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뭐 하는 사람이니?

‘뭐뭐’ 하는 누구입니다~

by 피터팬의 숲

몇 달 전에 경기도의 한 콘서트홀에서 어느 인디 밴드의 공연을 봤어. 공연 중간에 밴드의 구성원들 각자가 스스로 소개하는 시간이 있었는데, 그때 그 광경이 떠오르네.


왜 갑자기 떠오르냐고? 아마 오늘 저녁부터 비가 올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야. 비가 온다고 하면 왠지 조금은 센티해지지 않니, 거두절미하고 떠오른 생각을 좀 이어나가고 싶어. 귀를 좀 기울여주시길.


장소는 예술의 전당 수준의 큰 공개홀. 아침 시간이라 관객은 많지 않았지만, 박수 소리는 홀을 꽉 채웠던 것으로 기억해. 이어지는 자기소개 시간.


“노래하는 누구입니다”

“기타 치는 누구라고 합니다”


너무나 짧은 자기소개였지만 존재감이 느껴지는 말투와 억양이었지. 더 이상의 긴 설명은 필요 없다는 담백하면서 깔끔한 자기소개. ‘노래하는 누구다’라는 소개를 듣고 참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저렇게 한 단어로 대중에게 자신의 정체성을 확실히 드러내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을지 궁금했어. 게다가 말투에는 얼마나 큰 자신감이 묻어나는지.


말콤 글래드웰의 저서 <아웃 라이어>에서 설명한 ‘1만 시간의 법칙’에 따르면 충분한 시간을 투자한 경우 한 분야의 정점에 이르게 된다고 하는데... 시간을 갈아 넣었겠지. 아니면 타고난 천재일까. 천재는 1%의 영감과 99%의 노력으로 만들어진다는 말도 있으니까. 물론 이것도 한참 지난 트렌드지만 말이야.


밴드 모두의 자기소개가 끝나고, 나는 나 자신을 어떻게 소개할 수 있을지 고민해봤어. 공연이 끝나고 화장실 앞 정수기에서 종이컵을 들고 천장만 바라보던 내 모습을 본 사람들은 무슨 생각을 했을지 조금은 부끄럽지만. 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정수기가 고장 난 줄 알았을 수도 있겠어.


아무튼. 나는 ‘뭐뭐 하는 누구입니다’라는 표현에 내 뇌동맥이 침식당한 걸 거야. 그렇지 않고서야 몇 개월이 지난 지금도 이런 내용의 글을 쓰고 있지 않을 테니까.


솔직히 요즘은 “브런치에서 글 쓰는 피터팬의 숲입니다”라고 말하고 싶어. 그런데 어딘지 모르게 좀 부자연스럽지. 브런치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도 많고 피터팬의 숲이라고 하면 듣는 이의 귀가 살짝 피곤해질 만큼 혀가 많이 움직이는 단어들의 연속이니까. 거기다 ‘피터팬의 좋은 방 구하기’와 같은 플랫폼이 나의 정체성에 방해가 되는 것도 같아. 너무 나갔나? 그런데 억울한 점은 나는 이 예명을 2000년대 초반부터 쓰기 시작했다는 거야. 물론 이렇게 공개적인 플랫폼에 공개적으로 뭔가를 끄적대지는 않았지만. 그 당시에는 저런 좋은 방 구하기와 같은 카페는 존재하지 않았어.


이런저런 생각을 마무리하며 결국 얻게 된 결론은, 그래. 가장 좋은 소개는 “글 쓰는 000(*실명)입니다”가 되어야 하겠지. 브런치라는 플랫폼에 국한되지 않고, 예명을 통해 궁극적으로 실명을 밝혀야 하는 상태가 되어야 하겠지. 하지만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며, 그러기에는 실력이 부족하다는 점이 아쉽네.


하지만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언젠가는 실명을 밝힐 만큼 감격적인 순간이 오지 않겠어? 알아. 지금은 ‘지성’을 아주 많이 많이 드려야 한다는 걸. ‘진인사대천명’ 내가 자기소개서에 많이 써먹던 그 구절인데, 요즘은 그렇게까지 ‘진인사’ 했던 적이 없었던 것 같네.


반성할게. 그래야 “글 쓰는 000입니다”를 조금이라도 빨리 써먹을 수 있는 시간이 오겠지.

'진인사'하도록, 내 내면에 좀 더 귀를 기울여볼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