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피움 Oct 09. 2019

Part2. 짱구와 이야기와 활발한 히키코모리

매직카펫 매거진 Vol.7 이진아 님(2)

진아님의 인터뷰는 ''좀더 나은 나'라는 예감'이어집니다.

https://brunch.co.kr/@piuda/29

고양이는 언제부터 키웠어요?


유기 고양이 임시보호(임보)를 한 번 해보면서 제가 고양이랑 잘 살 수 있는 사람인 것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동생이랑 사는데 동생도요. 그러다 우연하게 동생의 친구의 친구, 그러니까 진짜 모르는 사람이 구조했던 고양이가 임시보호차 간 곳에서 쫓겨날 위기에 처한 거에요. 그래서 급하다고 하니까 저랑 제 동생이 일단 데려왔어요. 그게  5-6년 전이었죠. 그때 이미 성묘였어요.


이름이 뭐에요?


짱구에요. 진짜 바꾸고 싶었어요. 처음 올 때부터 짱구였는데 고양이 이름이 짱구가 뭐야 이랬는데 결국 못 바꿨어요. 그래도 부르는 명칭은 다양해요. 예쁨아, 그릉거리면 그릉아, 이렇게.  


성묘로 데려와서 5~6년 지났으면 나이가 좀 있겠군요.


네. 사실 전 고양이를 통해 삶의 의미를 찾았다고 할 정도에요. 그전엔 미래에 대한 고민도 없고 삶의 의지도 높지 않았는데 고양이를 돌보면서 기쁨을 느끼고 고양이가 워낙 사람에게 애정을 주니까 저도 위안을 받고.  


그리고 얘는 아픈 고양이에요. 우리집에 왔는데 발에 뭔가 묻어 있고 냄새도 났어요. 씻기고 나서도 뭐가 생기더라고 알고보니 구내염이었어요. 그때부터 약도 먹고 수술도 했는데도 안 나아서 한 달에 한 번 약 받아와서 지금도 매일매일 먹고 있어요.


아직 안 친한 상태의 고양이를 그렇게 돌보았다니 대단한 것 같아요.


얘가 성격이 좋아서 그렇죠.


뭔가 케미가 있나봐요.


얘도 처음 보는 집에서 무서웠을 텐데 이틀째부터 제 곁에 와서 잤어요. 그렇게 서로 애정을 주고받으니까 계속 잘 지내게 되죠. 신기하게 정말 변함없이 예쁘고 사랑스러워요. 그 존재 자체로요.


동생도 자기가 어떤 존재한테 이렇게 사랑한다는 말을 한 적이 있었나 싶대요. 그런데 예쁘다, 사랑스럽다, 착하다, 잘했다 이런 말들을 하면서 본인에게도 긍정적인 효과들이 생기나봐요.  


짱구와 진아님

20대의 진아님은 더 우울했다고 했잖아요. 왜 우울했어요?


이유는 잘 모르겠는제 자존감이 엄청 낮았어요. 나 자신을 혐오했던 시기였어요. 지금도 내가 왜 이럴까 하는 순간이 있지만 그땐 내가 너무 싫었어요. 스스로가 내게 기대하는 이상이 너무 높았어요. 그 이상에 따라가지 못하는 내가 너무 싫은 게 컸고 그걸 극복하는 시기였던 거 같아요. 20대 내내.


그럼 그 과정에서 고양이와 오리엔티어링이 도움이 된 거네요?


고양이는 그래요. 오리엔티어링은 좀더 이후에 접했고요. 고양이는 나를 사랑해주는 존재이고 저를 구출해주는 느낌이에요. 저는 콘텐츠를 예전부터 좋아했는데 그래도 집에 있는게 좋은 느낌은 아니었어요. 밖에 있어도 집에 가고 싶다는 느낌은 없었어요.


지금은 내가 사랑하는 존재가 거기 있으니까 집에 가고 싶어요. 집에 빨리 가서 고양이랑 같이 쉬고 싶어요. 내 공간을 좋아하게 되었어요.


