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직카펫 매거진1. 여성사회인 야구선수 이비함님(1)
첫번째 매직카펫 라이더, 이비함님.
2018년 1월, 독서모임에서 처음 만났다. 이번 인터뷰를 기획하면서 가장 먼저 떠올랐던 사람이기도 하다. 사실 만난 횟수는 얼마 되지 않지만 매번 흥미로운 사람이라고 생각했고, 그래서 더 알고 싶기도 했다.
여성, 사회인 야구, 투수. 내 주변에는 없던 조합이다. 날아오는 야구공에 맞아 코가 깨지고 피를 한바가지 쏟았다는 이 사람이 계속 야구를 하게 되는 힘, 이유가 궁금했다.
일단 메시지를 보냈다.
‘비함님, 혹시 이번 주말에 시간 괜찮으세요?’
그렇게 해서 우리는 토요일 오후에 상수역 근처 이리카페에서 만났다.
안녕하세요. 소개 부탁드려요.
저는 지금 15년째 같은 회사를 다니고 있고, 세일즈와 마케팅을 했었고, 그밖에 잡다한 취미생활을 하고 있는 이비함이라고 합니다.
우리 처음 만난게 2018년 초였던 거 같아요. 처음 만났을 때부터 비함님이 야구 이야기를 했었을 거에요. 멋있다고 생각했어요.
그 때가 한창 버닝할 때였어요. 2016년 여름에 시작했거든요. 지금 돌아보면 그 때는 뭘 알았나 싶은데 갈증이 극에 달해있었어요. 나 얼른 주전해야 해, 나 운동해야 해, 취미가 야구라고 얘길해야 해. (부상으로 쉬었던 시간 제외하면) 지금 3년차인데 올해는 (프로)야구를 좀 보니까 또 달라요. 매년 달라요.
야구는 어떻게 시작하게 된거에요?
2015년에 고대MBA를 갔는데 거기에 KMBA라고 야구팀이 있어요. 회사에서 가끔 워크샵가면 캐치볼을 했었는데 재밌더라구요. '가면 캐치볼 하고 재밌겠다’하고 들어간 거죠. 그러다 2016년에 전 해 회장하던 오빠가 저보고 회장을 하라는 거에요. 저밖에 할 사람이 없다고. '야구 몰라도 괜찮냐’고 했더니, 괜찮다고. 어차피 행사 준비하고 이런 거니까. 예를 들면 패밀리데이, 개강총회 같은. 한다고 했죠.
그럼 사회인 야구 선수 하기 전에 많이 배웠겠네요?
아무래도 오퍼레이션을 했으니까요. 운동장 예약같은. 서울 시내에는 학교 위주로 야구장이 많아요. 생각보다 비싸요. 두 시간에 30만원 정도. 시합구도 따로 있어서 사가야 하고. 직장인들이니 시간도 저녁 8시~10시 정도에 시작해서 보통 2시간 15분에서 2시간 30분 정도 하죠. 야구는 원래 9이닝까지 있지만 6이닝 정도 해요.
직접 야구를 해야겠다고 생각한 건 언제였어요?
일단 보다 보니까 바지를 사고 싶은 거에요. 운동화도 예쁜 것 같고. 옷을 입으면 소화가 될 것 같은 거에요. 아무도 안 시켰는데 동대문 야구장 근처에 있는 샵에 가서 바지를 샀어요. 그때 사람들이 ‘오, 잘 어울리는데~’ 하더라구요. 그 날 경기에서 기록원 언니가 나와서 시구하라고 해서 시구도 하고. 그런 게 재밌었죠. '게임 모르지만 배우면 되지 않을까?' 했죠. 진짜 몰라서 시작한 거에요. 알았으면 시작 안 했을 거에요.
이렇게 야구에 대한 비함님의 흥미가 높아가던 2016년 4월, 때마침 서울시야구소프트볼협회에서 여성야구단 히로인즈를 창단했다. 비함님은 그곳에 들어가서 본격적인 연습을 시작했다.
