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직카펫 매거진 Vol.7 이진아 님(3)
진아님의 인터뷰는 '짱구와 이야기와 활발한 히키코모리'에서 이어집니다.
https://brunch.co.kr/@piuda/30
진아님이 뽑은 세가지 키워드를 각각 한 명의 이진아라고 상상해볼까요? 오리엔티어링을 하는 진아님, 고양이와 함께 있는 진아님, 콘텐츠를 보는 진아님. 각각의 진아님은 본인에게 어떤 친구인가요?
오리엔티어링은 절 건강하게 해주는 친구에요. 재미도 재미인데 나이가 들면서 점점 운동의 필요성을 느끼는데 저는 오리엔티어링으로 동기부여를 받는 거죠. 저는 제가 일주일에 세 번씩 5km를 달릴 거라고 생각 못 했어요.
내가 잘 할 수 있는 분야가 뭔지를 보여주는 멋있는 친구이기도 해요. 제가 대회 운영을 하는 걸 좋아하고 잘할 수 있을 줄 몰랐거든요.
오리엔티어링 내에서 여러 분야를 시도해 볼 수 있었군요?
딴 데서는 이렇게 쉽게 내가 뭘 운영해볼 수 있는 게 많지 않은데 오리엔티어링은 시도하는 사람이 별로 없다보니 제가 의지만 있다면 쉽게 접근해서 해볼 수 있죠. 저에게 새로운 경험과 건강을 주는 친구에요.
고양이와 함께 있는 진아님은요?
고양이와 함께 있는 저는 매우 사랑스러운 사람이에요. 저는 애교 부릴 줄 모르는 사람인데 고양이한테는 애교를 부려요. 내가 사랑스러운 사람인 걸 알게 해주는 친구.
콘텐츠를 보는 저는 냉철한 비평가. 취향이 워낙 확고하기 때문에. 비평과 만드는 건 또 다른 것이라 콘텐츠 만드는 걸 잘 할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을 하긴 해요. 내가 시도를 해봐야 알겠지만.
그럼 현재로서는 오리엔티어링, 고양이, 콘텐츠. 이렇게 세 가지가 중심 키워드이긴 하지만 미래를 고려했을 때는 뭔가를 만들고 싶은 나도 들어가면 좋겠네요.
네. 저도 이야기를 하다보니 그런 것 같아요. 콘텐츠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그런 게 다 있는 것 같아요.
오리엔티어링도 그렇고 굳이 안해도 되잖아요. 제가 지금까지 만난 인터뷰이들을 보면 그들이 하는 활동들이 꼭 해야하는 것들은 아닌데 다들 열심히 하더란 말이죠. 왜 다들 그렇게 열심히 할까요?
인생에 있어 그렇게 꼭 해야 하는 건 없는 거 같아요. 뭐든지. 다들 그렇게 생각하고 의미 부여를 하는 거지. 먹고 사는 일에 있어서도 그 일이 아니어도 다른 일 해도 먹고 사는 데는 지장이 없어요. 의미 부여를 떼어내면 그게 아니라 어떤 일도 다 할 수 있어요.
그러면 의미부여를 하는 것과 하지 않는 것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예전에 제가 이상이 높았다고 했잖아요. 이게 아니면 안된다고 생각할 때 생기는 좌절감이 있었던 말이에요. 그런데 저는 ‘이게 아니어도 된다'를 가지게 되면서 조금 나아졌어요.
'이거여야만 한다'에서 ‘이것 말고 저것도 있다'가 되면서 제 자신에게 관대해지고 나를 더 좋아하게 되고. 이게 아닌 다른 걸 할 수 있는 나도 있으니까 이걸 더 좋아하게 되고. 오리엔티어링 아니어도 되지만 이걸 하면 더 재미있으니까.
의미를 얼마나 부여할 것인가를 표현해본다면 신념과 무의미 사이의 스펙트럼일 것 같아요. 어느 쪽이든 끝부분에 가까울수록 괴로움이 있을 것 같고요. 그런데 진아님은 그 무게중심을 찾은 거네요?
그 의미부여를 하는게 다른 사람의 시선, 정해진 트랙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학생들 공부도 안타까운게 이게 아니면 안된다고 이걸 벗어나면 끝난다고 생각하는게 문제라고 생각하거든요. 이게 아니어도 된다는 여러가지 삶의 방식을 보여주게 된다면 아이들도 좀 편안해지지 않을까요?
