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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오 Dec 25. 2023

브랜드의 정체성 | Brand Identity

'나' 다운 것

건물 사이로 포물선을 그리며 활공하는 스파이더맨은 아이들의 영원한 우상이다. 어렸을 적 나도 그 아이들 중 하나였다. 2002년 스파이더맨이 셈 제레미 감독에 의해 영화로 탄생했을 때 가슴을 두근거리며 영화를 보았던 기억이 난다.

유전자가 조작된 슈퍼 거미에게 물려 우연히 초인적인 힘을 얻은 피터는 어느 날 강도의 범죄를 방관하게 된다. 얼마 후 피터의 삼촌이 그 강도에 의해 죽임을 당하게 되면서 그는 각성하고 히어로의 삶을 살게 된다.

돌아가시기 전 유언처럼 남긴 삼촌의 말은 피터에게 각인되어 세기의 히어로를 탄생시키는 정신이 된다.

“With great power comes great responsibility. 위대한 힘에는 위대한 책임이 따른다.”


위대한 힘에 주어진 책임은 피터의 삶을 고되게 만든다. 일상에서 피터는 소시민으로서 피자 배달일을 하며 고단한 삶을 살아가고 범죄가 발생하면 스파이더맨이 되어 범죄자를 처단한다. 하지만 언론은 스파이더맨도 다 같은 악당이라 호되게 몰아붙인다. 얼마나 속상했을까? 그를 더욱 궁지로 몰아붙인 건 자신의 정체를 숨겨야 했기 때문에 사랑하는 이와 멀어지는 것을 지켜보기만 하는 것이었다.

심각한 생활고, 악당이라 오해하는 사람들,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

지쳐버린 그는 자신이 지켜온 무거운 책임을 저주하며 놓아버리고 싶었다. 그 후 그에게 심각한 변화가 일어난다. 손목에서 나오던 거미줄은 나오지 않고 손바닥 흡착 능력마저 사라져 버렸다. 영웅의 정체성 혼란으로 위대한 힘이 사라지고 있었다.  

스파이더맨의 능력을 좌지우지했던 정체성(identity)이란 무엇일까?

1986년 하버드 대학교 정신분석학 교수 에릭 에릭슨(Erik Homburger Erikson)은 한 개인이 구별되는 고유의 존재라는 것을 설명하는 정체성(identity)이란 용어를 제안한다.


개인의 정체감의 자각은
자신의 동일함과 지속성을 스스로 즉각적으로 지각하는 것,
타인이 자신을 동일하게 지속적으로 지각하고 있음을 지각하는 것,
이 두 가지를 관찰함으로써 성립된다.

에릭 에릭슨  | Erik Homburger Erikson


사람이 살아가는 동안 얻어지는 자신만의 고유하며 독자적이고 일관성 있는 본원적 성격이 정체성(identity)이다. 한 사람의 정체성은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인정받을 때 비로소 완성된다. 그래서 타인에게 기억되고자 하는 자신만의 모습이 있다면 그들에게 인정받기 위해 끊임없는 노력을 해야 한다.


결국, 정체성은 힘을 내는 원천이 된다.


브랜드도 다르지 않다. 정신(콘셉트, 철학, 핵심)으로 무장한 브랜드는 사람들에게 그 가치를 혹은 정체성을 인정받기 위해 여러 가지 방법으로 끊임없는 노력을 해왔다.

방법 중 하나는 독특한 시각적인 요소를 아주 잘 활용하여 정체성을 유지하는 것이다. 시각적 요소를 활용한 정체성은 가장 직접적이고 빠르게 인지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시각적 요소에 브랜드의 가치를 담을 수 있으면 더욱 효율적일 것이다.

빨간색, 필기체 로고, 코카 열매를 닮은 병 등은 코카콜라의 시각적 정체성(Visual Identity)이다. 코카콜라의 빨간색은 부정적인 심리를 극복할 수 있는 활기를 주는 색이라 한다. 톡 쏘는 탄산에 활기를 주고 코카콜라 로고의 경사진 필기체가 시각적인 활력을 더해준다. 코카콜라를 마시면 왠지 기분이 상쾌해지는 느낌이 이유 없는 것은 아닌가 보다.

코카콜라 빨간색은 또한 세계인의 우상을 만들어낸다. 1931년 주간지 Saturday Evening Post에 헤든 선드블롬(Haddon Sundblom)이 그의 친구를 모델로 그린 흰색 털이 달린 빨간색 외투를 입은 코카콜라 광고의 산타클로스는 현재 세계인의 산타클로스가 되었다. 코카콜라는 조금씩 조금씩 빨간색을 자신의 시각적 정체성으로 인정받아 왔다.  


