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공감하는 브랜드텔링
Empathy는 누군가의 모카신(뒤축 없는 신)을 신고 1.6Km를 걸어보는 것이고
Sympathy는 그들의 발 통증을 안타까워하는 것이다.
Freak의 저자 Rebecca O’Donnell
영화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보면서 그들에게 일어난 일이 마치 현실에서 ‘나’에게 일어난 일인 것처럼 느낄 때 ‘공감(共感)한다.’라 말한다. 누군가 나에게 ‘공감해!’라는 말을 해주면 그는 나의 모든 것을 이해하고 믿어줄 것만 같다. ‘공감(共感)’은 의미뿐만 아니라 어감마저도 따뜻함을 주는 단어이다.
‘공감’을 뜻하는 영어 단어는 sympathy와 empathy 두 가지가 있다.
sympathy는 그리스 어원 sym(함께)과 path(감정)의 합성어로 ‘함께 느끼는’ 이란 의미이며, empathy는 em(속으로)과 path의 합성어로 ‘상대방(속까지) 함께 느끼는’이란 의미라 한다.
비슷한 의미의 두 단어가 있음은 그 쓰임이 다르기 때문일 것이다.
sympathy는 18세기 도덕철학에서 중요한 개념으로 등장해 의무감을 내재한 이성적 공감을 의미하며, empathy는 19세기 중반 이후 독일의 철학적 미학 영역에서 처음 사용되어 영어권에 소개된 단어로 마음마저도 동화되는 감성적인 공감을 뜻한다. 두 단어는 태생이 다르기 때문에 쓰임도 미묘하게 차이가 난다. 둘 중 어떤 단어가 더 좋은 의미라는 등의 비교보다는 상황에 따라 다른 의미와 요구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Apple은 다른 두 가지 공감을 이용해 브랜드텔링을 한다.
1985년 Apple을 떠난 13년 동안 스티브 잡스는 세계 최초의 객체지향형 운영 체제 ‘NeXTSTEP’을 만들어 훗날 써드 파티 개발자 혹은 개인이 앱을 개발하기 쉬운 환경을 만드는 기초를 다졌고 세계 최초의 Full 3D 애니메이션 ‘토이스토리’로 새로운 콘텐츠의 방향을 제시한다. 1997년 Apple은 NeXT를 인수하면서 스티브 잡스도 함께 영입하게 된다. 그리고 Apple의 제2의 전성기가 시작된다
그로부터 1년 후 1998년 Apple은 완전히 새로운 모습의 컴퓨터를 선보인다. Macintosh의 애칭이었던 ‘Mac’에 당시 인터넷을 상징하는 접두문자 ‘i’를 붙인 ‘iMac’이란 이름을 갖는다.
iMac을 시작으로 애플은 ‘i’를 접두어로 하는 새로운 제품, 새로운 서비스를 선보인다.
MP3 플레이어 iPod, iPod에 음악 콘텐츠를 제공하는 iTunes, 스마트폰 iPhone, 디바이스의 콘텐츠를 공유하는 iCloud까지 새로운 서비스는 인터넷 연결을 기반으로 만들어진다.
애플의 모든 제품이 인터넷으로 유기체처럼 연결되고 콘텐츠를 공유하며 사람들 곁에서 살아가고 있다. 그 중심에는 언제나 손에서 떠나지 않고 체온과 더불어 콘텐츠도 나누는 iPhone이 있다. iPhone은 객체지향 운영체제 'NeXTSTEP'의 핵심을 전수받은 운영체제 iOS를 사용하여 Apple의 모든 컴퓨터와 완벽하게 호환된다. 그래서, 전 세계 써드파티와 개인들이 차고 넘치게 만든 애플리케이션을 사용할 수 있다. 한마디로 '기능과 쓰임' 모두를 고려해서 iPhone이 만들어진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완벽한 것이라 해도 사람들의 공감을 얻어내지 못한다면 무용지물임을 Apple은 이미 수년간 터득해 왔다.
iPhone을 사용하는 ‘나’, 기능에 대한 ‘공감 sympathy'
iPhone이 스마트폰의 시작은 아니다. 1992년 IBM이 컴덱스에 콘셉트 제품으로 전시한 Simon이 최초의 스마트 폰이다. 이후 노키아, 블랙베리 등이 스마트폰을 출시한다. 2007년까지 스마트폰에 대해 일반 사람들은 거리감을 느꼈다. 스마트폰은 ‘고가인 데다가 어렵다'라는 인식이 지배적이었다.
