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땐뽀걸즈>를 보는 내내 뭉클뭉클 거렸습니다. 청춘들이 소재가 되는 영화만 보면 무조건 반사처럼 뭉클거
립니다.
의자에 앉아 있는 것 자체가 고문인, 거제여상 열여덟 청춘들이 그나마 그들을 위로해 줄 수 있는 게 댄스 동아리입니다. 대학이 아니면 외면당하거나 무시당하기 쉬워 게토처럼 존재하는 실업계 친구들의 형편이 보여서 그래서 더 뭉클거렸는가 봅니다. 덩달아 처음 설립 된 국립고등학교 1학년 시절동아리 활동 시간이 떠올랐습니다. 명문고등학교를 만들기 위해 새학기부터 30명의 영재 특공대들에게 명문대학 진학이라는 미션을 내렸고 자율학습(?)은 밤 10시가 기본. 방학마저도 명문학교를 위해 차압 당했던 가혹한 시간이었습니다. 동아리는 시를 배우고 감상하는 운문반을 선택했습니다. ‘해바리기 비명’의 함형수 시인 그리고 ‘목계장터’의 신경림 시인, 교과서에서 만날 수 없었던 시들을 만나고 담당 국어 선생님의 멋드러진 해설에 푹 빠졌던 시간이었습니다. 아직도 고등학교는 추억보다 악몽에 가까워서 찾아 본 적 없지만 그나마 알량하게 남아 있는 사름파리 조각 같은 추억입니다.
다큐 마지막까지 유지하는 색조는 순정만화 톤입니다. 공영방송의 윤리적인 테두리에서 다루다 보니 어쩌면 학생들의 나른한 현실을 사실적인 톤으로 담아내기는 어려웠을 겁니다. 방송용 다큐가 먼저 나오고 반응이 좋아서 극장용 영화로 만들었습니다.
수면 시간으로 전락 된 수업과 부모가 없어 동생과 사는 현빈이를 위로하는 건 술과 담배, 그리고 조선산업의 몰락으로 다시 새로운 일터를 준비하는 가장의 절박한 사연이 있습니다. 독립영화 다큐가 사실적인 화면으로 조악한 현실을 더 강조하는 화법을 사용한다면 공영방송은 차마 적나라한 현실을 시청자들에게 던져 놓고 가기가 쉽지 않았을 겁니다. 그리고 졸업장을 위해 다니는 학교에서 댄스 동아리 친구들에겐 위로의 공간이자 휴식처입니다. 다큐의 화사한 톤은 등장인물 친구들에게는 수긍이 가는 설정입니다. 등장인물들의 사연만으로도 다큐는 <님아 그 강을 건너지마오> 정도의 신파를 만들어 낼 수 있을텐데 카메라와 편집은 적당하게 거리를 유지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눈물은 마르지 않습니다. 만일 신파를 위해 사연을 더 찐하게 요구했다면 여운은 남지 않았을 겁니다. 등장인물들을 동정받게 대상화 하지 않는 연출자의 미덕이 돋보입니다.
동아리 지도자인 이규호 선생님에 대한 학생들의 반응은 평소 모습을 반추하게 합니다. 카메라와 편집으로도 감출 수 없는 표정 속에서 이규호 선생님의 학생들에 대한 애정을 볼 수 있었습니다.
우리 청춘들이 보여주는 몸의 표현은 마음을 살펴볼 수 있는 증거입니다. 간디학교 시절 가장 인기 있는 동아리는 ‘댄스 동아리’였습니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동아리 반장은 인터넷을 통해서 춤을 배워 후배들에게 춤을 가르쳤습니다. 기말축제는 무대를 서로 차지하려는 치열한 각축장이 됩니다. 그리고 축제의 무대에 등장하는 친구들을 확인하면서 친구들의 변화를 확인합니다. 3학년 1학기까지 도서관에만 콕 박혀 있던 친구가 졸업 전 마지막 축제 무대에 올라 춤 실력을 보여주는 반전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특히 춤을 힘들어하는 남학생들은 졸업 전 마지막 축제에는 반드시 춤공연을 하고 가는 게 통과의례가 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 친구들이 도서관에 앉아 있는 것보다 강당에서 춤 연습을 하거나 혹은 운동장에서 땀을 뻘뻘 흘리면서 공을 차는 게 더 보기 좋습니다.
다시 <땐뽀걸즈>로 돌아와서 우리 청춘들의 등장만으로도 가슴이 뭉클한 건 아직도 불리한 조건의 청춘들의 현실과 여전한 일방통행의 계몽식 태도 여전히 그들의 발언이 통하지 않는 약자인 그들의 처지가 어른거렸기 때문일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