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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터팬의 숲 Jul 04. 2023

순두부찌개

7월이라 장마가 시작됐다. 하루종일 비가 온다는 예보가 있었다. 비가 하필 퇴근시간 무렵에 쏟아져서 신고 간 러닝화가 내리는 비에 흠뻑 젖었다. 하얀 양말이 내 마음처럼 우중충하게, 그것도 아주 검게 물들었다.


퇴근길 지하철은 에어컨이 나와서 다행이었지만 그럼에도 습한 날씨를 이길 수 없었다. 마스크를 쓰지 않아 모두의 표정을 속속 들여다볼 수 있다는 것은 '코로나 종식'이 빼앗아간 몇 가지 단점 중 하나다.


비가 와서 지하철이고, 버스고, 예상보다 늦게 도착했다. 어제보다 퇴근시간도 늦었는데, 물에 젖은 양말 때문인지 이상하게 기분까지 무겁다. 무거운 기분은 퇴근하는 샐러리맨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그래서 집에 들어가는 길에 순두부찌개집을 찾았다. '비 오는 날에는 파전'이라는 말도 있지만, 내 사전에는 '비 오는 날=얼큰한 찌개'가 하나의 등식처럼 기록되어 있다. 펄펄 끓는 찌개에 막걸리라도 걸치면 꽤나 걸쭉하게 스트레스가 날아간다. 


물론 오늘은 막걸리까지는 마시지 않았다. 막걸리를 마시기에는 비가 너무나 많이 내렸기 때문이다. 양말이 마를 시간도 충분치 않은데, 막걸리까지 마시면, 쏟아지는 비를 요령껏 피하며 집으로 들어갈 자신이 없다. 


그건 너무도 어려운 일이다.


오늘 먹은 순두부찌개에는 강릉 초당두부가 들어있었다. 


초당두부하면 강릉이 떠오르는데, 실타래를 풀어내는 것처럼 다른 추억들이 초당두부가 담긴 순두부찌개 위로 동동 떠올랐다.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뒤로 강릉을 찾았던 적이 있었나. 얼큰한 국물만큼이나 쓸쓸하게 눈시울이 붉어졌다. 


순두부찌개만큼 익숙한 감정이 끓어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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