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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이라는 시스템에 갇힌 사람들

by 민경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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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신이다 : 신이 배신한 사람들>(2023)에 출연한 전 JMS 신도 메이플


대학 시절에 아는 후배에게 들은 이야기다. 얼굴만 알고 지내던 데면데면한 한 후배가 사이비 종교에 빠졌다는 게 아닌가. 그 아이는 얼굴도 예뻐서 인기가 있는 편이었고 평소 학과 생활도 평범하게 잘하던 친구였다.


말을 많이 나눠보지는 않았지만 그 친구가 그래도 사이비 종교에 빠질 만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는 못했다. 후배에게 너는 그걸 어떻게 알았냐고 물었더니 크리스천인 후배에게 성경 공부를 빌미로 접근해 조금씩 만남을 늘려가다가 어느 날 사이비 종교를 권했다는 것이다.


매체에서 묘사된 이미지가 있어서 그런지는 몰라도, 사이비 종교하면 눈이 반쯤 풀린 채 '주여'를 외치며 손을 좌우로 흔드는 광신도의 모습이나, 혹은 길을 지나가다 대뜸 '인상이 좋으십니다'라는 말을 건네는 조금 수상쩍은 눈빛의 배회자들을 떠올리기 마련이었지만 그렇게 멀쩡한 사람이 사이비 종교를 깊이 믿고 있는다는 데엔 당시의 나로서는 충격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곧장 내게 떠오른 생각은 '어째서?'라는 질문이었다. 그건 사이비 종교를 믿는 사람에 대한 질문이기도 했고, 그런 사람들을 끌어모으는 집단 자체에 대한 질문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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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MS 교주 정명석에게 사람들은 다양한 고민과 번뇌로 구원을 바라지만 그의 의중은 전혀 다른 데 있다.


삶의 어려운 과정을 지나다 의지할 곳 없는 이들이 마침내 ‘절대자’에게 기도를 올리고, 마치 기적적으로 바라는 일이 이루어지는 바람에 신을 믿게 된 경우를 나는 종종 보곤 했다. 어떤 친구는 교회를 다니기 시작하면서짝사랑하는 남자와 사귀게 된 까닭에, 또 어떤 친구는 공무원 시험을 앞두고 기도를 올렸다가 합격하게 되어서 신을 믿게 됐다는데 이유는 저마다 다르지만 대체로 사람들은 누구에게도 도움을 구할 수 없거나 스스로도 앞날을 자신할 수 없을 때 구원을 찾곤 했다. 과연 사랑을 대신해 줄 수는 없는 노릇이고, 시험을 대신 쳐줄 수도 없는 노릇 아니겠는가. 그렇다고 그 고통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고.


물론 나는 신의 존재 자체는 믿지 않지만 그 '기능'만큼은 믿는 편이다. 세상엔 누구도 도와줄 수 없는 일, 도와줄 수 있음에도 외면하는 세계, 카이사르가 알렉산더의 동상 앞에서 눈물을 흘렸다는 일화처럼 범인의 영역을 넘어 너무 뛰어난 나머지 그 누구도 위로를 건넬 수 없는 경우도 분명히 있으니까. 그런 지경에 놓인 사람들에겐 같은 인간에게는 기대할 수 없는, 그런 기댈 곳이 필요하기 마련이다.


본질적인 문제를 직접 해결해주지는 못하더라도 세상의 그 어떤 고난과 시련도 모두 받아들일 수 있는 절대자. 마치 그 모든 역사가 무수히 많은 별과 무한에 가까운 어둠 속에서 고작 작디작은 푸른 점 하나에 불과했다는 우주적 시선처럼 너무도 거대한 어떤 존재가 가능할 수 있다면, 아무리 해결 불가능한 고민이라 할지라도 맘 편하게 털어놓고 이해해 주기를 바랄 수 있지 않겠는가. 더구나 종교적 이해의 장이란 상대의 기분에 맞춰주지 않아도 되고 그 횟수에 제한도 없다.