그렇게까지 빠지게 된 야구의 매력이 뭔가요?
매력이라기보다 그냥 성격의 문제 같은데. 전 어디가서 야구를 한다고 말을 못 하겠는 거에요. 오래하신 분들은 그래요. '니가 맨날 공 빠트려도 (그 위치에) 서있을 수 있으면 넌 우익수다.’라고.
근데 이건 팀스포츠거든요. 잘하는 건 당연한 거고 못하면 팀에 너무 많은 피해를 줘요. 내가 그게 미안하면 게임을 못해. 못하는 게 싫고 어디 가서 야구한다고 말 못하겠고. 왜냐면 늘 주전선수가 아니라는 생각이 있었으니까요. 후보를 빨리 탈피해야한다, 항상 벤치에 앉아서 구경만 하는 거 이제 그만 하고 싶다. 이게 컸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처음부터 너무 많은 욕심을 낸 거죠. 보통 이 정도는 기다려야 해요. 3년~5년 정도?
처음 비함님 알았을 때 플라이볼 잡다가 코 깨졌는데도 계속 야구한다고 해서 기억에 남았어요.
그 때 그만두면 나는 평생 트라우마에 시달릴 거라는 생각이 있었어요. '이런 자잘한 것들은 극복하면 되는 거야.'라고 생각했었어요.
플라이볼이 날아오면 눈으로 쫓으면서 충분히 기다리다가 잡아야 하는데 지금도 그 시간 동안 부들부들 숨이 가빠지는 게 느껴져요. 쉬운 건 공을 그냥 떨어뜨리는 거에요. 주우러 가면 되죠. 그런데 경기 중에는 상황이 어떻게 될 지 아무도 모르는 거니까. 이 한 구가 다음 게임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하면 그렇게 못하는 거죠.
야구에 한창 몰입했을 때는 일주일에 몇 번 연습했어요?
월,화,수,목에 레슨 가고 토,일은 여자야구단 가서 운동하고. 그러니까 주6일한거죠. 개인 레슨 두 번, 팀레슨 두 번에 주말엔 운동장에서 야구연습. 진짜 빡셌어요.
이렇게 기술훈련은 인텐시브하게 몇 년 하면 늘어야 할 것 같잖아요? 어느 정도는 늘어요. 그 전엔 한 번도 못 맞추던 공이 컨택이 돼요. 근데 땅볼만 치고 안타를 못쳐요. 조금 더 지나보면 알게 되요. 내가 힘이 부족하구나. 내가 코어 힘도 없고, 방망이를 버틸 힘이 없어서 끝까지 쓰로우를 못하는구나.
(근육을 단련하는) 운동을 해서 힘이 붙고 스피드가 나온다 싶으면 기술이 받아들여져요. 그 전에 아무리 해도 안 되던 것들이 몸이 좋아지면서 팡 치면 팡 날아가요. 이런 걸 경험하면, '몸을 만들어야 해.’ 이런 생각이 들죠. 다리 힘이 좋아지면 나는 똑같이 뛰는데 달리기가 빨라지고. 몸이 거짓말을 안 하는 거죠. 정신도 맑아져요. 아무 생각 없어지니까. '사운드 바디, 사운드 마인드'가 한동안 제 모토였어요.
플라이볼에 코가 깨졌던 건 비교적 작은 부상이었다. 코피가 나고 얼굴에 멍이 들어서 한동안 세수할 때 조심해야 하고, 한두달 정도 코를 풀 수 없는 정도. 야구를 시작하고 1년쯤 지났을 때 생긴 어깨 부상에서 회복하는 데에는 반 년이 걸렸다. 재활운동을 하면서 밤마다 어깨의 구조와 운동에 대해 공부했다. 회전근개, 와순 등 처음 들어보는 근육의 이름들이 비함님의 입에서 줄줄이 흘러나왔다.
