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멘 Yemen | 커피의 탄생
에티오피아가 예멘을 점령하고 도착한 커피가 최초로 재배된 곳은 고도 사나 옆에 치솟은 나비수아이브산(예멘에서 가장 높은 3760m의 정상을 가지고 있는 산)이고, 커피 교역이 세계적으로 이루어 진 곳은 알모카 항구이다. 에티오피아가 ‘커피의 발견’이 이루어진 곳이라고 하면 에멘은 ‘커피가 탄생’한 곳이다.
커피가 탄생한 예멘이 커피교역을 독점하고 있는 동안 커피 가격은 치솟았고 ‘행복한 아라비아(Arabia Felix)’라고 불릴 정도로 풍요로움을 구가했다.
예멘의 커피재배는 최고 성수기에도 연간 1톤의 산출량을 넘지 못했다. 예멘의 커피재배는 원형이 되어 향후 커피재배를 하는 모든 곳의 커피농업의 표준이 되었다. 간략하게 요약하면 밭을 개간하고, 충분한 관개시설을 확보한다. 너무 강한 햇빛과 해충으로 부터 피해를 막기위해 커피나무 주변에는 키 큰 나무를 심었다.
현재 커피를 재배하는 생산지의 모습이기도 하다. 하지만, 처음부터 이런 노하우들이 산지로 전파되지는 않았다. 커피재배 방법은 철저한 비밀이었고, 타국의 사람들이 커피 농장을 방문하는 일은 엄격히 금지되었다. 커피콩은 물에 넣어 끓이거나 열을 가해 발아능력이 없어져야만 수출이 가능했다. 어쩌면 이 때 부터 커피는 구워서 음용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누군가에 의해 가치있다고 느껴진 순간 시장이 형성되는 것이 이치이니 예맨의 알모카 항구가 커피로 유명해진 시기에 이미 제품으로 인정을 받고 있었던 것이다. 알모카 항구는 ‘모카’라는 이름으로 잘못 알려져 전 세계에서 커피의 애칭이 되었다. 또한 ‘모카’는 초콜릿 향의 이름이 되기도 했는데, 그 이유는 알모카 항에서 판매된 아프리카 원종에 가까운 커피가 내는 독특한 향 때문이었다. 이 향은 지금도 아프리카 지역에서 나는 에티오피아 이르가체프, 에티오피아 시다모, 예맨 모카 하라 등의 원두에서 공통적으로 나는 초콜릿 느낌의 향이다. 이 때문에 초콜릿은 ‘모카’라는 말 처럼 해석이 되어 에스프레소 베이스 음료에 초콜릿을 추가한 음료가 카페 모카이다. 이 처럼 알모카 항구는 당시 최고의 교역항이자 커피의 상징이 되어 버린 것이다.
사실 호데이다나 그 외의 항구도 모카에 뒤지지 않는, 오히려 훨씬 많은 물량을 출하했지만 모카가 대표적인 항구가 된 이유는 모카 항만이 영국, 네덜란드, 프랑스 등의 유럽선박이 직접 기항을 허락받아 커피를 매입했기 때문이다.
아프리카에서 중동으로 건너간 커피는 예맨, 메카, 카이로 등의 중동지역에서는 최고의 위상을 구가하게 된다. 그 이유는 커피가 종교적 제의에 사용하는 성스러운 음식으로 그 위상을 달리했기 때문이다. 그도 그럴 것이 중동지역의 커피는 아프리카에서 인도까지 퍼져있던 이슬람 신비주의자인 수피들이 커피의 부정적인 부분이 그들의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부분과 맞아 떨어졌기 때문에 이들에 의해 퍼져갔기 때문이다.
수피라고 불린 사람들의 등장한 곳은 8세기 말 메소포타미아 지방 바빌론 근처 ‘쿠파’라는 마을이며, ‘수피’라고 불린 것은 흰 양털(수프, صوف ṣūf)로 만든 망토를 몸에 두르고 황야에서 종교적 고행을 수행한데서 비롯되었다, 지금은 이슬람 신비주의자들 모두를 일컫는 통칭이 되었다.
에티오피아 편에서 이야기했던 커피를 최초로 음료화 했던 ‘아비시니아 차’는 수피의 알 샤드힐리에 의해서 만들어졌다는 설이 지배적인데 그는 또한 칼디의 전설에 등장하는 수도사 ‘스키아들리’와 동일 인물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알 샤드힐리(Al-Shadhili)를 이탈리아 말로 번역하다 ‘스키아들리’가 되었다는 것이다.
커피의 역사에서 알 샤드힐리는 이곳저곳에 등장한다. 어떤 것은 조금은 황당무게한 내용이지만 대부분은 어느 정도 있을 법한 내용들이다. 12세기 말에 탄생한 그는 튀니지와 알제리, 이집트, 메카 등에서 넓은 지역에서 활동하다 1258년 사망 한 후 그와 관련된 교단이 아프리카에서 인도까지 널리 퍼져있었기 때문에 이 들에 의해 커피가 퍼졌다고 한다.