처음에는 신에 대한 믿음으로 그 모든 신앙을 시작했을지 모르나, 결국 옆에서 기도를 올리는 사람들 역시 같은 마음이라는 걸 확인하면 그들은 세상 그 누구보다 더 동질감을 느끼게 되지 않을까? 세상 어느 종교를 가더라도 집단행동이 자연스럽게 행해지는 까닭은 그들이 '신의 메커니즘'을 이해하고 이미 같은 추종자가 된 입장에서 심리적 방어막을 한껏 내린 채 서로에게도 거리낌 없이 행할 수 있는 근거가 생기기 때문이다. 일종의 집단심리치료와 같은 상태가 되는 것인데, 그건 어디까지나 꺼내기 힘든 내적 고뇌를 '승화'시킬 수 있는 종교의 긍정적 역할 아래서의 이야기일 뿐이다.


빛이 있으면 어둠이 있듯이, 그림자가 빛이 비춘 사물의 형상을 따라 하듯이, 사이비 종교는 작은 뒤틀림으로도 사람들을 손쉽게 속일 수 있다. '어떤 고난도 받아들일 수 있는 존재'와 '그 존재를 섬기는 나와 같은 사람들'만 존재하면 된다. 단지 그 자리에 신 대신 나름의 해석을 가져온 사이비 교주와, 기댈 곳을 찾은 이들의 집단행동이 있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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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인간에게 신과 같은 절대성을 부여하려면 믿기지 않는 일, 혹은 가질 수 없는 거대한 무엇, 일반적인 수준을 넘어서는 열렬한 추종이 필요하다.


문제는 신이라는 찾을 수도 없는 가상의, 그러나 너무도 크고 절대적인 존재를 어떻게 인간에게 구현하느냐에 있다. 대부분의 사이비 종교들이 늘 고민하고 실천하기를 마다하지 않는 부분도 이 부분이다. '교주의 신격화'. 과거에는 앉은뱅이 연기를 하는 연기자를 데려와서 기도 한 번에 벌떡 일어나는 쇼로도 사람들을 속일 수 있었지만 사람들의 교육 수준이 높아짐에 따라 사이비 종교도 현대 사회의 이기를 적극적으로 빌려온다. 사회에서 제법 성공한 것으로 여겨지는 사람들을 적극적으로 포섭하면서 그들의 권위를 빌리거나, 자본주의 세계의 룰에 익숙한 대중들에게 보이기 위해 일반적인 재력으로는 해낼 수 없는 거대한 궁궐 같은 교단을 세운다. '저 사람이 대단하지 않으면 어떻게 저럴 수 있겠어'라는 생각을 불러일으키는 이 현대적 신격화는 꽤나 교육 수준이 높은 사람들까지 효과적으로 속이는 수단이 된다.


이쯤에서 다시 원점으로 돌아와서, 남들에게 말 못 할 고민을 가지고 있는 어떤 사람이 '나보다 대단한 사람들도 많이 따르고, 나보다 훨씬 압도적인 재력을 가진 어떤 사람이 고민을 듣고 위로하기 위해 산다더라'라는 생각에 '성경에 이러저러한데, 그걸 해석해 보면 그는 신의 아들(혹은 전도자)라고 하더라'라는 말을 덧붙이면서 끌어들이면, 일단 심리적으로 취약한 상태인 개인의 상황과 때에 따라서는 절로 끌려들어 갈 수밖에 없다.


이건 내가 추측으로 쓴 내용이 아니라, 실제로 '인상이 좋으십니다'로 시작해 사람들에게 대뜸 질문을 던지는 사람들을 따라가 직접 들은 이야기를 바탕으로 그곳의 실태를 정리해 본 것일 뿐이다. 교단에 어떤 대단한 사람들이 있고, 얼마나 많은 신도들이 함께하고 있으며, 또한 그들을 통솔하는 교주의 영험함에 대해서 떠드는 것이 일반적인 패턴(나날이 수법은 발전하고, 최근에는 이런 사람들을 굳이 추적해보지 않아서 요즘은 어떤지 모르겠다)이다. 물론 제멋대로 해석한 성경을 팔아먹는 일도 주저하지 않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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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창 때의 JMS 신도의 숫자는 급격히 불어났다. 외롭고 소외받은 사람들 뿐만 아니라 사회에서 그다지 아쉬울 게 없는 잘나가는 사람들도 많았다. 작은 사이비 교회가 거대한 집단을 운영할 자금을 얻은 원동력은 여기서 나온다.


