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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오 Aug 16. 2017

'나' 다운 것

브랜드 정체성 | Brand Identity

건물 사이로 포물선을 그리며 활공하는 스파이더맨은 아이들의 영원한 우상입니다. 저도 그 아이 중 하나였습니다. 2002년 스파이더맨이 셈 제레미 감독에 의해 영화로 탄생했을 때 가슴을 두근거리며 영화를 보았던 기억이 납니다.

유전자가 조작된 슈퍼 거미에게 물려 우연히 초인적인 힘을 얻은 피터는 어느 날 강도의 범죄를 방관하게 됩니다. 얼마 후 피터의 삼촌이 그 강도에 의해 죽임을 당하게 되면서 그는 각성하고 히어로의 삶을 살게 됩니다.

돌아가시기 전 유언처럼 남긴 삼촌의 말은 피터에게 각인되어 세기의 히어로를 탄생시키는 정신이 됩니다.


With great power comes great responsibility.
위대한 힘에는 위대한 책임이 따라온다.


위대한 힘에 주어진 책임은 피터의 삶을 고되게 만듭니다. 일상에서 피터는 소시민으로서 피자 배달일을 하며 고단한 삶을 살아가고 범죄가 발생하면 스파이더맨이 되어 범죄자를 처단합니다. 하지만 언론은 스파이더맨도 다 같은 악당이라 호되게 몰아붙입니다. 속상했을 겁니다. 그를 더욱 궁지로 몰아붙인 건 자신의 정체를 숨겨야 했기 때문에 사랑하는 이와 멀어지는 것을 지켜보기만 하는 것이었습니다.

심각한 생활고, 악당이라 오해하는 사람들,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

지쳐버린 그는 자신이 지켜온 무거운 책임을 저주하며 놓아버리고 싶었습니다.

그 후 이상한 일이 일어납니다. 손목에서 나오던 거미줄은 나오지 않고 손바닥 흡착 능력마저 사라져 버리죠.


영웅의 정체성 혼란으로
위대한 힘이 사라지고 있었습니다.  


스파이더맨의 능력을 좌지우지하는 정체성(identity)이란 무엇일까요?

1986년 하버드 대학교 정신분석학 교수 에릭 에릭슨(Erik Homburger Erikson)은 한 개인이 구별되는 고유의 존재라는 것을 설명하는 정체성(identity)이란 용어를 제안합니다.


개인의 정체감의 자각은
자신의 동일함과 지속성을 스스로 즉각적으로 지각하는 것,
타인이 자신을 동일하게 지속적으로 지각하고 있음을 지각하는 것,
이 두 가지를 관찰함으로써 성립된다.

에릭 에릭슨  | Erik Homburger Erikson


사람이 살아가는 동안 얻어지는 자신만의 고유하며 독자적이고 일관성 있는 본원적 성격이 정체성(identity)입니다. 한 사람의 정체성은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인정받을 때 비로소 완성됩니다. 그래서 타인에게 기억되고자 하는 자신만의 모습이 있다면 그들에게 인정받기 위해 끊임없는 노력을 해야 하죠.


결국, 정체성은 힘을 내는 원천이 됩니다.


브랜드도 다르지 않습니다. 정신(컨셉, 철학, 핵심)으로 무장한 브랜드는 사람들에게 그 가치를 혹은 정체성을 인정받기 위해 여러 가지 방법으로 끊임없는 노력을 해왔습니다.

브랜드는 가끔 독특한 시각적인 요소를 아주 잘 활용합니다. 시각적 요소를 활용한 정체성은 가장 직접적이고 빠르게 인지시킬 수 있습니다. 시각적 요소에 브랜드의 가치를 담을 수 있으면 더욱 효율적일 겁니다.

빨간색, 필기체 로고, 코카 열매를 닮은 병 등은 코카콜라의 시각적 정체성(Visual Identity)입니다. 코카콜라의 빨간색은 부정적인 심리를 극복할 수 있는 활기를 주는 색이라 합니다. 톡 쏘는 탄산에 활기를 주고 코카콜라 로고의 경사진 필기체가 시각적인 활력을 더해줍니다. 코카콜라를 마시면 왠지 기분이 상쾌해지는 느낌이 이유 없는 것은 아닌가 봅니다.

코카콜라 빨간색은 또한 세계인의 우상을 만들어냅니다. 1931년 주간지 Saturday Evening Post에 헤든 선드블롬(Haddon Sundblom)이 그의 친구를 모델로 그린 흰색 털이 달린 빨간색 외투를 입은 코카콜라 광고의 산타클로스는 현재 세계인의 산타클로스가 되었습니다. 코카콜라는 조금씩 조금씩 빨간색을 자신의 시각적 정체성으로 인정받아 왔습니다.


