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간 일의 덧없음에 대하여

<닥터 스트레인지 : 대혼돈의 멀티버스> 리뷰

by 민경민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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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닥터 스트레인지 : 대혼돈의 멀티버스> 스틸



마블 스튜디오의 신작 <닥터 스트레인지 : 대혼돈의 멀티버스>(이하 '닥터 스트레인지 2')는 주인공 닥터 스트레인지(베네딕트 컴버배치)의 성장을 그린 전작과는 달리 성장을 마치고 본격적으로 세계의 파멸을 막는 히어로의 서사를 그린다. 사실 <닥터 스트레인지>의 각 편을 묶어 시리즈라고 하기에는 그 사이에 놓인 이야기들이 많아서 이 두 편의 이야기는 연속된 이야기가 아니라 후편이 외전처럼 보이기까지 한다. 그래서 마블 스튜디오의 작품을 순서대로 보지 않았다면 닥터 스트레인지가 '스칼렛 위치'로 분한 막시모프 완다(엘리자베스 올슨)와 싸우게 되는 상황이 난데없게 느껴질 수도 있다. 마블의 골수팬이 아닌 특정 캐릭터가 좋아서 몇몇 작품을 지켜봐 온 관객들은 영화의 부제처럼 그야말로 대혼돈의 멀티버스에 빠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서사의 연속성을 떠나서 이 작품은 대략 '영웅이 세상을 구하는 이야기' 정도로 마블 스튜디오와 떨어뜨려놓고 관람하더라도 그리 어색하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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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닥터 스트레인지 : 대혼돈의 멀티버스> 스틸



되돌릴 수 없는 과거 때문에 고통스럽다면


<닥터 스트레인지 2>에는 되돌릴 수 없는 과거로 고통받고, 되돌아가길 원하는 두 인물이 있다. 한 사람은 장애를 가지면서 연인인 팔머와 헤어진 닥터 스트레인지로 비록 원하는 대상이 죽거나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자기가 어찌할 수 없는 상황에 놓여있다. 그리고 또 다른 이는 완다 막시모프로 과거 빌런 타노스와의 전투로 사랑하는 대상을 잃고 되돌릴 수 없는 상황에 놓이고 만다. 거기다 타노스에게 희생된 줄 알았던 수많은 생명체가 아이언맨 토니 스타크의 희생으로 돌아오자 완다에게 그 상실감은 배가 된다.


이 영화에서 완다는 '다크 홀드'라는 금서를 손에 넣고 다중우주를 넘나드는 능력을 가진 아메리카(소치틀 고메즈)를 쫓으며 다양한 형태의 다중우주를 누빌 수 있는 힘을 갖게 되는데, 그녀는 되돌릴 수 없는 과거를 되돌리기 위해 그 자신이 마녀가 되어 파괴자가 되는 것도 서슴지 않는다. 그런데 다중우주를 여행해서 만나게 될 새로운 자신이든, 시간여행으로 그 자신이 후회할 순간으로 돌아가던지 간에 여기에는 반드시 마주칠 수밖에 없는 중대한 문제가 있다. 아무렴 내가 그 순간으로 돌아간다한들, 정작 나 자신은 바뀐 것이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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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닥터 스트레인지 : 대혼돈의 멀티버스> 스틸


완다는 끝내 두 아이의 엄마로 행복한 삶을 살고 있는 다중우주 속 현실에 접촉해 그 끝에서 마침내 아이들을 정면으로 마주하게 되지만 그녀에게 돌아온 건 아이들의 따뜻한 환대가 아닌 엄마(다중우주의 완다)를 내버려두라는 절규 섞인 외침뿐이다. 마치 어떤 이가 짝사랑하던 사람에게 자기감정에 취해 사랑을 강요했다가 매몰차게 버림받는 것처럼 말이다.