애초에 사람들을 착취할 목적으로 세워진 집단이기에 이들은 자발적 기부 형태인 헌금을 강제할 수 있고, 더한 것도 요구할 수 있다. 더구나 이 새롭게 세워진 시스템을 움직이는 사람들은 그들 역시도 그 속에서 막대한 이익을 얻을 수 있기 때문에 교주에 대한 충성을 떠나서라도 인간 착취에 동승하게 된다.


그런데 사실 이 사이비 종교에 발을 들인 순진한 양들에게 주어지는 구원이란 가끔 먼발치서 행사 때나 보는 콩알만 한 교주의 얼굴이거나 녹음된 음성일 뿐인데, 그것으로 이들을 광신도로 만드는 일은 족하다. 6.25 전쟁 때 중국군은 미군 포로에게 '공산주의의 좋은 점'에 대해 쓰라고 해놓고 그 포상으로 담배나 과자를 줬는데, 미군들은 고작 담배나 과자를 받은 것에 공산주의를 찬양한 것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아예 자기 생각을 바꿔버리는 선택을 한다. 이게 소위 인지부조화의 과정이다.


인지부조화에 빠져버린 광신도의 상태에서, 교주가 직접 얼굴 한 번 보자고 하는 일이 얼마나 대단한 영광인가. 이쯤에서는 아무리 똑똑한 사람도 뭐가 잘못되고 뭐가 옳은지도 모른다. 그건 마치 바이러스처럼 이미 몸을 망가뜨린 뒤에 무방비인 인간을 조종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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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일들은 초자연적 원인에 의한 재난에 가까워요. 그런 무작위적 현상에 정진수가 신의 의도를 덧씌운거죠." <지옥>(2020)에 등장하는 공형준 교수의 말은 현실에 적용해도 어색하지 않다. 각 개인이 어쩔 수 없이 부딪히는 '재난적 상황'에 '사이비 교주'가 제멋대로 달아놓은 해석이 개입돼있을 뿐.


그런데 나는, 사이비 종교에 대해 생각하면서 뭔가 비슷한 걸 많이 본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건 역사에서도, 정치판에서도 봤고, 심지어 유튜브에서도 종종 보는 광경이 아닌가.


처음에는 좋은 의도로 시작했던 어떤 생각들, 인간이 기댈 곳이 없어서 선택한 절대적 의지가 변질된 추종자의 의해 제멋대로 해석돼서 하나의 착취 시스템이 되고, 그 뒤를 따라 광신도들이 포획되는 세계. 베르사유 조약에 지친 독일인들이 나치즘이라는 신앙을 세운 히틀러를 의지하고 결국 다 같이 나치 당원이 된 것 같은 일들이 과연 사이비 종교만의 일일까?


그에 따르면 그 자신조차도 영원히 파멸되어야 할 니체의 '신 죽이기'가 지금까지도 회자되는 이유는 영원히 회귀하는 세상에서 스스로 극복해야 할 문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신이라는 시스템의 편의를 알아버린 인간이 그 부작용을 알고서도 자꾸만 빠져드는 것도 있다. 마치 신의 뜻을 배반하고 뱀의 꾐에 넘어가 선악과를 먹어버린 이브처럼 말이다.


