일로 모든 게 해결되지 않음을 직감적으로 안다. 이윽고 예정된 시간이 되자 아니나 다를까, 회사원과 상사는 순식간에 집으로 옮겨져 지옥의 사자들을 맞이한다. 끔찍한 고통 속에서 처형되는 상사를 보며 두려움에 질린 회사원은 도망치겠냐는 천사의 제안을 받아들인다. 다시 잡히면 더 큰 고통과 끔찍한 지옥이 기다리고 있다고 해도 그는 도망치는 삶을 선택하고 하수구에서 쥐를 뜯어 먹으며 지옥의 사자들을 피해 어둠 속을 헤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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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 <지옥 : part 1>(2004)의 주인공, 우 <지옥 : part 2>(2004)의 주인공


연상호 감독의 초기작 애니메이션 <지옥 : part 1>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구체적인 이유를 가지고 파괴되지 않는다. 다만 초자연적인 힘이 인간을 생존에의 본능으로 내몰고, 죽어야 할 이유를 마땅히 수긍하지 못한 한 인간은 온 힘을 다해 탈출하는 길을 선택할 뿐이다. 그런데 이 단편 애니메이션의 부제인 ‘두 개의 삶’이 암시하듯 동명의 단편 애니메이션 <지옥 : part 2>는 방향이 조금 다르다. 이 작품에서 파괴되는 인간은 단순히 초자연적인 힘에 내몰려 파괴되지 않는다. 오히려 이 후속편에 등장하는 주인공은 천사로부터 지옥이 아니라 천국에 간다는 통보를 받는다. 전편과는 전혀 다른 처지에 놓인 이 작품의 주인공은 주변을 정리하며 애인에게도 이별을 통보하지만, 애인은 지옥에 떨어져도 좋으니 함께 도망가자며 주인공을 흔든다. 도망칠지 말지 고민하던 주인공은 얼마 남지 않은 시간 함께 지내기 위해 찾아간 어머니에게 도망치고 싶다고 말하지만, 그녀의 어머니는 천국에 가는 것이 어디냐며 주인공과 심하게 다투게 되고, 그 순간 어머니를 떠났다가 죽기 전에 화해를 결심한 주인공은 다시 돌아간 집에서 어머니의 자살 현장과 ‘딸이 자신을 걱정해 도망치지 못할까 봐 지옥행을 결심하고 먼저 떠난다’라는 유언장을 발견하게 된다. 삶의 갈림길에 선 딸에게 제 죽음으로써 삶을 선택하게 한 어머니의 뜻을 따라 주인공은 도망치기로 했던 애인에게 예고 없이 찾아가지만, 그녀를 기다리고 있는 건 자신이 죽음을 기다리고 있을 것으로 생각하고 밀회를 즐기던 애인이다. 결국, 천국에 갈 시간이 임박했음에도 주인공은 가위로 애인과 상간녀를 잔혹하게 살해하게 되고, 이내 등장한 천사는 주인공에게 마지막 행동으로 인해 천국으로 갈 자격을 잃었다며 지옥행을 선고한다.


<지옥>의 part 1과 part 2에 등장하는 주인공들 모두 초자연적인 힘에 의해 삶을 박탈당하는 것은 같으나 그 시기와 계기는 분명히 다르다. ‘part 2’에 등장하는 주인공의 삶이 파괴되는 시점은 애인의 밀회를 목격한 순간부터다. ‘천국으로 간다’라는 실현되지 않은 말로 이미 어머니의 죽음이라는 불행은 시작되었으며, 선택해야 할 마지막 길이었던 애인과의 도피는 애인의 부정으로 그 의미를 상실하게 된다. 모든 것이 끝난 뒤에 천사가 나타나 지옥행을 선고하지만, 꼭 지옥에 가지 않더라도 이미 주인공의 삶은 송두리째 파괴되었다. 그런데 ‘두 개의 삶’을 통해 지옥의 두 방향을 제시한 연상호 감독에게 ‘지옥’이란, 작품에 묘사되었듯 끔찍한 고문과 폭력이 휘몰아치는 지옥도(地獄道) 그 자체가 아니다. 그 나름대로 ‘잘살고 있었다’라는 삶의 가치를 한순간에 전도시켜버리는, 단지 관념에 불과한 어떤 계기들이 지배하는 현실의 삶을 지옥이라고 말한다.