코카 콜라 병 디자인과 산타클로스


또 다른 방법은 브랜드의 메시지와 구성원의 행동 일치이다.

‘창의적인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검색 사이트 Google’은 ‘검색’이란 카테고리에서 가장 창의적인 검색엔진을 만들어내는 행동 정체성(Behavior Identity)을 실현한다. Work should be challenging and the challenge should be fun.’ 일은 도전이어야 하고 도전은 재미가 있어야 한다’는 그들의 철학처럼 근무 5일 중 하루는 자신이 흥미로운 일을 한다. 만드는 사람이 재미있어야 재미있는 것들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이런 노력의 결과일까? Google이란 브랜드명은 창의적 인재들과 함께 만들어낸 창의적인 결과물로 많은 사람에게 인정받아 2008년 옥스퍼드 사전에 ‘검색하다’라는 새로운 동사로 추가되기도 한다.


옥스퍼드 사전에 있는 google의 정의


정체성은 만든다고 해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인정받는 것이 필수다. 그러기 위해서 브랜드는 끊임없이 가치에 관해 이야기하고 기억시켜야 한다. 관계를 맺고 사람들 삶 속으로 파고들어 사람들이 가진 문제와 갈증을 해결해 주며 그들이 인정해 줄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내 얘기를 전하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그들의 얘기를 경청해 주는 것이 중요하다.


파리의 마들렌 광장의 바스 듀 롬프르 56번가(Rue Basse Du Rempart 56)엔 고집스러움으로 마구를 만들던 사람이 있었다. 안장에 사용되는 가죽은 암소 가죽으로 참나무 껍질과 함께 구덩이에 넣고 9개월여에 걸쳐 무두질했다. 게다가 가죽과 가죽을 연결할 때는 손이 많이 가고 오랜 시간이 걸리는 새들 스티치(Saddle Stitch) 방법을 이용했다. 기계 스티치와 달리 새들 스티치 방식은 한 곳이 끊어져도 교차한 실이 하나하나 조여져 있어서 풀어지지 않는 방식이다. 튼튼한 마구를 위한 가장 최적의 방법이다.


기계와 새들 스티치의 비교

 

새들 스티치는 사람의 손으로 한 땀 한 땀 수놓듯 해야 하므로 많은 시간과 공을 들여야 했지만, 마구상은 반드시 이 공정을 거쳐 마구를 만들었다. 그래야 튼튼하고 위험으로부터 보호할 수 있는 믿음직한 마구가 되기 때문이다.

1842년 7월 13일 프랑스에서는 슬픈 일이 일어난다.

루이 필리프 왕의 장남 오를레앙 공작(Ferdinand Philippe, Duke of Orleans)이 마차에 올라앉는 순간 갑자기 말이 미친 듯이 날뛰어 균형을 잃은 공작이 마차 밖으로 퉁겨져 땅바닥으로 내동댕이쳐졌다. 공작은 두개골이 골절되어 의사들이 응급처치를 했음에도 숨을 거두고 말았다.

말의 이상행동은 조악한 마구가 충격으로 찢어진 것이 원인으로 밝혀졌다. 공작의 죽음에 전 프랑스 국민이 울었고 마구에 대한 생각이 바뀌는 계기가 된다. 이때부터 귀족과 황족들은 조악한 마구를 버리고 튼튼하게 만들어진 안전한 마구를 찾기 시작했다. 그리고 바스 듀 롬프르 56번가 마구상의 마구가 찢어지거나 뜯어지지 않는 안전한 마구라는 것을 알아낸다. 마구상엔 귀족이나 황족의 시종들이 마구를 사기 위해 줄을 서기 시작한다.

그의 마구는 튼튼하고 안전한 마구로 당시 셀러브리티였던 황족과 귀족들로부터 인정받았고 오늘날에도 셀러브리티들이 소유하고 싶어 하는 최고의 브랜드가 되었다. 고집스럽게 지킨 신념의 새들 스티치는 마구상의 이름으로 다르게 불리기도 한다. ‘Hermes Stitch’는 모든 이에게 인정받은 에르메스 제품의 우수함을 나타내는 상징적인 용어가 됐다.

말을 타는 사람을 향한 마구상의 마음이 기술에 스며들어 마구상의 이름을 갖게 된 것이다. 누구도 이에 동의하지 않거나 부정하지 않는다. 많은 사람이 그의 신념을 인정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은 에르메스의 정체성이 된다.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것은 시간의 문제가 아니라 교감의 문제다. 그전까지 브랜드는 끊임없이 외치고 행동해야 한다.


나야 나! 나다운 것이 이런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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