이런 인식을 한순간에 없애버린 스마트폰이 바로 iPhone이다.
Apple은 2007년부터 현재까지 광고 영상에서 iPhone과 손을 ‘나’의 눈앞으로 가져온다. 마치 ‘나’의 손인 것처럼... 화면에선 가벼운 손가락 터치 몇 번으로 iPhone의 매력적인 기능이 실행된다. 그 정도면 ‘나’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도록...
정작 중요한 것은 이런 쉬운 조작 등의 매력적인 ‘공감의 요소’가 이미 iPhone에 있었다는 것이다. 실제 사용자를 경청하고 관찰하여 정확한 이해를 바탕으로 기능을 구현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그 제작 과정 중 고심했던 한 부분을 고스란히 영상 안에 담았던 것이다.
엄지는 여기에서 여기까지
커진 스크린도 여기에서 여기까지
자 이건 기막힌 우연의 일치일까요?
아니면 일반 상식에 환상적인 구현일까요?
상식 쪽이 맞겠네요.
iPhone5S CF
iPhone으로 삶을 사는 ‘나’, 쓰임에 대한 ‘공감 empathy'
‘전화만 잘 되면 되는 거 아냐?’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겐 매력적인 기능이 아무리 많아도 의미가 없다. 하지만 짧은 그들의 말속엔 삶에 꼭 필요한 것들이 표현되어 있다.
‘나와 네가 함께 이야기하기(전화)’이다. 많은 것이 다 필요 없다 하더라도 ‘나’와 ‘너’의 ‘삶’은 꼭 필요하다. 우리는 그 삶 속에서 ‘나’를 발견하고 ‘너와 함께 있는 나’를 발견한다.
영상 속엔 평범한 사람들이 핸드폰으로 무언가를 한다. 꾸며지지 않은 자연스러운 삶을 보는 듯하다.
영상을 통해 ‘내’ 일상의 행동을 하는 사람을 보거나 혹은 평소에 하길 원했던 행동을 하는 사람들을 보면 ‘나’는 영상에 몰입하고 동화된다. 그 안으로 들어가 내면 깊숙한 곳에서 ‘공감 empathy’이 느껴진다. iPhone으로 내 삶의 변화를 가져올 수 있을 것만 같은 감정의 연결고리가 만들어진다.
iPhone의 광고 영상을 보고 '공감'하는 것은 브랜드가 먼저 사람들에게 ‘경청’하고 '공감'했기 때문이다. ‘경청’과 '공감'으로 제품을 만들었기 때문에 브랜드텔링에 '내'가 존재하고 '나'도 공감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묘한 애정을 갖는다.
매년 새롭게 소개되는 iPhone은 사람들이 바라마지 않던 ‘혁신 innovation’이 없으면 엄청난 질타를 받는다.
혁신은 그냥 바뀌기만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innovation이란 단어가 품고 있는 뜻은 ‘안으로 새롭게 하기’이다.
in(안으로) + nov(새롭게) + ation(하기)
겉이 아니라 속을 새롭게 만들려면 사람을 속속들이 알고 있어야 한다. 아마도 그들이 사람들을 경청하고 관찰한 이유일 것이다.
아이폰과 다른 스마트폰을 바라보고 평가하는 바로미터가 다르기 때문에 iPhone을 좋아하는 '나'는 iPhone을 스마트폰이라 하지 않는다. 그냥 'iPhone'이라 한다. iPhone만의 유일무이한 고유한 가치가 있기 때문에 다른 것과 동일시하는 것에 동의하지 않는 것이다. 스마트폰이라는 느낌은 같지만 iphone은 다르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다른 것은 다 따라 할 수 있어도 iPhone에 깃든 마음까지는 따라 하지 못하기 때문이지 아닐까?
비슷해 보이지만 절대로 같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