공을 들어서 던지는 행위 자체가 어깨에 무리가 많이 가는 동작이기에 어깨가 버텨주는 힘을 만들기 위해선 근육을 강하게 만들어야 한다. 재활은 끝났지만 이제는 야구 퍼포먼스를 올리기 위해 비함님은 꾸준히 개인운동을 하고 있다. 그리고 투구 레슨 동안 80개의 공을 던지고 나면 어깨 근육을 풀어주기 위해 꼭 얼음찜질을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야구를 오래 할 수 없다는 걸 아니까.
그럼 그렇게 재활 끝내고 다시 히로인즈로 간거에요? 남자동호회는 어떻게 가게 되었어요?
몸이 좋아졌다 생각하고 돌아왔는데 마운드에 안 올려주는 거에요. 훈련할 땐 다같이 하니까 괜찮았어요. 잘 하든 못 하든. 그런데 게임에 나가는 건 스무 명 안쪽이에요. 계속 레귤러(선수)만 올라가죠. 쟤네는 재밌겠다, 신나겠다, 그런데 나는 뭐지? 혼자 계속 투구 레슨을 받으면서 내가 보기엔 좋아지는 게 느껴지는데 남들이 보기엔 미세한 차이인 거에요. 그리고 내가 게임을 안 나가봐서 게임 운용이 안 돼. 그건 게임해봐야 아는 건데. 이런 컨플릭트에 계속 스트레스를 받았어요.
그런데 저에겐 대안이 있었어요. 원래 있었던 그 대학원 남자야구팀에 사람이 많아지면 리그를 두 개 뛰기로 한 거에요. 그런데 새로 잡은 리그가 우리 집 근처. 이거는 한 게임도 안 빠지고 다 나갈 수 있겠더라고요. 근데 일요일이라 여자야구랑 겹쳐서 양자택일을 해야 했어요.
비함님한테서 느껴지는 일관된 경향이 있어요. '트라우마 같은 거 남기지 않겠다’ 랄까?
선발투수로 나갔던 경기 이야기도 그렇고요.
아, 그 날은 상황이 안 좋았죠. 어린이날이라 유부남들은 못 나올 거고, 잘하는 사람들이 다 유부남이니 제가 경기에 나갈 수 있겠다 싶었어요. 그 날은 어깨도 안 아팠어요. '내가 3실점 하면 내려올게.' 하고 올라갔어요. 우리가 먼저 공격이라 우리 팀 애들한테 '내가 선발인 거 알지? 얼마나 불안해. 그러니까 우리 최소 10점 내놓고 시작하자.'고 했는데 3점 냈어요. 이런 상태로 올라간 것도 요인 중 하나였을 거에요. 마음이 편한 상태로 올라간 건 아니었으니까.
(상대팀에선) '유니폼 입으면 다 선수야!’ 이런 식으로 나를 까면서 (타자를) 격려하더라구요. 제가 타자만 봐야하는데 이미 신경이 쓰이는 거에요. 그렇지만 떨리지는 않았어요. 이미 많이 올라가봤기 때문에. 그 전엔 후덜덜 떨면서 숨이 너무 차서 심호흡을 백 번 정도는 해야 했어요.
게임이 무서운 게 뭐냐면, (투수의) 공 한 두개 받아보다가 조금만 볼로 빠진다 싶으면 기다려요. 스트라이크 못 던지는 거 아니까. '니가 스트라이크 던질 수 있어?' 사람들이 이런 마음으로 기다리는 걸 아니까 더 안들어가요. 마음이 급해지고 손에 힘들어가고.