숨쉬듯 콘텐츠를 소비한댔죠? 어떤 재미를 얻고 있는 거에요?


예전엔 소설을 더 많이 읽었는데 이제는 영상을 더 많이 보는 것 같아요. 좋아하는 게 뭐냐고 물으면 저는 장르 가리지 않고 완성도 있는 것들. 이제까지와는 다른 무언가가 있거나 내용은 진부해도 형식에 다른 점이 있는 것, 이전과 다른 방향으로 메시지를 보여주는 것들을 좋아해요. 만드는 사람이 모양을 갖춰서 딱 완벽하게 만든 걸 감상하는 게 좋아요.


나도 그런 걸 하고 싶다는 생각도 있는 것 같아요. 부단한 노력이 필요하겠지만.


그럼 그런 쪽으로 더해보고 싶은 건 없어요?


해보고 싶은데 할 게 너무 많아서요.


인생은 기니까요. 나이 들어서도 할 수 있고.


옛날에 싸이월드에 이런 글 쓴 적 있어요. 내가 좋아하는 책, 영화, 스포츠, 공연, 이런 걸 아우를 수 있는 일을 하고 싶다고. 예전에 홈페이지를 만들어서 리뷰를 올리기도 했는데 면접에서 그 홈페이지를 플랫폼으로 만들고 싶다고 답한 적도 있어요. 이제는 그런 플랫폼이 너무 많죠.  


그런데 취향과 완성도를 생각해서 콘텐츠를 큐레이션해보고 싶어요. 진짜 자신있어요. 그런데 저랑 취향이 비슷한 사람이어야 하겠죠.


그럼 사업으로는 못 하겠는데요?


그렇지 않은 것까지 하려면 이게 왜 사람들에게 어필하는지를, 다양한 취향의 갈래를 더 공부해야하죠. 어느 정도 마이너한 취향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어필 할 수 있는 걸 만들 수 있을 것 같아요. 너무 어려운 이야기지만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사람들이랑 같이 다니는 걸 좋아해요?


저는 제가 사람들이랑 같이 다니는 걸 좋아하는 걸 몰랐어요. 스스로 엄청 내향적이라고 생각했거든요. 예전에 우울한 시절이 있기도 했고. 그런데 사람들과 있을 때 더 즐거워하는 것 같긴 해요. 그리고 이젠 혼자 여행가는 게 재미없는 것 같아요. 좋은 점도 있긴 한데 여행의 만족도를 생각해보면 같이 갔을 때 더 재미있는 것 같아요.


래형님이 이야기해줬어요. 진아님은  스스로를 설명할 때  '활발한 히키코모리’라고 한다고.


10년만에 만난 대학 동기가 해준 말이었어요. 10년 동안 변하지 않는 활발한 히키코모리라고. 너무 놀랐어요. 내가 그때도 활발했단 말이야? 스스로 우울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리고 이야기하다 보니 놀란 게 오리엔티어링도 혼자 하는 경기잖아요. 저는 컨트롤프릭(control freak)이라 제가 다 완전히 통제해야 해요. 오리엔티어링은 혼자 하는 거라 내가 하고싶은대로 하는  거니까 좋아하는 건가 싶네요.


제가 기숙사 생활을 오래해서 식판생활도 오래 했어요. 컨트롤을 좋아하다보니 식판도 제가 지배하는 거에요. 밥, 국, 반찬을 두고 마지막 밥 한 숟가락 때까지 이걸 완벽히 다 조절해서 싹 다 먹는 거죠. 마지막에 밥 한숟가락 먹고 내가 먹을 반찬 딱 남아있는 게 좋아요. 퍼펙트 바이트(perfect bite)라고 하죠.


피곤하게 사는 거죠. 굳이 왜 먹을 때까지 그래야 하나 머리 아플 때도 있어요. 월남쌈 먹으러 갔을 때는 죽을 뻔했어요.  


고난도 메뉴였겠어요.


같이 먹으면 괴롭거든요. 제일 쉬운 건 한 그릇 음식. 어려운 건 같이 먹는 거. 포기할 때도 있긴 해요. 친한 친구는 저 괴롭히려고 '여기 반찬 더 주세요' 그래요. 그럼 전 한숨 쉬면서 또 다 먹어요.