설령 내가 '그래서 그랬다면'의 결과로 돌아가거나 혹은 마주했을 때, 나는 그 속에 온전히 섞일 수 있을까. 우리가 처하는 어떤 사건은 그 사건 혼자 개별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그 순간의 도달점까지 모인 무수한 사건들의 인과관계가 실타래처럼 엉켜 만들어낸 하나의 실뭉치다. 그 가운데의 모든 과정을 잘라내 버리고 끝에 나의 실가닥 하나를 얹는다고 해서 자연스러운 사건이 될 리가 없다. 그러니 애당초 '돌아갈 수 있다면'이라는 가정은 막상 돌아가 봤자 아무런 의미도 없는 일이기에 부질없기만 하다.


다만 완다와는 달리 닥터 스트레인지는 옛 연인인 팔머의 또 다른 실재를 다중우주에서 만나 함께 완다를 막으면서 새로운 경험을 쌓아나간다. 비록 다른 세계에서 전혀 다른 상황을 지나왔다지만, 연인으로서 나눈 감정은 그대로인 두 사람은 강제로 앗아버린 현실에서 버림받은 완다와는 달리 새로운 희망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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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닥터 스트레인지 : 대혼돈의 멀티버스> 스틸



이유가 아니라 이제


닥터 스트레인지는 고백한다. 멀티버스로 넘어가기 이전의 자기 세계에서 새로운 남자와 결혼하는 팔머 앞에서 쿨한 척 돌아섰지만 실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고. 대마법을 깨우치고 세상을 구했어도 결국 남는 질문은 자신의 행복이라고.


영화 <아이언 맨>에서 토니 스타크가 무장단체의 동굴에서 탈출할 때 그를 돕던 잉센이 토니의 가족사를 물어보며 말했던 '다 가졌지만 가장 중요한 것이 없는' 것처럼, 혹은 헐크인 베너 박사가 <어벤저스 : 엔드 게임>에서 연인이 될 수 있었던 나타샤를 떠나보내고서 벤치를 뜯어 호수에 던져버린 것처럼 어떤 위대한 힘이나 업적을 가졌다 한들 인생의 주인인 한 개인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건 '스스로 만족하며 행복할 수 있는가'이다.


어떤 염원을 이루지 못하고 속으로만 끙끙 앓다가 병적인 광기로 분출하는 이들의 말로가 그렇듯, 닥터 스트레인지 역시 다중우주 속에서 잃어버린 연인인 팔머만을 찾으며 다크 홀드의 힘에 파멸한 또 다른 자신을 만나고 싸우게 된다. 비록 닥터 스트레인지는 다중우주에서 만난 팔머와도 각자의 세계로 돌아가기로 하지만, 적어도 그는 자신의 감정을 거짓으로 숨겨가며 내적으로 곪아가는 것이 아닌, 솔직하게 자신을 옥죄는 과거의 상처를 직면하고 인정해서 '지금의 자신'이 행복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한다.


사실 <아이언 맨>에서 이기적이기만 했던 토니 스타크가 불운했던 청년기를 정리하고 시간여행을 통해 아버지를 이해하며 종래엔 가족을 꾸렸듯이, <토르>에서 아스가르드의 왕위 계승자이자 신으로서 고결함을 강조하던 토르가 마지막 순간에 왕위를 발키리에게 넘기고 떠나듯이 마블 시리즈에 등장하는 캐릭터들의 행보는 어쩌면 한결같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조금은 유치하고 진부한 측면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그럼에도 이 같은 이야기들이 여전히 울림이 있는 이유는 어쨌든 우리의 인생도 늘 과거로 넘어가기에 어떤 선택이 수정될 수 없음을, 그리고 그 결과로 다가올 미래의 행복은 결국 나 자신을 향하기 때문이리라. 이 영화의 전개로부터 읽을 수 있듯이 애당초 '그때 이랬다면'의 가정은 덧없는 것이지만, 실제로 다중우주이론이 들어맞는다고 하더라도 우리에겐 닥터 스트레인지가 할 수 있는 대마법도, 극강의 과학 기술도 없으니 앞으로 남은 생에 그럴 일이 일어날 확률은 사실상 없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그러니 그럴 바에는 차라리 지금 이 순간의 내가 어떤 감정인지 보다 솔직하게 대면하고 행복을 위해서 어떤 선택을 해야만 하는지 과거가 아닌 삽시간에 지나갈 미래를 위해서 순간순간을 소중히 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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