그들의 종교적 수행이 커피와 함께 이루어졌기 때문인데,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수피들은 잠들지 않는 고행을 수행하려 했다. 수피의 시인 사라는 이렇게 말했다.
주의하라. 눈뜨고 있으라. 삶이 허무하게 지나가 버리지 않도록…
커피는 마시면 잠들 수 없는 특성을 가지고 있어서 수피들은 커피를 마시면 잠들지 않는 수행이 훨씬 수월했을 것이다.
수피들은 식사를 하는 시간은 의미없는 시간이라 여기는 금욕주의 였는데, 커피는 식욕을 없애는 특성을 가지고 있었다.
아프리카의 ‘부누(Bunnu)’ 가 이슬람으로 와서 ‘카와(Qahwa)’가 되고 이 말이 어원이 되어 지금의 커피라는 이름이 되기까지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겠지만 아랍에서 ‘카와’라는 말로 불리게 된 것은 특이할 만한 일이다. 그 이유는 아랍어의 Qahwa의 어근은 Q, H, W 3개의 자음인데 그 의미는 “무언가 욕망을 없애다, 적게하다, 조심하다.’라는 뜻인데, Qahwa는 식욕을 없애는 포도주를 뜻하기도 하였고, 카트를 뜻하기도 하였으며, 커피를 뜻하는 말이기도 했다. 다만 이슬람에서 와인이 금기가 되고 커피가 주류를 이루며, 이런 역할을 하는 유일한 것이 커피였으므로, 이렇게 이름이 붙은 것이다.
그 외에도 커피를 마시면 살이 빠지고, 흥분을 하기 때문에 수피들은 이런 커피의 특성들 때문에 커피를 대단히 성스러운 음료로 여긴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커피를 대접한 손님에겐 충성을 다하고 반나절 동안의 절대안전을 보장했고, 적대관계의 사람에게 커피를 준다는 것은 동맹의 시작을 의미하기도 했던 것이다. 당시 신성시 해왔던 소금과 빵에 커피가 추가된 것이다.
수피의 데르비시들이 아라비아를 반도를 돌며 종교의식을 행할 때 커피향이 풍겼을 테니 그들을 따라 커피가 퍼진 것은 어쩌면 커피의 필연적 운명이었을 것이다. 수피교도와 커피는 땔레야 땔 수 없는 관계가 되어 예멘의 수피교도는 커피라는 상품을 탄생시켰고, 터키의 수피교도는 커피를 북아프리카와 중동에 퍼뜨리게 된다.
알제리에선 ‘샤딜리에’가 커피의 이름을 대신했다고 하니 이는 커피를 탄생시키고 수피교를 이끈 사람을 향한 마음 아니겠는가…
알 샤드힐리의 일화 중 재미있는 일화는 오랜 여행으로 병들고 지쳐 고생하여 몇몇은 사경을 헤매던 포루투갈 선원들이 모카에 들렸을 때 알 샤드힐리가 여러 해 동안 신비한 약을 주어 이것을 먹고 며칠 만에 모두 몸이 회복되어 다시 여행을 시작하여 유럽에 알모카와 커피라는 음료의 위상이 퍼졌다는 일화이다. 선원들이 포루투갈에 도착해서 신기한 약물에 대한 이야기를 퍼트렸을 것이고, 이런 위험이 일상인 선원들에게 신비한 이슬람의 한 사람이 권한 이 음료가 신비하게 비추어진 것은 당연한 일이리라.
수피의 데르비시 들의 수행은 에스파냐 지역에 까지 이어졌으며, 지금도 스페인에는 ‘알 샤드힐리’라는 집단이 존재한다고 한다. 이런 저런 이유로 수피는 커피를 유럽의 일부지역에 까지 퍼지게 하는 역할도 하게 된 것이다.
주변 지역으로 퍼진 명성이든, 커피의 효능이 정말로 훌륭했든 예맨의 알모카는 1000년 동안 커피의 메카가 되었다.
1606년 기록에는 알모카 항구 주변에는 화려한 커피 궁전이 들어섰으며, 세계 각지에서 35척이 넘는 상선이 모여들어 커피자루를 기다렸다는 것이 기록되어 있다.
1400년 대에 이르러러 예맨은 터키에 의해 정복당하게 된다. 에티오피아에 의해 정복되어 최고의 커피 교역항구까지 거느렸던 예맨이 터키에 정복당하고 커피는 터키로 퍼지게 되는 운명을 맞이 한 것이다.
특유의 효능에 의해 에티오피아에서 ‘발견’되고 퍼진 커피는 예맨에서 ‘탄생’하고 전 세계로 퍼지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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