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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운 Oct 21. 2023

어디에 초점을 맞춘 사진일까요?

이 사진의 주인공은 누구일까요? 작가는 무엇을 찍은 걸까요?

무엇을 찍은 사진일까요?

초점을 어디에 맞춘 사진일까요?



바로 앞 포스팅과 짝꿍 사진이에요. 이번엔 20억이 넘는 클래식 페라리의 앞모습이죠. 이 사진을 먼저 찍었던 것 같아요. 처음엔 차주인줄 알았던 사진 속 아저씨가 차주에게 다가가고 있는 장면이에요. 지난 포스팅을 보면 둘이 얘기하는 장면이 흐리게 자동차 뒷모습 사진과 함께 찍혀있어요. 이 사진이 먼저라는 걸 알 수 있죠. 사진을 처음 시작하고 첫 번째 혹은 두 번째 필름 롤이었을 거예요. 이땐 자동차가 신기했었는지 차를 많이 찍었더라고요. 이때 찍은 흑백 사진에는 모두 카메라 냄새와 셔터음 그리고 숨죽이며 초점을 맞추고 찍었던 호흡이 동영상처럼 기록되어 있어요. 신기해요. 빛과 그림자가 만들어 놓은 자동차 표면의 프린팅을 찍기도 하고, 반사된 표면을 담기도 했어요. 그게 왜 좋았는지는 모르겠지만 계산된 지금의 시선과는 달랐어요. 그냥 사물 그 자체를 탐닉했던 것 같아요. 전체 구도 따위는 그냥 얻어걸린 셈이죠.


사진을 보면 이땐,  '시선'이란 게 있어요. 지금 제 시선은 길을 잃었고요. *필립퍼키스 할아버지가 이젠 시력을 모두 잃으셨다고 해요. 몇 해 동안은 한쪽 눈으로 사진활동을 이어갔지만, 이젠 그럴 수도 없는 상황이에요. "사진은 눈으로 혹은 카메라로 봐야지만 할 수 있는 건가?"라는 생각을 혼잣말하듯 요즘 계속하고 있어요. '잃어버린 시선이 볼 수 없는 것과 무엇이 다를까'를 생각해요. 난 제대로 보고 있는 건가??


제가 많이 좋아하는 사진작가이자 사진교육자세요. 그의 작품은 마크 로스코와 연결되고, 그의 생각은 비트겐슈타인, 칸트 이후의 모든 현상학적 기반의 철학자와 통해요. 마음이 좀 힘들어요. 어젠 할아버지 영상을 처음부터 끝까지 큰 숨으로, 먹먹한 느낌으로 봤어요. 카메라를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 결국 카메라로 나를 찾아 찍는 것이라고 느끼게 한 장면이 있었어요. 사진이 곧 '나'라는 생각이 들면서.."이제 어쩌지...!" 먹먹했어요.


저랑 헤어스타일이 비슷해요. 따라한 건 아니에요. 저는 제 맘대로 필립 할아버지라고 불러요. 할아버지는 이런 말을 했어요. '사진의 다양성은 형식에 있지 않고 내용에 있다.' 늘 한결같이 흑백사진만 찍고, 다 비슷해 보이는 스타일의 필립 교수님의 사진을 본 학생의 질문에 대한 답변으로 한 말이기도 해요.


10년이 지난 후에 이 사진을 보면서 '클래식 페라리를 찍었구나', '저 사람과 자동차의 구도를 순간 결정하고 찍었구나'라고 그렇게만 사진을 바라보았어요. 제가 찍은 사진인데 말이죠. 사진 속 아저씨는 초점이 맞아있어요. 그래서 전 그렇게 생각했을 거예요. 하지만 저의 시선은 아저씨가 아니라, 같은 거리(distance)있는 다른 곳에 닿아있었네요.



필립퍼키스

바로 앞 포스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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