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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 뽜이아!! (You’re fired)

by 오아시스

평소 좋아하던 감독 베넷 밀러의 초기작품 <머니볼>을 다시 봤다. 메이저리그의 스카우트 세계를 냉정한 톤으로 뛰어나게 묘사해서 화제가 되었던 작품이다. 베넷 밀러 감독의 첫 번째 작품 <카포티>는 시나리오 작가 트루먼 카포티를, 세 번째 작품 <폭스캐쳐>는 미국 재벌인 존 듀폰을 모델로 하고 있다. 기회가 되면 언급하고 싶을 만큼 뛰어난 작품들이다. 완벽주의 때문일까? 98년에 시작한 감독의 작품이 3편인 건 지나치게 적다. 감독의 작품을 학수고대하는 건 아메리칸 리얼리즘의 계보에 있는 마틴 스콜세지-폴 토마스 앤더슨 감독을 이을 만한 감독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영화 <머니볼>의 첫 장면은 메이저리그에서 가장 가난한 구단 ‘오클랜드 애슬레틱스’와 가장 부자 구단 ‘뉴욕 양키스’의 메이저리그 디비전 시리즈부터 시작한다. 참고로 양키스는 양키스 제국이라 별칭에 어울리게 엄청난 자본으로 메이저리그 구단의 유망주들을 빨아들이는 사르갓소 같은 존재다.

‘유 뽜이아!’는 실력으로 평가받는 메이저리그에서는 비일비재하게 동원되는 식상한 문장이다. 미국 최악의 대통령 트럼프는 수시로 트위터에 해고 문자를 날렸다. 1954년 35%에 달했던 미국의 노조 가입률은 노조에 맹공을 퍼부었던 레이건 정부 시절을 거치며 큰 폭으로 하락해 2020년 3월 12.1%를 기록했다. 트럼프는 한술 더 떠 ‘일할 권리법’(신규 채용된 노동자가 자동으로 노조에 가입하고 노조비를 지급하도록 한 유니언숍을 금지해 노조 활동을 크게 약화시켰다.)을 만들었다. 다행스럽게 바이든 대통령이 노동자의 단결권을 제대로 보호하지 못하는 기존 법의 맹점을 없애고, 노동환경의 변화에 발맞춰 노조 가입 자격을 큰 폭으로 확대하는 ‘단결권 보호법’을 만들었다. 아울러 이 법은 공화당이 장악한 27개 주에 도입된 ‘일할 권리 법’을 무력화시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끔찍했던 1997 IMF의 충격 이후 비정규직은 기하급수로 늘어나고 시간제 노동자가 일상이 되었다. 지금 근무하고 있는 직장은 일반직공무원과 임기제 공무원이 섞여 있는데 호봉과 승진이 보장되는 일반직공무원과 비교해 임기제는 계약이 끝날 때까지 계약된 연봉만 받고 호봉과 승진 없이 마침표를 찍는다. 그래도 다행이라는 게 대한민국 비정규직의 현실이다.

영화 <머니볼>은 비합리적인 구단 운영에 반기를 들고 과학적인 통계 분석으로 가난한 구단의 신화를 이뤄낸 ‘빌리 빈’ 단장의 경영방식을 다룬 영화다. 나름 치밀한 묘사 때문에 다시 보고 싶어서 봤는데 영화의 메시지가 매우 불편했다. 구단의 개혁을 위해 밀고 나가는 방식은 몹시 거칠었다. 합리적인 의사 수렴 없이 구단의 변화를 이끌기 위해 손을 들지 않는 직원들에겐 ‘유 뽜이아!’를 날리는 태도의 문제였다. 또한 실력이 나아지지 않는 프로야구선수는 시즌이 끝나지 않았는데도 아침에 트레이드나 계약 해지 통보를 받으면 저녁에 다른 팀으로 떠나거나 집으로 돌아간다. 마찬가지로 아니꼬우면 나가라는 식의 ‘유 뽜이아!’는 아직도 곳곳에서 만날 수 있었다. ‘유 뽜이아!’는 할리우드 영화에서 자주 볼 수 있는 단골 대사다. 직장을 소재로 하는 영화에는 꼭 한 장면씩 부록처럼 끼어있다. 그동안 전혀 불편하게 보지 않았고 오히려 ‘유 뽜이아!’를 외치는 갑질이 심지어는 멋있게 보였던 적이 있었다. 특히 ‘유 뽜이아!’ 의 대상이 밉상인 캐릭터일 경우엔 통쾌감을 경험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그 통쾌감 뒤에 절차를 무시한 해고의 손가락질이 얼마나 찝찝하고 불공정한지는 생각을 못 했다. 부지불식간에 방관자가 되었다. 경쟁과 성공이 덕목인 신자유주의 시스템에서는 능력과 재력을 갖춘 자들이 하는 갑질은 당연하다고 생각했었다. 또한 이들은 치외법권의 혜택(삼성 이재용의 가석방은 너무 당당하게 진행되어 황당하다)을 받고 있다. 그래서 유독 할리우드 서사의 중심에는 치열한 경쟁 끝에 승리한 성공의 인물들이 늘 단골이었고 패자의 이야기는 찾기 어렵다.


격려하는 패자--올림픽 도쿄.JPG

산업화와 개발의 시대를 거친 우리나라도 지독한 경쟁의 구조 때문에 성공 강박증에 시달려야 했다. 도쿄올림픽에서 우리나라 선수들이 보여준 ‘패자의 품격’이 화제다. 금메달을 따지 않으면 죄인처럼 취급받거나 국민에게 죄송하다고 조아리던 시절이 있었는데 이제는 승부에서 밀려나도 상대방에게 잘했다고 엄지척을 날린다. 아직도 성공의 강박이 지배하는 산업화의 그늘에 있지만, 생존이 아니라 존재를 지향하는 탈산업화 세대의 여유가 유행처럼 번지고 있어서 다행이다.

그리고 최근에 올림픽 구호가 바뀌었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20일 일본 도쿄에서 138차 총회를 열고 종전 구호인 ‘더 빨리, 더 높이, 더 힘차게’에 ‘다 함께’를 추가하는 안건을 만장일치로 가결했다. 이로써 올림픽 구호는 ‘더 빨리, 더 높이, 더 힘차게-다 함께(Faster, Higher, Stronger-Together)’로 변경됐다. 새로운 올림픽 구호는 토마스 바흐 IOC 위원장이 적극적으로 추진했다. 바흐 위원장은 8년의 임기를 마치고 지난 3월 137차 총회에서 4년 중임에 성공한 뒤 기존에 사용했던 구호에 ‘다 함께’를 추가하자고 건의했고, IOC 집행위원회가 지난 4월 승인했다.

바흐 위원장은 “‘다 함께’는 유대감을 뜻한다”라면서 “새로운 구호에는 우리가 세계의 유대감 조성에 집중한다는 의미가 담겼다”라고 밝혔다. 그는 “유대감은 스포츠를 통해 더 나은 세상을 만들려는 우리의 의지를 북돋는다”라면서 “우리는 유대감을 통해 더 빨리, 더 높이, 그리고 더 힘차게 갈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문화일보에서 인용


나는 나를 해고하지 않는다.jpg

<나는 나를 해고하지 않는다> 제목이 노골적이다. 해고로 내모는 업체에 대한 다양한 압박과 수모에도 주인공은 유배지에서 꿋꿋하게 버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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