17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연상호 감독은 동명의 작품을 다시 넷플릭스 드라마 <지옥>(2021)으로 꺼내 들면서 다시 지옥을 말한다. 다시 천사가 등장하고, 지옥의 사자들이 죄인을 찾아 심판한다. 아니, 엄밀히 말해 인간인 그 무엇을 찾아 무작위로 심판한다. 여전히 사람들은 ‘잘 살다가’ 별안간 파괴된다. 같은 내용이 반복되는 듯하지만, 연상호 감독의 초기 <지옥>(2004)과 새로운 <지옥>(2021)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이유 없이 파괴되는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건 같으나, 거기에 반드시 이유가 없지는 않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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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2021), 정진수 의장(유아인)


아무리 생각해도 잘못한 것은 없다


드라마 <지옥>(2021)에서는 지옥의 사도들이 나타나 사람들을 처형하는 모습들이 속속 드러나자 꾸준히 이 같은 현상을 신의 의도라며 설파했던 ‘새진리회’라는 종교 단체가 부흥하게 된다. 때마침 박정자라는 인물이 새진리회에서 주장하는 ‘고지’ 즉, 천사에게 지옥으로 가는 날짜를 듣게 되고, 사자에 의한 처형에 앞서 새진리회의 교주 정진수는 박정자에게 금전을 대가로 ‘공개시연’을 제안한다. 이 과정에서 연상호 감독의 과거 <지옥>(2004)과는 다른 중요한 점 하나가 대두된다. 바로 ‘그가 왜 처형되는가’라는 가장 기본적인 질문이다. 교주인 정진수를 포함해 그를 따르는 광신도들과 평범한 사람들까지 공개시연 대상인 박정자가 죽는 이유, 정확히는 ‘죄’를 찾기 위해 노력하지만, 그녀는 마지막까지 자신의 죄를 밝히지 않는다.


작품 속 내용만으로는 그녀가 정말 지옥의 사도들에게 끔찍한 고통을 겪으며 지옥의 업화로 불타오를만한 죄를 지었는지는 구체적으로 알 수는 없다. 어쩌면 이전에 정말 끔찍한 범죄를 지었다가 조용히 숨어지내는 것일지도 모르지만, 분명하게 드러나는 사실은 그녀가 두 아이를 키우는 싱글 맘이라는 점뿐이다. 하지만 극중 박정자가 죄인이었는가 아닌가는 극이 진행됨에 따라 점점 더 중요한 것이 아니게 된다. 다만 새진리회가 말한 ‘인간은 정의로워야 한다’라는 교리는 신의 말씀에 대항할 어떤 종류의 죄악이라도 요청하는 지경에 이른다. 그런 점에서 특히 <지옥>(2021) 4화 오프닝 숏에서 어린 딸이 아버지의 죄를 고백하면서 그 죄목이라고 밝힌 것이 기껏해야 ‘회삿돈을 함부로 쓰고 개인 컴퓨터에 나쁜 동영상을 소장했다’라는 가족들의 모습은 새진리회가 요구하는 죄를 도가 지나친 것을 넘어 코미디에 가깝게 만든다.