돈을 더 번다고 꼭 행복한 건 아니고 그 길과 안 맞는 사람들도 분명 있고 이게 아닌 길을 찾으려면 주변의 시선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사회 경험을 시작하는 나이가 좀더 빨라지면 좋을 것 같아요. 경험해봐야 아는 것 같아요.
그래서 저 진짜 억울한 게 오리엔티어링을 왜 늦게 알아가지고….제가 요즘 무릎이 아픈데 일찍 시작했으면 무릎 아픈 것도 덜하지 않았을까? 아프지 않았을 때면 더 잘하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이 들어요.
국가대표에도 한 발 더 다가가고요.
그렇죠. 더 나아가서 초등학생, 중학생 때 알았으면 더 잘할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생각이 있어요. 그 억울함이 커요. 이런 스포츠는 어릴 때부터 하면 또 다르니까요. 어릴 때의 저는 소극적인 사람이었고 콘텐츠 소비를 하느라 바빴는데 다른 경험도 할 수 있지 않았을까.
저도 요즘 그런 생각을 해요. 왜 뭐든 이렇게 늦게 알게 되나 싶어요.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이제라도 알았으니 됐다'하는 생각도 있긴 해요. 또 그때의 나는 그때의 나로서 최선을 다해서 살았을 거에요. 지금 더 열심히 사는 사람이 된 것도 그 때 열심히 했던 내가 있으니까.
지금 오리엔티어링이 아니라도 다른 기회가 있는 어린 친구들이 그걸 모르고 사는게 아쉬워요 그런데 웃긴 건 지금 오리엔티어링 하는 어린 친구들은 별로 행복하지 않아요. 엄마가 시켜서 하거든요.(웃음)
엄마들이 오리엔티어링을 좋아하나봐요?
오리엔티어링 하시는 분들은 다 좋아하니까. 우리 아이도 더 잘했으면 하시죠.
저는 어릴 때 억지로라도 많은 경험을 해보는 건 좋은 것 같아요.
맞아요. 놀란 게 왠만한 서울 사람보다 제가 더 서울을 더 많이 돌아다녔더라고요. 오리엔티어링에 정착하기 전까지 목공, 맛집모임, 요리, 퀼트도 하면서 엄청 시도를 많이 했어요.
퀼트요?
바느질 진짜 재미있어요. 나중에 퀼트로 벌어먹고 살 수 있지 않을까 할 정도로 진짜 재미있게 했어요. 바느질하면 시간 가는 줄 몰라요. 바느질 하다 새벽 두세시가 된 적도 있어요.
10년 후의 본인이 어떤 모습이면 좋겠어요?
지금보다 저를 더 좋아했으면 좋겠어요. 평생의 숙원이랄까? 최근에 다른 사람이랑 이야기 하다가 알게 된 게 자기가 누구인지 알기도 어렵고 자신을 좋아하는 건 더 어렵다는 거에요.
저도 예전보다는 나아졌고 지금은 저 자신을 많이 좋아하는 편이긴 한데 지금보다 더 좋아했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아마 좋아하고 있을 거에요. 그땐 내가 좋아하는 일을 더 많이 하고 있을 거니까.
그런 식으로 계속 뭔가를 찾아서 시도했던 것 자체가 내가 좋아하는 걸 찾기 위한 여정이었던 것 같아요. 그때는 더 잘 찾아서 하고 있을 거에요. 특히 일에 있어서는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일을 위해서 늦었지만 탐색하고 있고요. 그리고 아마 하고 있을 거에요. 왜냐면 저는 10년 전보다 더 좋아하는 걸 찾아서 하고 있으니까.
인터뷰를 정리하면서 발견한 신기한 점이 있다. 진아님은 '하고 싶어요'라고 말하고 바로 이어서 '할 거에요.'라고 말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하고 싶다.'로만 끝내지 않겠다는 자기다짐 같았다.
그 다짐이 내게 알찬 단단함으로 다가온 것이고 덕분에 나 역시 10년 후의 진아님이 지금보다 더 자신을 좋아하며 즐겁게 살 게 분명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분명 그럴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