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을 잘못 들어왔나 싶었다. 식당 종업원에게 예약자명을 확인하고 안내받은 방으로 들어왔는데, 낯선 사람들이 앉아 있다. 내가 아는 사람들이 아닌가? 낯선 얼굴들 속에서 어딘가 익숙해 보이는 느낌도 있어 혼란스러운데, 다들 예견했다는 듯이 웃으며 말했다.
‘우리 맞아요ㅎㅎ’
아. 목소리가 내가 알던 사람이 맞다. 오늘 만나기로 약속한 사람들이 세상 낯선 얼굴로 옹기종기 모여 있다.
마스크 벗은 모습을 처음 본 그날, 몇 주간 지근거리에서 지냈던 이들이 말도 안 되게 낯선 얼굴을 하고 있어 헛웃음이 나올 지경이었다.
교육을 받기 위해 전국 각지에서 거주하는 교육생들이 몇 주간 한자리에 모이게 되었다. 대부분 처음 보는 사람들이지만, 발표와 토의를 통해 눈매와 목소리, 키, 어투와 어조가 하나둘씩 눈에 들어왔다. 개인적인 이야기를 나눌 시간은 거의 없었지만, 2주 정도 지나니 뒷모습만 봐도 누가 누구인지 대강 알 수 있게 되었다.
그러다 마스크 벗은 모습을 마주했는데, 너무 낯설어 눈을 어디 둬야 할지 모르겠다. 눈만 보고 마스크 속 얼굴을 내 마음대로 상상했던 걸까? 눈매를 보고 코와 입, 턱, 하관을 그려내는 것은 여간 부정확한 게 아니라는 걸 처음 알았다.
생각해보니 그렇다. 얼굴에서 눈 윗부분은 전체의 30% 정도에 불과하다. 70%가 가려져 있는 상황인 데다 군인들은 머리스타일도 비슷해 눈 윗부분의 특징이 크게 부각되지 않는다.
방금 전까지 친근했었는데 마스크 벗고 나서 갑자기 거리감이 느껴지는 당황스러운 상황이다. 다들 눈매만 보고 마음대로 올망졸망 수줍게 자리 잡은 코와 입을 상상했었나 보다. 마스크 안에 가려졌던 올라가거나 내려간 입꼬리, 들창코, 부정교합, 사각턱, 들쑥날쑥한 치아, 두꺼운 입술, 넘치는 볼살이 수줍게 마스크 위로 떠오르며 서로 놀란 기색을 감추느라 어색한 웃음만 짓고 있다. 다른 사람들도 마스크 벗은 나를 보고 낯설게 느끼고 있겠다는 생각에 표정관리도 쉽지 않아, 여간 곤혹스러운 게 아니었다.
코로나로 마스크 착용이 일상화되며, 새로 만나는 사람들은 모두 마스크와 함께 대면해 눈만 보고 이야기하고, 눈 윗부분만 익숙하다. 원래 알던 사람은 마스크 속 얼굴과 표정이 그려지지만, 처음 보는 사람은 마스크 아래 얼굴의 70%를 상상할 수밖에 없다.
마스크 쓰고 만나 가까워진 사이에서 마스크 벗은 얼굴을 보고 놀란 일에 대해 아내와 얘기하다 보니 아내도 비슷한 경험이 있었다. 아파트 놀이터에서 만난 또래 아이들의 엄마들, 같은 학년 학부모들이 몇 달 사이 꽤 친해져 커피숍에 차를 마시러 갔는데, 마스크 벗고 보니 내가 알던 사람이 맞나 싶게 낯설어 당황스러웠다고 한다. 인터넷에서 알던 사람들이 처음 모인 것처럼 낯설었다는 얘기를 듣고 보니, 대부분 비슷한 경험을 하고 있을 것 같다.
동료들과 얘기하다 ‘마기꾼’이라는 신조어가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마스크와 사기꾼을 합친 말로, 마스크 쓴 모습과 벗은 모습이 완전히 다른 상황을 유머 있게 표현한 말이다. 다들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의도치 않게 어느 정도 마기꾼이 된 것 같다.
다르게 생각해보면, 사람의 기대와 상상은 좋은 방향으로 이어진다는 말이기도 하다. 보이지 않고 확인되지 않은 것은 좋은 쪽으로 기대하는 것이 사람 심리인가 보다.
그날 이후 마스크 쓴 사람을 만나면 마스크 속 얼굴을 상상해보게 된다. 유심히 관찰하면 눈매와 마스크 위로 드러나는 얼굴의 볼륨에 힌트가 있는 경우가 많다. 작은 힌트가 내 예상과 얼추 비슷하게 들어맞으면 묘한 성취감도 느낀다.
상대의 눈만 보고 전체 얼굴을 얼마나 예측할 수 있을지, 싱크로 몇 % 일지 각자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마스크 일상 속 소소한 재미를 찾아보시길 추천한다.