중요한 건 새진리회 교주인 정진수조차도 천사에게 고지를 받고 20년에 가까운 세월 동안 지옥에 떨어질 만한 짓을 하지 않기 위해, 오히려 정반대로 검소하며 정의로운 삶을 살았음에도 사자의 처형을 피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물론 드라마 속에서 정진수가 보여준 행동들은 죄라고 할 수 있는 부분도 분명히 존재한다. 그 자신이 알지 못할 뿐, 형사 경훈의 딸 희정을 유인해 사람을 죽이게 하는 장면은 복수라고는 하지만 그가 말하는 정의에는 분명히 배치될 뿐만 아니라 그 자체로 죄가 될 수 있다. 박찬욱 감독의 <올드 보이>(2003)에서도 묘사됐듯 죄의 경중은 우리가 절대적으로 재단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나비효과처럼 아주 사소한 일도 타인에게는 거대한 피해가 될 수 있기에 죄라는 것은 절대자의 시선에서 모든 것을 일렬로 놓고 보지 않으면 개인이 심판할 수 있는 성격의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한들 어쨌거나 정진수는 학생 시절에 지옥행을 선고받았다. 당시에는 고아라는 것 말고는 달리 큰 죄를 지은 게 없는데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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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2012)


여기서 연상호 감독의 단편 애니메이션 영화 <창>(2012)에서 또 다른 유형의 파멸자를 살펴보자. 등장하는 주인공 정철민 병장은 분대원들은 물론 간부들의 신임을 받는 우수병사이지만 훈련 중 사단장의 군장 검사 대상으로 새로 들어온 관심 사병인 홍영수 이병을 지목했다가 그가 허위로 싼 군장이 탄로 나는 바람에 죽도록 얼차려를 받고 저녁에 홍 이병을 구타한다. 꼭 군대가 아니더라도 타자의 실수로 큰 피해를 보았다면 충분히 화를 낼 수 있을 법한 일임에도 홍 이병이 그날 자살 기도를 하면서 사건은 일파만파 커지고, 정 병장은 삽시간에 모든 사건의 원흉이 되어 간다. 말년을 앞두고 보름간의 영창을 간 것은 둘째치고 그가 소속된 소대는 완전히 해체되어 타 소대로 전입 감으로써 분대장의 지위는 물론 그간 쌓아온 우수병사로서의 명예, 그저 성실히 군 생활에 임하면 누릴 수 있는 소위 ‘짬 대우’조차도 모두 사라져버린다. 잘못을 저지른 것은 맞지만, 군대라는 하나의 현상 속에서 절대로 일어나지 않을 일은 아닌, 어떤 일의 계기로 그가 군대 속에서 누릴 모든 것을 박탈당하는 과정은 그에게나 군에 소속된 인간들에게나 쉬이 받아들일 수 있는 성격의 것은 아니다. 그런데도 손바닥 뒤집듯 한 인간의 가치는 너무도 가볍게 바뀌어 버렸고, 그나마 정 병장이 마지막까지 믿고 있었던 ‘성실함’의 가치조차도 제대하며 나가는 길에 ‘군 생활이 편해져서 좋다’는 홍 이병으로부터 완전히 부정당한다.


한 인간이 어떤 계기로 인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파괴되는 과정은 연상호 감독이 그리는 지옥 어느 곳에서나 선연히 드러난다. 그러나 그 파괴되는 인물들이 파괴를 겪어야 하는지, 누구나 ‘정의롭게’ 선언할 수 있지도 않다. 문제는 <지옥 : part 2>의 주인공이 독백하듯 때때로 실수를 하고 누군가에게 의도치 않은 상처를 주기도 하며 살아가는 평범한 개인이 어떤 징벌을 받는 게 타당한 일인지에 있다. 만일 그렇다고 한다면 처형대상이 되지 않을 인간은 몇이나 될 것인가. 하지만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는 그저 열심히 살아간 것 말고는 한 게 없는데도 징벌에 가까운 파멸을 겪고 생의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지 않은가. 파괴된 어떤 사람이 정말 그럴 만한 잘못을 한 게 아니라면, 그렇다면 진짜 문제는 사람이 아니라 인간들이 별다른 이유 없이 나락으로 떨어지는 ‘그 현상’ 자체에 있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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