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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타페타 Mar 27. 2024

3주기의 기록

첫 일지를 쓴지 3년하고 1달 후

이 첫 줄을 쓰기 위해 벼르고 별렀었다. 이 브런치를 다시 열어볼지, 내내 머릿속으로 고민했었다. 마지막 글은 2021년 2월 28일이다. 아버지의 소천을 처음 기록한 날이자 마지막 날이다. 올해로 3주기가 되었고 그동안 내내 생각한 이유는, 기억에서 사라지기 전에 기록해야 한다는 의무감이었다.


하지만 아무것도 기록할 수 없었다.


아직 덤덤해질 수 없었기 때문이다.
기록하려면 떠올려야 하는데 더욱 용기가 나지 않았었다.

하지만 2021년 2월의 기록을 보니 잊고 있었던 것들이 잘 보관되어 있었다. 그런데 그게 (나에게) 좋은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모든 마지막에 의미를 부여한다면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가지 못할지도 몰라.

인스타그램의 게시물의 한 댓글이었다. 내 생각을 읽은 듯하여 얼른 노트에 적어두었다. 나는 모든 마지막을 추억하는 편이다. 볼펜 한 자루도 잃어버리면 내내 안타까워하는 성격이다. 내 친구는 나에 괴로움을 '네가 세심한 사람이라 그래. 세심함이 남다른 사람이라 그래.' 위로해 주었지만. 나는 이 세심함이 많은 부분 나를 고달프게 한다는 것을 안다.


그래서 나는 이때동안 어떤 기억도 감정도 정리할 엄두를 내지 못한채로, 내 방 이곳 저곳에 쌓아두고 미루어 왔다. 평소 방청소도 하루 날 잡아 하는 편인 내 성격처럼. 일상에 우선 집중하면서. 



오늘 용기내 브런치를 열 수 있었던 것은 오랫만에 부산에 여행을 왔기 때문이다. 소중한 사람들을 다시 만났고, 동시에 그동안에 내 최근 3년에 있었던 일들이 떠올랐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힘들었던 시간들을 꺼내어 나의 소중한 사람들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싶지가 않았다. 이것이 배려에 의한 것인지, 아니면 용기가 없어서인지는 잘 모르겠다. 


틈날 때마다 아버지의 장례시점의 일이 떠오르는 것은, 아직 그 시간에 나의 많은 부분이 옭아매져 있기 때문이다. 스스로의 생각이니, 스스로가 붙들고 있는 것일텐데, 왜 나는 그런 부분에서 내 삶을 수동적으로 느끼고 있을까? 


그 시절, 나는 스스로를 가엾게 여기고 자기연민이 커져 있었다. 

(자기연민이 이렇게 크다니 스스로에게 놀랄 정도로!) 나를 사랑하는 것과, 나를 불쌍하게 여기는 것은 정말 차이가 크다. 나는 전자보다 후자에 가까울 때가 많았고 이건 스스로를 위로하는 일도 아니었다. 같이 슬픔으로 더욱 빠지게 하는 꼴이었다.



어쨌든 서울을 벗어나 부산에 온 만큼, 여기라도 솔직하게 마음을 적어보자라며 브런치를 쓰기 시작했다.


그간에 있었던 기억나는 일 하나는, 작년에 회사를 퇴사하고 다시 불안한 하루 하루를 보내고 있을 때였다. 

카카오톡 대화내용이 모두 사라졌던 것이다. (아이폰 11이 아예 꺼져서 돌아오지 않았었던가...) PC 카카오톡으로 복원 시키려고 애썼지만 모두 초기화 되어 버렸다. (그날 바로 나는 톡서랍 정기결제를 시작했다. 데이터센터 폭발하는 날까지 계속 쓸듯.) 예전 아빠 폰을 열어보았다. 거기에는 가족 카톡이 살아 있었다. 문자도 있었다. 아... 나 문자도 모두 삭제되었지. 


자소서를 쓰고 앉아 있던 스타벅스에서 눈물을 뚝뚝흘리고 있던 나. 지금도 이거 쓰면서 뚝뚝 울고 있는 나! 


어느 날엔 부재중 전화가 와 있었다. 

아직까지도 예전 아빠 번호를 단축번호로 저장해 놓고 있기 때문에 잘못 눌려 전화를 걸었었다. 콜백이 온 모양이었다. 



올해 3주기 기일은 사실 잘 챙기지 못하고 지나갔다. 뿔뿔히 흩어져 있는 네 명의 가족들이 모여 (또 마침 설날 명절과 일주일 사이로 겹쳐 버렸어서) 얼렁뚱땅 10분의 간단한 추도식으로 끝났다. 내내 안타까웠었는데 엊그제 10년만에 만난 임목사님의 조언을 듣고 어떤 위로가 되었다. 살아 있는 사람들이 중요하다고. 매년 가족들이 다함께 모이는 날로 정하고, 특별한 걸 하려고 하지 말고 모이는 것으로 의미를 가질 수 있도록 하라고. 그래야 오래 시간이 지나도 가족의 문화로 남을 수 있는 거라고. 그래, 무엇을 해야하는 건 중요하지 않다. 소중한 사람들을 위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그동안 있었던 일을 모두 쓰려면 새벽이 지나도 모자를 것 같다. 오늘은 이만 줄여야겠다. 언제 다시 돌아와서 적을 수 있을지 모르지만. 문득, 2021년 일지를 적을 때보다 지금 내 상태가 나아졌는가? 생각해 본다. 슬픔과 상실감을 이겨내는 면에서는, 제자리걸음 한 것 같다. 그대로이다. 시간이 약이라 내내 생각했었는데. 더 시간이 지나보면 알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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