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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밀코치 Jan 27. 2021

너무 화나는데, 말이 웃기게 꼬였다


 아이를 키우면서 가장 많이 하는 후회와 다짐이 ‘화내지 말걸’이라는데, 많은 부모가 공감할 것이다. 사랑하고 아끼는 아이지만 순간순간 화 나는 경우가 있다. 그 빈도는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이 많을수록, 알려주는 것이 많을수록 늘어난다.      


 내가 화낼 땐 그럴만하다고 생각하면서도, 한 발짝만 떨어지면 아이가 안쓰럽게 느껴진다. 바로 아내가 화낼 때 옆에서 보고 있는 경우다. 요즘 주로 혼나는 쪽은 막내다. 기저귀를 떼는 중인데, 쉬 마렵다고 수시로 말하고 변기에 곧잘 앉으면서도, 한 번씩 화장실 안 가겠다고 버티다 팬티에 실례를 한다. ‘다 알면서 떼쓸 때’가 가장 화나는 순간이다.

 

 며칠 전 첫째와 방에서 책을 보고 있는데, 닫힌 문 너머로 막내가 엄마에게 혼나는 소리가 들렸다. 화장실 앞에서 안 들어간다고 버티다 팬티에 실례한 것이다. 얼핏 듣기에도 화가 단단히 났다. 혼내던 아내가 얘기했다.

      

'왜 똥에 팬티를 싸!'     


 첫째와 책을 읽고 있어 못 들은 척했다. 웃음이 새어 나오는 걸 간신히 참았다. 아내는 분에 못 이겨 자조 섞인 말을 덧 붙였다


‘아 뭐라는 거야’


 여기서는 고비였다. 다문 입술사이로 웃음이 조금 새어 나왔던 것 같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그날 저녁을 먹은 후 아내와 얘기하다 슬쩍 말했다.      


‘아유 막내가 큰일이네. 똥에 팬티를 싸고’      


ㅋㅋㅋㅋ아내는 허리가 휘어지게 웃었다.

‘들었어? 그래 놓고도 너무 화나니까 웃음도 안 나오더라’     


아이들이 들을까 봐 그렇게 소곤소곤 웃어넘겼는데, 혹시나 싶어 첫째를 불러 모른척 물어봤다.


‘똥에 팬티를 싸면 안 되겠지?’


 첫째가 의외의 일격에 당한 듯, 입술을 앙 다문다. 동시에 입꼬리와 어깨가 살짝 올라가며 의미심장한 미소가 번진다.  ‘엥? 듣고 있었어? 어떻게 안 웃었대?’


‘아빠도 들었어? 난 참았지 ㅎㅎㅎ’      


‘똥’ ‘방귀’ 얘기만 해도 자지러지는 나이인데, 용케도 참았다.


화내고 또 웃고, 하루가 심심하지 않다.      


 막내까지 기저귀를 떼면 우리 집은 이제 7년 만에 기저귀 없는 세상이 된다. 똥에 팬티를 쌀 걱정에서도 곧 해방이다.


 왠지 오늘 저녁은 고기가 땡긴다.


'여보, 오늘 저녁은 삼겹살에 상추 싸 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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