코카콜라 병 디자인과 산타클로스


브랜드의 정체성과 구성원 행동이 일치할 때 정체성은 더 선명해집니다.

‘창의적인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검색 사이트 Google’은 ‘검색’이란 카테고리에서 가장 창의적인 검색엔진을 만들어내는 행동 정체성(Behavior Identity)을 실현합니다. Work should be challenging and the challenge should be fun.’일은 도전이어야 하고 도전은 재미가 있어야 한다’는 그들의 철학처럼 근무 5일 중 하루는 자신이 흥미로운 일을 한다 합니다. 만드는 사람이 재미있어야 재미있는 것들을 만들어내겠죠.

이런 노력의 결과일까요? Google이란 브랜드명은 창의적 인재들과 함께 만들어낸 창의적인 결과물로 많은 사람에게 인정받아 2008년 옥스퍼드 사전에 ‘검색하다’라는 새로운 동사로 추가되기도 합니다.


옥스퍼드 사전에 있는 google의 정의


정체성은 만든다고 해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인정받는 것이 필수죠. 그러기 위해서 브랜드는 끊임없이 가치에 관해 이야기하고 기억시켜야 합니다. 관계를 맺고 사람들 삶 속으로 파고들어 사람들이 가진 문제와 갈증을 해결해주며 그들이 인정해줄 때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내 얘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얘기를 들어주면서 말이죠.

파리의 마들렌 광장의 바스 듀 롬프르 56번가(Rue Basse Du Rempart 56)엔 고집스러움으로 마구를 만들던 사람이 있었습니다. 안장에 사용되는 가죽은 암소 가죽으로 참나무 껍질과 함께 구덩이에 넣고 9개월여에 걸쳐 무두질했습니다. 게다가 가죽과 가죽을 연결할 때는 손이 많이 가고 오랜 시간이 걸리는 새들 스티치(Saddle Stitch) 방법을 이용했습니다. 기계 스티치와 달리 새들 스티치 방식은 한 곳이 끊어져도 교차한 실이 하나하나 조여져 있어서 풀어지지 않는 방식입니다. 튼튼한 마구를 위한 가장 최적의 방법이죠.




기계와 새들 스티치의 비교


새들 스티치는 사람의 손으로 한 땀 한 땀 수놓듯 해야 하므로 많은 시간과 공을 들여야 했지만, 마구상은 반드시 이 공정을 거쳐 마구를 만들었습니다. 그래야 튼튼하고 위험으로부터 보호할 수 있는 믿음직한 마구가 되기 때문이었습니다.

1842년 7월 13일 프랑스에서는 슬픈 일이 일어납니다.

루이 필리프 왕의 장남 오를레앙 공작(Ferdinand Philippe, Duke of Orleans)이 마차에 올라앉는 순간 갑자기 말이 미친 듯이 날뛰어 균형을 잃은 공작이 마차 밖으로 퉁겨져 땅바닥으로 내동댕이쳐진 겁니다. 공작은 두개골이 골절되어 의사들이 응급처치를 했음에도 숨을 거두고 말았습니다.


오를레앙 공작의 죽음


사고의 원인을 조사한 결과 말의 이상행동은 조악한 마구가 충격으로 찢어지고 뜯어진 것이 원인으로 밝혀졌습니다. 공작의 죽음에 전 프랑스 국민이 울었고 마구에 대한 생각이 바뀌는 계기가 됩니다. 이때부터 귀족과 황족들은 조악한 마구를 버리고 튼튼하게 만들어진 안전한 마구를 찾기 시작했죠. 그리고 바스 듀 롬프르 56번가 마구상의 마구가 찢어지거나 뜯어지지 않는 안전한 마구라는 것을 알아냅니다. 마구상엔 귀족이나 황족의 시종들이 마구를 사기 위해 줄을 서기 시작합니다.

그의 마구는 튼튼하고 안전한 마구로 당시 셀러브리티였던 황족과 귀족들로부터 인정받았고 오늘날에도 셀러브리티들이 소유하고 싶어 하는 최고의 브랜드가 되었죠. 고집스럽게 지킨 신념의 새들 스티치는 마구상의 이름으로 다르게 불리기도 합니다.


Hermes stitch
에르메스 스티치


말을 타는 사람을 향한 마구상의 마음이 기술에 스며들어 마구상의 이름을 갖게 된 겁니다. 누구도 이에 동의하지 않거나 부정하지 않습니다. 많은 사람이 그의 신념을 인정했기 때문이죠. 그리고 그것은 에르메스의 정체성이 됩니다.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것은 시간의 문제가 아니라 교감의 문제입니다. 그전까지 브랜드는 끊임없이 외치고 행동해야 합니다.


‘나야 나! 나다운 것이 이런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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