괴롭히기 쉬운 사람이네요. 너무 웃겨요.  


어릴 때부터 다 먹어야한다는 압박이 쎘나봐요. 같이 하는 것도 좋아요.


인터뷰 전 좋아하는 책을 추천해달라고 부탁했었다. 진아님의 <오늘 참 예쁜 것을 보았네>라는 동화책을 들고와주었다.


통제에 대해 생각해보면 커리어야말로 그런 통제력을 잘 발휘하고 싶은 분야일 것 같아요. 출판사, 데이터 분야의 회사를 거쳐서 이번에는 스타트업. 이렇게 보면 커리어에서 있어거도 고민이 많았을 것 같아요.


그런데 그렇게 고민하지는 않았어요. 물 흐르듯이 간 느낌이에요. 저는 사실 대기업에 안 맞는 사람이에요. 10명 내외의 작은 회사를 다니면서 자유롭게 일하는 걸 더 좋아하고 더 잘 맞았던 것 같아요. 그런데 하고 싶은 분야가 아니라서 고민을 했죠.  


아주 어릴 때는 프로그래머가 꿈이었어요. 국문과를 가면서 멀어졌지만 내 홈페이지를 만들기도 했었고 나의 앱, 게임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도 했어요. 기술이 없으니 IT업계에서 기획이라도 하고 싶었어요. 그 커리어를 가지는 게 어렵다는 생각은 있는데 안되면 혼자라도 하면 된다고 생각하고 있긴 해요.


그럼 그런 생각을 가지고 계속 이직을 했던 거에요?


첫 이직 땐 그렇게 하면 더 가까워지지 않을까 해서 옮긴 거긴 해요. 지금 다니는 곳에 들어가면서 서비스 운영을 경험하는게 앞으로 내가 뭘 만들거나 해보고 싶은 걸 하는데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했었어요. 그런데 좀 막연하긴 하죠. 치밀하진 않아요.


일단 해봐요.


네. 그런 마음이에요. 그리고 전 뭘 해도 먹고 살 수는 있다는 생각은 있어요. 이번에 8개월 쉬는 동안 부모님이 가끔 전화해서 구직은 하냐고 묻는데 어떻게든 먹고는 산다고 답하니까 그런 자신감은 대체 어디서 나오냐고 하더라구요.  


더 풍족한 경제적 여유는 아니어도 내가 좋아하는 걸 하면서 살 수 있는 정도의 돈은 벌 수 있다는 자신감. 먹고 살 수만 있으면 되지 이런 생각. 아까 말했던 것처럼 콘텐츠이든 서비스이든  뭔가 만들어보고 싶은 생각이 있어요.


그 만들고 싶은 것이 ‘내 것’이었으면 좋겠어요? 내 걸 만들고 싶은 거에요?


꼭 내 것은 아니어도 되고 내가 하고 싶은 것이면 되요.


이미 존재하는 서비스가 있다면 그것도?


네. 그래서 제가 지원한 적도 있어요. 잘 되진 않았지만. 사실 내것이 되면 내가 가져야할 책임감과 할 것도 많고 힘겨운 길이란 건 보기도 해서 그게 메인 잡이 안될 수도 있지만요.  


지금은 오리엔티어링을 지속하면서 살 수 있으면 돼요. 이번 직장을 구할 땐 그게 중요했어요. 대회운영 업무에 시간을 할애해도 된다는 걸 협의하고 들어갔어요. 그거 아니었음 일 안하고 아르바이트를 했을 거에요.


오리엔티어링 운영은 대회가 아니어도 계속 할 거에요. 그 경험을 쌓아서 국가대표는 모르겠지만 운영에 있어선 더 훌륭한 사람이 될 수도 있어요.


진아님의 인터뷰는 다음으로 이어집니다.

https://brunch.co.kr/@piuda/31

매거진의 이전글 Part3. 나를 더 좋아하고 싶어요. 좋아할 거에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