몇몇 독재자들을 성역에 놓고 광적으로 추존하는 이들이나, 어떤 사상에 매료되어 그 사상에 반하는 인간들을 모조리 배척하려고 드는 사람들이나, 어떤 영역의 틀을 만들고 그 안에 갇혀 외부세계를 공격하고 특정 커뮤니티 안에서 강하게 결속되는 가상의 그룹들도 그 근본은 사이비 종교와 크게 다르지 않다. 종교라는 탈을 쓰지 않았을 뿐, 우리는 저도 모르는 새 언제든지 광신도가 될 수 있다.


비단 우리나라만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한국 사회가 유달리 내적 고뇌나 아픔을 털어놓는 것에 대해, 혹은 어떤 생각을 공유하는데 대해 보수적이고 경계심이 심한 것도 사실이다. 나는 다른 비밀주의들이 다 그러하듯, 개방되지 않는 구린 것들은 결국 속에서 곪아서 문제를 일으킨다는 사실에 절대적으로 동의한다. 사이비 종교는 그 뒤틀림의 정점에 있는 문제들 중 하나이고, 다른 문제들 역시 예기치 못한 방법으로 시한폭탄이 될 수 있다.


이 문제를 논의할 담론이 필요하다는 얘기는 이미 수십 년 전부터 학계와 지식인들 사이에서 널리 퍼진 의견이다. 누구든지 자유롭게 의견을 펼칠 수 있게 만드는 에피쿠로스의 정원을 가꾸는 일. 또한 너무 아픈 이들에게 그 이야기를 들어줄 귀를 만들어주는 일. 허나, 내 생각에는 그런 뜬구름 같은 임시방편으로는 부족하다.


말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게 무엇이 되었건. 그건 누가 시켜서 될 일도 아니고, 사람들의 의식자체를 개방시키는데서 비롯될 수 있다. 사농공상을 믿던 조선인을 21세기 민주주의를 믿게 만든 정도의 천지개벽은 있어야 한다는 소리다.


넷플릭스 다큐 <나는 신이다 : 신이 배신한 사람들>의 핵심도 결국은 '고백할 용기'에 관한 것이다. 극악무도한 교주의 비행을 고발할 자유, 극한의 고통과 아픔에 대해서 마땅히 고백할 자유, 그럼에도, 고백한 자의 파멸이 있지 않고 같은 인간들이 문제를 함께 고민하고 해결해 나가는 그런 세계. 신이라는 시스템이 없어도 인간에 의해 기댈 수 있는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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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신이 어떤 놈인지도 잘 모르고 관심도 없어요. 제가 확실히 아는 건, 여긴 인간들의 세상이라는 겁니다. 인간들의 일은 인간들이 해야죠. 안그렇습니까 변호사님?"


넷플릭스 드라마 <지옥>(2020)에서 광신적인 믿음을 하나의 '재난'으로 믿고 해결해야 한다던 공형준 교수처럼, 민혜진 변호사에게 "인간의 일은 인간이 알아서 해야죠"라며 새진리회를 거부하던 한 택시기사의 말처럼, 또한 다음의 포이어바흐의 말처럼 신을 죽인 우리가 극복해야 할 세계는 분명히 있을 것이다.


이제 중요한 것은 신이 존재하느냐 아니냐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이 존재하느냐 아니냐의 문제일 것이다. 이제 중요한 것은 신이 우리와 동일한 존재이냐 아니냐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인간이 서로 동등하냐 아니냐의 문제이다. 또한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인간이 어떻게 신 앞에서 정의로울 것인가의 문제가 아니라 신이 어떻게 인간 앞에서 정의로울 것인가의 문제이다. 우리가 먹는 빵이 주님의 육신이냐 아니냐가 중요한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우리 자신의 육신을 위해 빵을 얻는 것이 중요한 문제이다. 그리고 신의 것은 신에게, 황제의 것은 황제에게 주는 일이 중요한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마침내 인간의 것을 인간에게 주는 일이 중요한 문제이다.

포이어바흐, 『종교의 본질에 대하여』 중




*본문 사진

-넷플릭스 다큐 <나는 신이다 : 신이 배신한 사람들>(2023) 중

-넷플릭스 드라마 <지옥>(2020)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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