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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운 Oct 13. 2018

사진을 왜 설명해야 하죠?

Alexander Calder + Piet Mondrian

 

Kinetic 1

"사진을 왜 설명해야 하죠? 전 사진으로 이야기하고 있어요. 이건 말로 설명할 수 없어요. 그래서 사진으로 찍었어요. 말로 할 수 있으면 저는 글로 적었을 거예요. 리포트로 제출하지 뭐하러 사진을 찍어요?" 결국 D학점을 받았어요. 예상했어요. 대학원 때 일이었어요. 여기 올린 사진이 그때 했던 숙제예요. 이 수업 전 시간 토론시간엔 이렇게 말했죠. "It's a stupid question" 2주 연속 대들었어요. 돌아온 학점은 D였지만 학점은 저를 공격하기엔 큰 무기가 될 수 없었죠. 그만두었으니까!!!

Kinetic 2, 3

'What is ART?'는  Stupid Question이라고 저항했던 지난주 토론시간의 주제였어요. '예술이란 무엇인가?' 이 질문 자체가 싫었던 건 아니에요. 예술이 무엇인지? 예술가는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 사진이란 무엇일까? 등의 뿌리 자체를 고민하고 생각하는 건 중요해요. 전 강의할 때 '당신만의 Definition (정의)을 찾으세요'라고 강의해요.  '나에게 좋은 사진이란 무엇일까?' 내가 좋아서 하고 있는 '사진이란?' 도대체 무엇일까?를 고민해보는 건 분명히 필요해요. 하지만 이걸 Stupid Question이라고 몰아붙인 이유는 정해놓은 답을 기준으로 토론을 하고 있었고, 학생들의 답변을 가지치기하면서 모범답안으로 몰고 가는 것이 싫었어요. 토론이 진행될수록 학생들은 스스로가 안내하는 길에서 벗어나 있을까를 두려워하기 시작했고, 교수님의 눈치를 보기 시작했으니까요.


두 번째 사건은 숙제를 발표하는 크리틱 시간에 벌어졌죠. 지난주 수업이 끝날 때 학생들은 제비뽑기를 했어요. 종이엔 유명한 예술가들이 적혀있었어요. 어떤 작가가 걸릴지 몰라요. 두 작가를 무작위로 뽑는 거예요.  칼더(Alexander Calder)와 몬드리안(Piet Mondrian)이 걸렸어요. 숙제는 두 작가의 작품을 감상하고 작가에 대해서 조사한 후 두 작가의 에센스만을 뽑아서 '하나의 사진작품'으로 완성해서 표현하는 것이었어요.  칼더와 몬드리안을 조사하기 시작했어요. 우연히 두 사람의 일화를 접하게 되었죠. 칼더는 모빌을 만든 예술가예요. 모빌은 늘 움직이죠. 늘 변화해요. 머물러 있지 않죠. 머물러 있다고 생각해도 시간에 따른 빛의 변화는 모빌을 움직이게 해요. 움직임과 자연이 만들어준 우연성에 대해서 생각하는 칼더가 몬드리안의 작업실에 들러서 몬드리안의 작품을 보고선 '움직임'이 필요하다고 훈수를 두는데, 몬드리안은 '내 작품은 충분히 움직이고 있다'라고 응수하죠. 기 싸움이 느껴졌어요. 이 일화를 접하고선  사진작품으로 두 사람을 화해시켜야겠다고 생각하고 작품을 구상했고, 위의 세 작품을 만들어서 크리틱 시간에 제출했어요. 이미 두 작가의 에센스를 뽑아서 하나의 작품으로 만드는 것이 숙제였기 때문에 더 이상 할 말이 없었어요.


작품에 대해서 이야기할 수 있어요. 나의 생각을 뒷받침하고 싶다면 그렇게 할 수 있어요. 하지만 보는 사람이 가고자 하는 길목을 막아서서 나의 길을 이야기하고 싶지 않아요. 교수님은 한 명 한 명 발표를 시켰어요. 작품 속에 포함된 구성요소들을 질문하기도 하고, 어떤 부분이 그 작가의 에센스인지를 물어보기도 했어요. 물어볼 수도 있고, 거기에 대해서 토론할 수도 있어요. 하지만 변명하는 건 싫어요. 교수님이 질문하면 역시나 학생들은 자신이 촬영한 저 요소가 뭐가 잘못된 건 아닌가 싶어서 눈치 보면서 이야기해요. 조금 강하게 공격적으로 교수님이 반문하면 주눅이 들어서 변명하듯 말하는 친구들이 많았어요. 그게 싫었어요. 그래서 저는 대들었어요. "사진을 왜 설명해야 하죠? 그냥 보세요. 말로 표현할 수 없어서 사진으로 찍어 왔어요"라고 대들었죠. 학생들은 제 작품을 구매하겠다고 하기도 했어요. 작품을 가져가고 싶은 친구들에겐 프린트해서 선물했어요. 친구들의 환호를 받으며 저는 D학점을 받았어요.


사진을 설명하는 것 자체를 문제 삼았던 퍼포먼스는 아니었어요. 작품을 선입견 없이 감상하고 토론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어요. 순서대로 나가서 자기가 만든 작품을 변명하듯이 말하는 것이 싫었어요. 교수님이 바라보는 길로 함께 갈 때만 박수를 보내는 건 정말 싫었어요. 하나의 작품으로 다양한 생각과 의견을 공유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말로 설명할 수 없어야 좋은 사진일지도 몰라요. 교육자는 달라야 한다고 생각해요. 시행착오를 줄여준다는 명목으로 경험을 차단하고 사고의 폭을 줄이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다시 돌아와야 하는 길로 들어서더라도 그 길을 함께 걸어줄 수 있는 스승이 진정한 교육자일 수도 있어요.


다시 돌아와야 할 여정이 사진이라고 생각해요. 어떤 길로 나아가든 어차피 다시 출발지점으로 돌아와야 하는 것이 사진일지도 몰라요.


칼더와 몬드리안의 일화를 짧게나마 설명해준 유튜브 영상이 있어서 링크남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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