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감한 이들에게 <디 아워스>는 상처를 준다. 상처는 전염된다. 그 상처는 겪어볼 만하다. 거기서 새로 살이 돋아날 것이다. -‘디 아워스’ 영원에 맞먹는 하루<필름 2.0 김영진>
<디 아워스>에는 1920년대 영국의 버지니아 울프 1950년 미국 중산층 가정의 주부 로라 그리고 현재 시점의 클라리사의 하루를 담은 영화다.
수면과 성격의 함수 관계는 간단하다. 충분한 수면을 취하는 사람에게서 예민한 사람을 찾아보기는 힘들다. 불면은 예민한 자의식을 드러낸다. 버지니아 울프는 예민한 자의식을 보여주는 아이콘이다. 나는 다행히 울프보다는 둔감해서 인생을 적당히 참아낼 만한 오기가 있다. 불면증 환자처럼, 그녀의 시선은 정확하지 않고 몰골은 늘 부스스하다. 두꺼운 생을 참아내기엔 그녀의 자의식은 너무나 날카로운 송곳 같다. 전전반측의 새벽. ‘디 아워스’는 불면의 시간 속에 살아가는 여인들을 보여준다. 시퍼렇게 두 눈 뜨고 어둠을 응시하는 세여인의 고단함을 보여준다. 하지만 나는 불면을 극복하는 방법을 터득하고 말았다. 잠자리에서 뒹굴지 말고 과감하게 이불을 걷어차고 나와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의 가지들을 과감하게 잘라낸다. 모니터 앞에 앉아서, 하지만 세 여주인공은 꿋꿋이 불면의 세월을 응시한다.
<디 아워스>를 보고 난 후 정리하고 싶었지만, 생각이 제대로 응고되기 전에 정리한다면 이 작품에 모독이라는 생각이 들어 차일피일 미루었다. 상처에 관한 이야기. 둔감한 남자들이 들여다보면 거북해지고 혹은 무딘 일상을 신경질적으로 만들 것 같아 함께 권해서 보기 어려운 영화. 여자들의 인구에 회자되었던 영화. 그래서‘남자들은 잘 모를 거야’라고 여자들이 읊조리라던, 영화 모임 후배는 4번씩이나 봤는데도 아무렇지 않게 눈물을 흘린다. 내가 아는 여자들은 슬픔을 ‘토할 것 같다’라는 표현을 한다. 미하일 하네케 감독의 <피아니스트>에서도 비슷한 반응이 나온다.
이 영화를 보고 난 후 기형도 시집이 떠 오른 건 우연이 아니었다. 무더운 땡볕에 사나흘 방치해 둬 시들어버린 퍼런 무청 같았던, 스무 살이 떠올랐다. 기형도는 희망보다는 절망을 베고 자게 하던 목침이었다. ‘입속에 악착같이 매달린 검은 잎’이 너무 두려웠다. 그의 상처는 전염되어 수많은 아류를 만들어 내었고 나는 다행히 그를 따르지 않고 스무 살을 버티었다. 스무 살에서 보던 삶은 너무 비루해 보여 삶과 죽음의 경계를 ‘늙은 개’마냥 떠돌았다. 기형도보다 더 절망적인 시인이 아니 시집이 있을까? 있긴 있었다. 제스츄어에 불과 한, 폼만 잡고 있는, 그런 노래를 부르다가 혹은 요절한 이들도 있구. 지금은 언제 그랬냐는 듯 싹 잡아떼고 개그맨 뺨치는 글발을 휘두르는 이들도 있다. 기형도가 스무 살을 힘들게 했지만, 그 절망이 발 구름판이 되어 역으로 희망을 찾게 해 주었다. 새살이 돋아났다.
‘디 아워스’는 내 스무 살의 내러티브와 너무 닮았다. 영화에서 보여주는 여인들은 자기 내부를 들여다보지 못한 채, 아줌마로서 혹은 철수 엄마로 혹은 안사람으로 살아왔던 이들의 질곡을 뭉뚱그려 놓은 뭉크의 ‘절규’와 같은 살풍경이다. 나는 표현할 말을 찾지 못했고 몇 개월이 지난 후에야 잠을 뒤로 미루고 모니터 앞에서 고해성사한다. 여성의 상처를 보여준 어떤 영화에서도 이 정도의 설득력은 보여주지 못했다. 너무 과장이 심한가? <안토니아스 라인>과 <조용한 열정> 정도는 인정한다. 배설의 효과를 노리거나 혹은 가학과 자학을 통해 억지로 가해자의 죄의식을 부추겼다. 3명의 여인은 짜고 치는 고스톱처럼 상처를 전염시키지만, 새살까지 돋게 만든다. 병 주고 약주고 식이다. 버지니아 울프는 죽음을 통해서 고통스러운 자의식의 세계에 마침표를 찍었다면 로라는 여자들의 자의식을 억압하는 실체인 집을 나간다. (입센 <인형의 집>의 주인공도 노라다.)
최근에 본 영화 <조용한 열정>은 <디 아워스> 에 맘먹는 먹먹함을 안겨준 영화다. 평생 독신으로 마침표를 찍은 시인 ‘에밀리 디킨스’의 이야기다. 영화를 보고 마주친 데쟈뷰는 ‘허난설헌’이였다. 영화에서는 버지니아 울프는 표정과 은유적인 대사로 여인의 질곡을 표현했다면 시인 디킨슨은 남성 젠더사회가 만들어 낸 야만의 세상에 직설화법으로 맞선다. 하지만 온전히 풀리지 못한 분노는 시인의 몸을 망가뜨렸다.
버지니아 울프의 에세이 <3기니>에서 울프는 가부장제와 전쟁을 일으키는 독재자를 동일선상에 배치한다. 남성 호르몬의 과다분비로 발생한 1차 세계대전의 폭풍우를 겪고 난 미친 시대였다. <디 아워스>에서 버지니아 울프의 내면을 읽는데 어려웠다면 에세이 <3기니>를 참조하면 좋다.
“전쟁은 남성의 유희이며, 살육 기계도 성별을 갖고 있는바 그것도 바로 남성이라는 성을 가지고 있다는 데 초점을 맞추는 독창성을 보여줬다.” <3기니>에서 인용
*연기와 연출이 <디 아워스>의 톤을 지배하지만 아울러 필립 글래스의 음악도 빼놓을 수 없다. 말수가 적은 세배우의 내면을 이야기하는 건 배우의 얼굴과 음악이었다.
*글의 2/3는 2006년의 글을 다시 재정리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