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만 들어도 권위가 느껴지는 연기파 배우들이 줄줄이 나온다. 누구나 인정하는 배우 ‘숀 펜’ <데드맨 워킹>의 감독 ‘팀 로빈스’ 그리고 <일급 살인>의 배우 ‘케빈 베이컨’. 어린 시절 남자들에게 성폭행을 당한 ‘팀 로빈스’의 연기가 인상적이다. 몹시 큰 키를 가진 그의 어깨는 기울어져 있고 성폭행 이후 이제는 정신적으로 자라지 않은 어른의 모습을 우울하게 연기한다. 그는 이미 그날 이후로 살아 있는 게 아니었다. 그날 그 현장에서 3명의 친구가 있었는데 ‘팀 로빈스’만이 두 남자의 차에 실려 간다. 그날 이후 세 친구의 사이는 멀어진다.
미국을 지탱하는 근간은 프로테스탄티즘과 가족이다. 이혼율이 많은 나라임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가족은 아주 튼튼한 성채다. 그리고 인디언과 야만의 공격에 끔쩍하지 않는 독수리 요새였다. 영화 <미스틱 리버>는 가족 안에서는 위대한 아버지이자 어머니였지만 이웃들에게는 착취자이자 억압자인 가족의 두 얼굴을 보여준다. 더 나가서는 테러나 전쟁에서 안전지대이면서 다른 나라들을 테러와 대리전쟁의 희생물로 만드는 미국의 모습을 반추하게 한다. 9.11 테러는 미국의 갑질에 분노한 이웃들이 미국의 아버지들을 공격한 놀라운 사건이었다. 아버지들의 자존심은 구겨졌고 그 자존심을 위해 아버지들이 전쟁에 나섰다. <미스틱 리버>의 마지막 장면에서 남편을 살인자로 알고 있는 아내지만 그를 ‘당신은 우리의 왕’이라며 껴안는다. 전쟁을 마치고 돌아온 피 묻은 아버지들은 다시 가족의 왕이 되었다. 유태인을 가스실로 보내며 임무 수행을 했던 독일 장교는 집에 돌아와서는 가장 인자한 아버지였다.
데이빗 크로넨버그의 영화 <폭력의 역사>는 <미스틱 리버>와 대척점에 있는 영화다. 한때 마피아의 에이스였지만 손을 씻고 조용한 소읍에서 지내던 주인공은 다시 폭력의 소용돌이에 휘말린다. 급기야는 자기 의지와 상관없이 피를 묻히고 집으로 돌아온다. 헐리우드의 기본 공식대로 돌아간다면, <미스틱 리버> 같았으면 피를 묻히고 돌아온 아버지를 향해 불문곡직하고 ‘우리의 왕’이라고 박수를 줬을 테지만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피 묻은 아버지에 대해 가족들이 복잡미묘한 표정으로 식사를 하며 끝난다. 거장 데이빗 크로넨버그는 <미스틱 리버>의 클린트 이스트우드처럼 미국 가족의 신화에 대해 어퍼컷을 날린다. 가족의 울타리 안과 밖 상관없이 피 묻은 아버지는 살인자다. 미국은 지나치게 팔이 안으로 굽어서 약한 나라들을 괴롭히고도 양심의 가책 없이 뻔뻔하게 버텨왔다.
‘도시의 아파트를 배경으로 하는 학교에는 평수를 기준으로 분류되는 아이들만의 카스트가 존재한다.’ 서민형 임대 아파트에 사시는 어떤 어머니가 분개하는 걸 보면서 상식이 지배하지 않는, 가족이란 울타리에서 자라는 아이들은 끔찍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1) 유승준의 장인으로 잘 알려진 음성 성모병원 원장의 자살은 씁쓸한 구석이 있다. 정선 카지노에서 만든 터무니없는 빚들이라지도 미안한 구석이 있어 그랬을 거다. 물론 가족들에게 떠넘겨질 빚을 막기 위한 살신성인의 위대한 희생이지만 몇 달째 임금과 퇴직금을 못 받는 고향 후배 노조위원장은 식물인간처럼 되어 있는 병원을 아직도 출근하고 있다.
영화의 처음 장면과 끝 장면에 유유히 흐르는 강물이 영화를 품고 있다. 강물은 아픈 사람들이나 비겁한 사람들이나 못된 사람들조차 뭉뚱그려 버리는 역사의 침묵을 보여주는 것 같다. 물론 사필귀정이라고들 하지만, 길게 바라보면 그럴 것도 같지만, 아직도 기득권 쪽에 서 있는 것만 같은 역사의 강물을 바라보면, 사필귀정을 기다리기엔 기분이 찜찜하다.
2) 事必歸正(사필귀정)에 대한 안 좋은 추억이 하나 있다. 월드 텔레콤 노동자들이 일일 호프를 한 적이 있었다. 동생이 그곳에서 일하고 있었고 한창 노조를 만드는 때였다. 맥주 몇 두잔 걸치고 나오면서 나는 방명록에 ‘事必歸正을 믿습니다.’라고 쓰고 나온 적이 있다. 그 이후 무능한 경영진들이 자기들의 가족을 위해 몇백 명의 노동자를 거리를 내몰았고 공장 3년 차였던 큰 형수는 설날에도 출근해서 무능하고 잔혹한 경영진의 자비한 손길을 기다렸다.
후기
음성병원 노조위원장이었던 후배는 청주 작은 정형외과에서 일하고 있고, 월드 텔레콤 노조원이었던 여동생은 회사를 그만둔 뒤 회사의 압박에 스트레스를 받으며 살다가 지금은 제약회사에서 일하고 있다. 물론 큰 형수도 평온(?)하게 살고 있다.
1) 과 2)의 사례는 2007년의 이야기지만 2021년에도 오토리버스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져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