제일 짜증났던 건 상대팀 벤치에서 '그러니까 왜 투수같지도 않은 투수를 올려가지고!' 하는 소리가 들리는 거에요.(이보다 며칠 전 있었던 롯데-두산 야구 경기 중의 말싸움을 인용한 것 '투수에게 폭언했나… 두산·롯데 감독, 말싸움') 그 말이 너무 거슬려서 상대편 벤치를 쳐다봤더니, '그러니까 내가 언제 투수를 한다고 그랬어! 하하하!’하면서 자기 얘기인 척 하는 거죠. 그래서 심판한테 이야기했죠. 저런 이야길 한다고. 그 정도는 다 이야기할 수 있다고 하더라고요. 그 날 결국 3실점하고 1이닝 못 마치고 내려왔어요.
그 날 경기도 지긴 졌는데 저는 그 생각을 했어요. 제가 마운드에 올라가면 '어떨까?'하고 (다른 사람들이) 보는 게 있어요. 역시 여자라서 안 된다고 생각할 것 같은 거죠. 그래서 이걸 깨버려야겠다고 생각하는 것도 있고, '그러니 더 잘해야 하는구나.'하는 생각도 들었어요. 어쩔 수 없어요.
그 때 상대팀이 했던 말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세요?
그 정도로 이야기하는 팀은 사실 없어요. 제가 여태까지 경험해 본 건 아니에요. 물론 그들도 나 같은 투수가 본 적 없겠지만.
근데 그런 말을 듣는 게 중요한 건 참아서 한계를 계속 넓힐 수 있기 때문이에요. 나중엔 사람들이 수근덕거려도 신경 안 쓸 거 같아요. 그 정도 말도 들어봤으니까. 이런 리트머스가 필요해요.
오늘 오기 전에 유튜브에서 포수훈련 보는데 그 이야기를 하더라구요. 포수가 항상 1번으로 가져야할 마음가짐이 나쁜 볼이 언제든 올 수 있다는 것. 내가 원하는 볼만 오질 않으니까 나쁜 볼에 대한 대비. 똑같은 거에요.
오늘 내가 어떻게 경기를 하든 내가 여자니까 사람들이 약간 짜증을 낼 수 있어요. 금기시 되는 공간은 아니지만 그래도 남자들끼리 하는 게임에 뭔데 와가지고(라고 생각할 수 있겠죠). 충분히 그럴 수 있어서 저 자신도 민폐가 되는 게임을 하지 말아야겠다는 그런 마음이 굉장히 커요. 나가서 우리 팀 쪽팔리게는 하지 말자. 가오 살게 해야 된다.
뭐든지 어쨌든 멘탈훈련인 거 같아요. 흔들리지 않는 거.
그럼 내가 실력도 쌓고 신뢰도 더 쌓아서 언제까지는 이런 걸 해보고 싶다는 목표같은 거 있어요?
그렇게 멀리 잡진 않아요. 지금은 그냥 매 게임 주전선발로 나가는거, 그 정도인데. 투수도 타격을 해야하니까 타격도 올려야 하고. 팀에 큰 소리를 친다기보다 뭔가 서로 격려하고, 케미가 있으려면 최소한의 지분 확보를 해야하는 게 있어요.
여자야구에서는 제가 그게 불가능하다고 생각해서 나온 거고요. 내가 여기서 잔소리가 됐든 격려가 됐든 간식 사서 나르는 거 말곤 애들한테 도움 줄 수 있는 게 없겠더라고요. 그게 싫었어요. 여기서 나이에 맞게 내가 역할을 제대로 못할 거 같아. 나이를 무시 못 하는 게 (내가) 마흔 살 넘어서 나보다 운동능력도 높은 스무살 애들이랑 똑같이 경쟁할 시간도 능력도 안 되니 이게 평행경쟁인 거에요. 걔네들은 이미 게임을 나가기 시작했고요.
지금 남자팀은 나이가 어떻게 되는데요?
지금 팀은 나이가 다 많죠. 제가 나이가 많은 편이라도 더 많은 오빠들도 많고. (내가) 중간보다 좀 높겠다.
인터뷰는 2편으로 이어집니다.
https://brunch.co.kr/@piuda/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