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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운 Dec 17. 2023

두 개의 수도꼭지

지우지 않고 남겨둔 테스트 촬영 컷

© piunphotography

이 사진은 단 한 장만 있어요. 테스트 촬영이었거든요. 보통 인물촬영을 위한 테스트 컷은 촬영 후 다 지워버리는데, 이 사진은 뭐가 맘에 들었는지 남겨두었네요. 평면이 입체로 보이거나, 원근이 있지만 플랫 한 공간은 촬영스폿으로 눈에 들어와요. 


같이 공부하는 원우 중에 인디 가수가 있어요. 앨범 커버로 사용할 사진 촬영을 해주기로 했거든요. 듀엣으로 활동하는 인디 그룹이에요. 보컬의 음색은 롹(Rock)으로 가득해요. 역시나 그룹으로 활동했었더라고요. 현재는 듀엣으로 기타에만 목소리를 싣고 있어요.


촬영 전에 학교 광장에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어요. 그는 이 세상으로 나오고 싶어 했어요. 하지만 매우 조심스러웠어요. 우리가 알아들을 수 없는 주파수 대역으로 음악을 하고 있었어요. 그의 세상으로 들어가는 통로엔 이런 소리들로 가득해요. 우리는 듣지 못해서 입구 인지도 모르죠. 그는 자신의 세계를 표현할 이곳의 문법규칙을 찾고 있다는 것을 느꼈어요.




수도꼭지

촬영 스폿을 결정할 때는 수도꼭지는 눈에 들어오지 않았어요. 밝음과 어둠의 대비가 잘 드러난 모서리 면이 맘에 들어 선택했어요. 그만의 세상과 이곳의 세상을 상징적으로 표현할 수 있다는 생각에 이곳이 끌렸어요. 인물이 없는 비어있는 테스트 컷을 바라보는데 이젠 수도꼭지가 눈에 들어왔어요. 


왜? 두 개를 달아두었을까?


마치 바로 붙어 있는 두 개의 다른 면이 완전히 다른 세계인 것처럼 굳이 두 개를 달아두었어요. 한참을 그 이유를 살피면서 바라보았어요. 한쪽 수도꼭지는 호수를 연결할 수 있도록 브래킷이 설치되어 있어요. 그래도 완전히 이해가 되진 않았어요. 브래킷을 달아두면 호수를 쓸 때는 연결해서 쓰고, 평상시엔 그냥 사용하면 충분하지 않을까? 마치 꺾인 면을 통과할 수 없는 다른 세계인 것처럼 수도꼭지는 굳이 두 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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