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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아시스 Sep 23. 2024

아직도 연애금지를 하는 학교가 있다구?

    

모두가 보지 못하는 걸 보여주는 게 예술가의 미덕이다.

매몰된 갱도나 전염병이나 폭설로 고립된 마을. 혹은 그들만의 까칠한 계급을 형성하는 바람에 아무도 접근하기 싫어하고 스스로 고립되어 사장되고 마는, 계급의 몰락을 보고 싶은 혹은 조롱하고 싶은 작가의 상상력이 재미있다. 인간의 모습을 보여주려는 장치이면서 멋진 알레고리 

                                                                                -<절멸의 천사> 왓챠에 실은 영화 소감 


   

 요르고 란티모스 감독의 <더 랍스터>는 기괴한 영화다. 란티모스 감독의 영화에 나오는 인물들은 부조리에 내 던져진 존재들이다. 실존적인 상황에 직면해 있다. 기승전결 구조의 문법이 아니라 기승전에서 끝난다. 마무리도 찜찜하다. 혹은 공포스럽기조차 하다. <킬링 디어> 의 가족은 소년의 무자비한 저주를 방어했지만 후련하지 않다. 저주를 방어하기 위해 가족 간에 벌어진 마음의 전투는 트라우마로 남아 있다. <송곳니>의 주인공들은 부모들의 강박으로 쌓아 놓은 집을 벗어났지만, 과연 적응할 수 있을까?

     란티모스 감독이 오마주 했을 법한 거장 ‘루이스 부뉘엘’의 영화가 그랬다. 영화 <절멸의 천사>는 상당히 매혹적인 영화지만 기이한 물음표로 가득한 영화다. 어느 날 중산층 귀족들이 초대를 받아 대저택으로 모인다. 하인들은 손님들을 접대하기 위해 부지런하게 음식을 준비한다. 그리고 각자의 이유를 대면서 하인들은 서서히 대저택을 빠져나간다. 파티가 끝날 때쯤 각자 집으로 돌아가야 하는데 거실 밖을 나가지 못한다. 거실과 현관으로 이어지는 끝쯤에 가서 핑계를 대면서 소파에 주저앉는다. 하인들이 없는 저택에서 배고픈 그들이 할 수 있는 거라곤 벽지를 뜯어 먹거나 모닥불을 피우고 거위를 잡아먹는다. 그들은 도통 나갈 생각이 없어 보인다.

 어느 가을날 대안학교 교사들이 모여서 회의를 준비 중이었다. 한 교사가 초조한 표정이었다. 이유인, 즉 연애를 금지하는 학교 규칙에 반기를 들고 연애 규칙에 관해 학생들이 전체 투표를 제안했고 회의하는 중에 투표가 진행 중이라고 한다. 교사의 딸이 학교에 다니는데 밤마다 찬반으로 나누어 설전을 벌였다고 한다. 물론 교사는 반대 입장이다. 결국 투표는 1표 차이로 부결이 되었고 학생들은 오랫동안 연애 금지를 학칙으로 인정해야 했다.

간디 중학교 시절 고등학교 진로 선택할 때마다 연애 금지를 교칙으로 하는 학교를 볼 때마다 이상한 학교라고 생각했었는데 놀랍게도 일부의 현상이 아니었다. 연애 금지 학교에 가서 연애하다가 제적당한 친구도 있었다. 

'참교육을 위한 전국학부모회'가 지난 2018년 전국 200개 중·고등학교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143개(71.5%) 학교에서 이성 교제 등 인간관계를 제한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학생들이 화장하는 모습도 심심찮게 볼 수 있는 요즘 사실상 과반의 학교에서 이성 교제를 제한하고 있는 것. 

                                                 (한경닷컴에서 일부 인용)     

      영화 <더 랍스터> 두 개의 극단적인 세계를 보여주는 영화다. 솔로를 용납하지 않는 파시즘과     커플을 허용하지 않는 파시즘의 대결이 펼쳐진다. 다소 과장 된 설정 같지만, 현실의 알레고리로 볼 수 있는 장면들이 많다. 연인과 헤어진 주인공은 한적한 숲속의 호텔로 가서 45일 동안 커플을 찾아야 한다. 실패하면 동물로 변한다. 호텔의 데스크에서 접수하면서 주인공이 선택한 동물이 ‘랍스터’다. 공교롭게도 랍스터는 암수가 공존하는 자웅동체다. 커플이 되지 못하면 세 가지 선택이 있다. 동물이 되거나 숲속으로 도망가거나 숲속으로 도망간 도망자들을 사냥해서 잡아 오면 하루가 연장된다. 호텔 운영진들은 솔로들이 커플이 될 수 있도록 커플로 사는 즐거움을 담은 연극을 보여주기도 하고 커플이 된 이들이 헤어질 기미가 보일 경우엔 자녀를 입양시킨다. 주인공은 우여곡절 끝에 커플이 되긴 하지만 동물이 되는 걸 피하기 위한 속임수였다. 결국 들키는 바람에 숲속으로 도망간다. 절대로 연애를 허용하지 않는 숲속의 세계에서 주인공은 맘에 드는 상대를 만난다. 

영어로 감정은 ‘흐른다’라는 라틴어에서 기원한다. 이 감정을 댐처럼 막는 착상은 도대체 어디서 생겨난 걸까? 미안하지만 학교만이 아니라 사내 연애를 금지하는 회사들도 제법 있었다. 연애는 산업화 시대에는 불순한 마음의 화학작용이었다. <더 랍스터>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연애가 허용되지 않는 숲속 장면이다. 이들은 음악을 들어도 이어폰을 통해 혼자서 춤을 춘다. 이런 와중에도 사랑의 신호를 보낼 수밖에 없는 주인공은 수신호를 만들어 서로 교환한다.

 회의가 끝난 후 교사에게 <더 랍스터>를 추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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